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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꿈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by 오직~ 2015. 1. 16.

연애소설인가

구도의 소설인가

연애소설을 빙자한 구도 소설인가... 라고 오해를 하다가

"꿈인가 하면 꿈이 아니고 꿈이 아닌가 하면 꿈이 아닌 게 아닌...!"

한바탕 꿈꾸듯 마지막 책장을 덮다.

 

 

 

파계란 무엇일까. 무엇을 가리켜 사람들은 파계라고 일컫는 것일까.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사대([四大)가 인연 따라 모여 이루어졌을 뿐인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살과 살이 부딪치며 파고들고 또 끌어당기는 이른바 육체관계를 가리켜 사람들은 파계라고 부르는 것일까.. 아니면 금강(金剛)처럼 굳은 어떤 뜻이나 다짐 또는 믿음의 허물어짐. 신심의 추락.

 

산창을 후비고 들어오던 찢어지게 밝은 달빛 몇점만이 엷은 물무늬를 이루며 흔들릴 뿐.

 

무풍기랑(無風起浪)으로 끊임없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무량수(無量數)의 온갖 생각들을 끊고, 한결같이 끊어지지 않게 성성한 가운데 적적하고 적적한 가운데 성성하며 밀밀한 가운데 면면하고 면면한 가운데 밀밀하게 부르고 또 부르며 부딪치고 또 부딪쳐서 몸과 마음을 한덩어리로 만들어 불러보는 것은, 관세음보살이었다.

 

쇠부처는 용광로를 지나지 못하고, 흙부처와 종이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며, 나무부초 또한 불을 건너지 못하니, 삼천찰해(三千刹海) 참침(沈沈)한 밤인저.

 

순금으로 내리꽂히는 햇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개울물이 순은으로 그 뱃바닥을 뒤집고 있을 뿐..

 

부처란 원래 그 시대의 상처와 고통을 가락으로 바꿔서 노래 부르던 소리꾼 아니던가. 설산수도 육년에 소리의 참이치를 확철히 깨우치고 나서 기름지고 우아한 등롱 아래를 마다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저자의 뒷골목을 떨리는 발길과 떨리는 가슴으로 진음(眞音) 찾아 헤매는 가객(歌客) 아니던가.

 

신음처럼 비어져나오는 보살의 명자는 언제나 그러하듯 관세음보살이다. 삼독번뇌와 팔풍오욕으로 꽉 찬 욕계화택 속에서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그 찗은 찰나의 순간에도 팔만사천 번씩 몸부림쳐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또 분노하며 무량번뇌로 생멸하는 말법시대 사바세계 중생들이 내어지르는 팔만사천 가지 온갖 고통과 슬픔의 소리를 천수천안(千手千眼) 삼십이응신(三十二應身)으로 다 보고 듣고 살피어서 저저금의 아픔에 맞게 저저이 다 보듬고 쓰다듬어 어루만져주신다는 엄마보살님이시다.

 

아무리 궁구하고 또 궁구해봐도 당최 땅띔도 할 수가 없는 것이었으니, 돌장승이 아이 낳으면 그때야 알 수 있을까. 여사미거(驢事未去) 마사도래(馬事到來)였다. 나귀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와버린 것이다.

 

부처 되려면 내 몸에 있는 내 마음을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니..

 

짚신 한 켤레를 삼는 데도 선생이 있고 이름있는 버섯 한송이도 다 나는 땅이 있다는데..

 

화두를 깨치고 보니 온 세계가 그대로 한떨기 아리따운 꽃송이였다. 두둥실 떠다니는 푸른 하늘의 흰구름이 다 나의 마음이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나의 집이며 산천초목 하해어별에 산하대지가 모두 나 자신이니, 입처개진(立處皆眞)이었다.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뿌리이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몸이어서 두두물물 산하대지 산천초목 하해어별 삼라만상이 다 살아 있는 법의 모습이라,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부처 아닌 게 없었다. 발길 닿는 곳이 다 법당이었다.

