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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검은 고독 흰 고독

by 오직~ 2016. 4. 30.

하산하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나 자신을 비웃는다. 지금 나는 괴로움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내려가고 싶다. 하지만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불안하다. 이것은 고독을 이기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자신의 일을 해결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이다. 나는 불안과 열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나는 그저 산을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산을 오르려는 것이다. 모든 기술을 배제하고 파트너도 없이 산을 오르려고 생각할수록 나는 환상 속애서 나만의 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궁극적인 고독의 끝까지 가서 그 고독을 넘어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일어난다. 당장 어디든 가고 싶다. 낭가파르바트에 오르고 싶고 주위를 헤매고 싶다. 방랑자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다. 나는 철학과 도덕의 굴레에서 나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했다. 논리적 명제로 줄줄이 이어진 것만이 자기 발견의 길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 단독 등반은 체험의 가능성이며 구체적인 인생과 세계를 제공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웃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괴로워하지 않는다. 다 지나간 일이니까. 내 기억 속에 남아있긴 하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이고 이미 과거의 상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인생의 일부분이고 내 힘으로는 바꿔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예견된 일이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등지고 혼자 오르는 게 아니다. 이렇게 여기 앉아 있으면 나는 산의 일부가 된다. 때문에 어떤 행동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미끄러져서도 안되며 눈사태를 일으켜서도 안되며 크레바스에 떨어져서도 안된다. 나는 여기 쌓여 있는 눈과 바위와 구름의 감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철학이 필요 없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죽음까지도 이해하게 되니까.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히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 고독은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이제 힘든 고비는 지나갔다. 어쩌면 고독에 대한 불안과 고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서로 화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공허함! 생명의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 상황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자기를 비춰 볼 상대도 없다. 손을 잡거나 기댈 친구도 없다. 이러한 감정은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불쑥 나타나서 마음을 억누르고 불안하게 만든다.

 

'티케'는 우르두어로 '그렇다' '그것으로 됐다' '기분이 좋다' '만사 순조롭다'는 의미

올바른 루트를 가리키는 말도 '티케'로 통한다.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고독이었다.

 

나는 내 안에서 안식을 찾고 그 안에 있고 싶었다.

나는 때때로 명상에 잠기곤 했는데,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 세상의 모든 신비가 내 안에 있다는--모든 비밀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 내게 있다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았다. 내 안에 삶과 죽음의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내 속애 들어왔다가 또 나간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풍경이 내 안애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대지와 내 머리에서 나오는 소리의 화음이다.

 

극한 상황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아니다. 극한 상황은 또 다른 현실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 줄 뿐이다. 그것은 평소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어떤 의식의 상태를 일깨워 주는 열쇠 같은 역할을 한다.

 

 

 

 

검은 고독 흰 고독 (2013)

    - 라인홀트 메스너 / 김영도 옮김,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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