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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고래

by 오직~ 2015. 2. 21.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자연의 법칙

(부서져내린 벽돌가마 틈이나 살림집 마루판자, 검은 이끼가 낀 물결무늬의 슬레이트 지붕 위에도 개망초는 어김없이 피어 있었다.)

 

세상의 법칙

(노파의 말라비틀어진 육체는 점점 더 썩어들어갔다.)

 

무조건반사의 법칙

(무릇, 생명 가진 모든 존재의 소이연이 생육과 번식일진대, 아무리 세상에 드문 박색이라곤 하지만 그녀도 엄연히 X자 두개를 갖고 태어난 암컷임에 틀림없었으니 그 특별한 수컷의 기물을 마주하고 어찌 기함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소문의 법칙

(일단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귓속말은 곧 자동공정을 통해 매우 그럴듯하고 선정적인 이야기로 부풀려져 온 동리를 거쳐 인근마을에까지 퍼져나갔다.)

 

관성의 법칙

(바록 박색이라고는 하나 속살을 다 드러낸 처녀가 연출하는 적나라한 포즈에 사내들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눈은 이상한 광기로 번질거리고 몽둥이를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아랫것들의 법칙

(모두들 그녀가 다행히 죽지 않고 몸을 추슬러 어디론가 제 갈 길로 갔다고 생각하며 각자의 소임으로 돌아갔다.)

 

유전의 법칙

(쌍커풀 진 커다란 눈, 순진한 듯 허무하고 미련한 듯 무심해 보이는 그 눈만큼은 반편이의 것을 빼박은 듯 닮아 있었다.)

 

사랑의 법칙

(나무껍질처럼 거칠던 피부는 갓 낳은 계란처럼 윤기가 돌고 가뜩이나 찢어진 눈은 더욱 가늘어졌다.)

 

그들의 법칙

(그들은 애초에 돈을 빼앗고 노파를 죽일 작정이었다.)

 

춘희의 엄마, 금복의 세계라.

 

중력의 법칙

(사내는 성큼성큼 걸어와 대뜸 금복을 깔고 앉아 있던 어부의 멱살을 잡아 번쩍 치켜들었다. 두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져 버둥대는 어부의 사타구니에서 불알이 덜렁거렸다.)

 

세상의 법칙2

(생선장수가 자신에게 베푼 호의의 대가이려니 여기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 막 건너온 세상의 법칙이었다.)

 

생식의 법칙(生殖)

(금복의 젊고 싱싱한 자궁은 이제 더 강한 사내의 유전자를 갈망하고 있었다.)

 

고용의 법칙

(걱정은 어깨에 쌀을 한 말 짊어지고 돌아왔다. 주인을 만나러 갔더니 세 배의 임금을 주기로 했다는 거였다.)

 

화류계의 법칙

(물론 돈이 들었다.)

 

가속도의 법칙

(거대한 원목은 점점 더 무서운 속도로 언덕을 굴러내려오다, 걱정을 사정없이 깔아뭉개며 순식간에 바다를 향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무지의 법칙

(금복은 비로소 충만한 기쁨 안에 도사리고 있던 두려움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대, 스스로 완전한 존재여.

 

의처증의 법칙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법칙

(그는 금복을 위해 영화를 보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그녀만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주었다.)

 

금복의 법칙

(누군가 돈을 준다면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 해요.)

 

칼자국의 법칙

(술집 주인의 허리에 커다란 돌을 매달아 깊은 바다 속에 던져넣는 것으로..)

 

서부극의 법칙

(존웨인의 총을 맞고 인디언들은 노루처럼 쓰러졌다.)

 

사랑의 법칙2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의 궁극은 나오꼬, 금복의 모든 것이었으며 그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었다.)

 

구애의 법칙

(금복에게 생전 처음 보는 진기한 선물들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비만의 법칙

(걱정의 성기는 완전히 살 속에 파묻혀 오줌을 눌 때에야 가까스로 공기를 쐴 수 있었다.)

 

운명의 법칙

(올 것은 결국 오고야 만다. 아무런 전조가 없이도)

 

무의식의 법칙

(순간 그녀의 귀에 오래 전 칼자국이 한 말이 들려오는 듯 했다. '만일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그자를 당신으로부터 영원히 분리해놓을 수도 있어')

 

과연 객관적 진실이란 존재할 수 있는것일까?

 

습관의 법칙

( 어허이 넘세 어이 넘세

이 고개를 넘어가세

걸고 매고 넘어가세

어허이 넘세 어이 넘세

어허이 어이 어이 어이)

 

평생을 하역부로 일한 그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나르게 된 짐은 바로 그 어떤 짐보다도 무거운 제 자신의 몸뚱이였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둔중한 살덩어리가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 엄청난 물보라가 일었다.)

 

작살의 법칙

(그녀는 칼자국에게 기어가 작살을 빼내려고 했지만 삼지창 모양으로 되어 있는 날 끝이 오히려 상처를 더욱 넓게 벌려 놓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무엇 하러 목숨을 끊으려는 건지 알 수가 없구먼.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다 때가 되면 저승에서 기별이 오는 법이야.

 

세성의 법칙3

(성깔 사나운 여편네들에게 툭하면 머리채를 휘어잡히기 일쑤였고 거친 사내들에게 아랫도리를 내주기가 다반사였으며 다른 거지 패거리들에게 두들겨맞아 시궁창에 처박히기가 예삿일이었다.)

 

이념의 법칙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감춘 채 아무나 붙잡고 상대방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둘 중의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언제나 반반이었다.)

 

거지의 법칙

(애가 들어선 거였다. 그러자 다른 거지들이 재수없다며 구박을 해 며칠 뒤 그녀는 무리를 떠나야 했다.)