 

모두 잠들어 있을 때, 모두가 비 오는 날의 객실처럼 서러운 일상의 늪에서 타성의 생존으로 각축하고 있을 때, 그리하여 우리가 진실과 진리를 찾는 지리하고도 고통스러운 작업을 중단했을 때, 도둑처럼 문득 나타나서 우리들의 잠든 영혼을 깨워주는 종소리처럼 늘 깨어 있고 싶다.

 

비롯됨도 없고 마침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

 

바람이 움직이는가. 내 마음이 움직이는가. 움직이는 것이 정녕 내 마음이라면 그것을 알고 있는 내 마음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이라고 하는 마음 그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인가. 주머니 속에 넣고 굴리는 단주알처럼 손아귀 속으로 쏙 들어오는가 싶으면 달아나고 달아났는가 싶으면 들어오는데 들어왔는가 싶으면 다시 또 구만리 장천으로 훨훨 날아가버리는 이 마음이라는 물건은 무엇인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깊게 가라앉은 눈빛이 해거름녘 산자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줄기 가을 찬바람처럼 서늘하게 맑았고..

 

내 마음속에 본래부터 자리잡고 있다는 부처를 나의 것으로 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가을이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찰나의 그 짧은 순간에도 팔만사천 번씩 생멸하는 팔풍오욕 속에 우비희락을 되풀이하게 마련인 하늘 밑 벌레들의 죽살이판과는 상관없이 세월은 가고, 그렇게 가는 세월 속에 사계의 수레바퀴는 또 어김없이 굴러, 봄에 피었다가 여름에 무성하고 가을이면 시들어서 겨울에 잠이 드는 원형이정의 천지이치는 터럭 한올의 어긋남도 없으련만, 무슨 까닭으로 가을이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종요로운 고갱이는 언제나 정진일 것이었다. 아주 작고 너무 또 흔하여 종요로워 보이지 않는 나날의 살림살이에서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배우고 익혀서 구체적인 그 삶과 함께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마침내는그리하여 다생겁래로 익혀온 업장까지를 녹여내게 되는, 어떤 경우에도 출발은 인의 씨앗이고, 도착은 그리하여 그 인이 거두게 되는 과의 열매일 것인즉, 이 세상에서 일어나게 되는 일체의 것은 마침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일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우연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됫박만한 견해는 그림자와 메아리의 경지를 초월하지 못하고, 망울이 없는 안목으로는 동쪽과 서쪽도 가릴 수 없음이어..

 

양족중생들의 이전구투는 왜 끊어지지 않는가. 일체중생에게는 다 마음이 있고 홀로 떠서 둥글게 빛나는 마음이 있는 이는 다 부처님이 될 수 있건만, 어이하여 고통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가. 삼계에 윤회하고 육도에 왕래하면서 잠깐도 쉬지 못하는가.

 

눈 푸른 중이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온갖 경계를 대하되 마음에 조용함도 어지러움도 없고 거품도 없으며 흩어버리는 것도 없어서 온갖 빛과 소리를 만나더라도 걸림이 없으면 이를 도인이라 하느니라.

해가 지지 않았는데 어찌 달이 뜨며 잎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또 꽃이 필 수 있단 말입니까?

고기가 다니면 물이 흐려지고 새가 날면 깃이 떨어지느니라.

 

무엇을 일러 해탈이라 합니까?

누가 너를 속박했더냐?

무엇을 일러 정토라 합니까?

누가 너를 더럽혔더냐?

무엇을 일러 열반이라 합니까?

누가 너한테 생사를 주었더냐?

 

대저 형상이 곧으면 그림자가 단정하고, 소리가 크면 메아리가 웅장하다.

 

생사는 급하고 무상은 빠르기만 한데 육진경계의 그림자나 찾아 무엇하겠는가.

 

 

 

 

 

 

☆ 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2001

- 김성동 / 창작과비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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