 

 

흥행업의 법칙

(신데렐라가 하루 아침에 하녀로 몰락한 꼴이었다.)

 

구라의 법칙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그의 말솜씨에 세 여자가 모두 넋을 잃어 국이 졸아붙는지 밥이 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

 

진화의 법칙

 

그들의 법칙2

(금복으로부터 돈을 빼앗고 그녀를 죽일 계획이었으며 죽이기 전에 번갈아가며 -겁간할 계획이었다.)

 

관청의 법칙

(비용은 전적으로 코끼리의 주인이 부담해야 하고 수송 도중에 어떤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철도공사에 여하한 책임도 묻지 않을 거라는 각서에 서명을 해야한다고 했다.)

 

유언비어의 법칙

(사실보다도 더 흥미롭고 실제보다도 더 믿을 만하게 각색되어 전염병처럼 빠르게 일꾼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구호의 법칙

(그것은 그 어떤 백마디 말보다도 힘이 있었고 그 어떤 논리보다도 설득력이 있었으며 그 어떤 선전문구 보다도 자극적이었다.)

 

만용의 법칙

(찬구들과 강가에서 술을 마시다 자신이 아직도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널 수 있을 만큼 건장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물 속에 뛰어들었다가 그만 심장이 멈춰버리고 만 것이다.)

 

자본주의의 법칙

(사람들 마음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 나갔다.)

 

헌금의 법칙

(주여,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무조건 당신 뜻대로만 하소서, 뭐가 됐든.)

 

유전의 법칙

(그것은 문의 가족력이었다. 그의 친척들 가운데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 명이 넘었다.)

 

자연의 법칙

(그녀의 몸 속 어딘가에서 분비되기 시작한 강력한 호르몬은 그녀를 이제 여자로 바꾸어놓을 참이었다.)

 

이념의 법칙

(나는 오른쪽을 택했어요. 왜냐하면 오른쪽은 옳은 쪽이란 뜻이니까.)

 

사랑의 법칙

(금복의 눈엔 수련이 하는 짓 모두가 애교요, 재치요, 매력이었다.)

 

경영의 법칙

(금복은 젊은 인부들을 새로 뽑고 나이든 기술자를 모두 해고한 뒤 임금을 대폭 삭감해버렸다.)

 

알코올의 법칙

(금복의 인생엔 이미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물이 줄줄 새고 있었으며 운명은 서둘러 그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플롯의 법칙

(영화의 진행에 따라 관객들의 경탄과 환호, 한숨과 비명이 번갈아가며 터져나왔다. 그것은 더러운 상업주의와 영합한 플롯의 법칙이었다.)

 

감방의 법칙

(죄수들은 곧 춘희가 지능이 떨어지는 벙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춘희는 맨 끝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신념의 법칙

(수감자들을 상대로 단종수술을 시행한 것이었다.)

 

 

 

자본의 법칙

(재산은 아메바처럼 스스로 증식을 거듭해 약장수는 곧 그 도시에서 소문난 알부자가 되었다.)

 

토론의 법칙

(지식인이란 부류는 대개 음험한 속셈을 감추고 있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하고도 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권태의 법칙

(그녀의 새로운 연인은 약장수가 카페에서 만나 교류하던 한 시인이었다.)

 

사랑의 법칙

(시인을 지나치게 믿은 수련은 그만 자신이 가진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지식인의 법칙

(그들은 차가운 눈길로 약장수를 쳐다보았다.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물리적인 폭력을 쓰진 않았지만, 그들은 마치 이리 무리에 잘못 끼어든 승냥이를 쫓아낼 때처럼 냉담하고 잔인해져 있었다.)

 

감방의 법칙

(춘희의 괴력과 그가 철가면의 얼굴을 물어뜯은 사건도 잊혀졌다.)

 

그러나 춘희는 자신의 상처를 어떤 뒤틀린 중오나 교묘한 복수심으로 버꿔내는 술책을 알지 못했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치되지 않았다.

 

독재의 법칙

(자신이 죽을 때까지 영원히 집권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법률을 공포한 것이었다.)

 

중력의 법칙

(춘희의 야성은 무뎌지고 젊음은 모두 지나가버려 젖가슴은 늘어지고 상처투성이인 피부엔 주름이 잡혔다.)

 

사랑의 법칙

(처음엔 진흙을 이기다, 혹은 혼자 밥을 먹다가, 또는 방에 누워 갈라진 천정 틈으로 둥근 달을 바라보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던 트럭 운전사의 얼굴은 어느샌가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말았다.)

 

이념의 법칙

(그는 점토벽돌이 붉은색이라는 이유로 기관원들과 한동안 마찰을 빚어야 했다. 붉은색이 뻘갱이를 연상케 한다는 거였다.)

 

시청률과 대중성의 법칙

(진실은 모두 사라졌다.)

 

 

"이 안엔 전설과 신화, 민담같은 설화와 야담과 괴담, 기담 등 온갖 이야기와 소설과 영화와 컨벤션, 그리고 온갖 소문과 허풍, 심지어 인터넷에 떠도는 엽기 유머 등 무수히 낞은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것을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라고 칭합니다."

 

 

 

 

소설을 읽지 않고 살았더니 이런 소설이 있었구나.

그 옛날 '장길산'이나 '토지'같은 대하소설과는 또다른 대하소설이다.

 

이야기에 빨려들어가 읽기에 급급했더니 , 무슨무슨 법칙으로 풍자해대어 실소를 터뜨리며 한 숨 쉬어가게하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웬지 소설이 이어질수록 작가의 신명이 커지면서 차마 이야기를 끝내기 싫어하는 느낌조차 받았다.

아직도 풀지 않은 사연보따리가 그득 남아있는 듯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통 큰 풍자와 해학

 

 

 

 

 

 

☆ 고래 (2004)

- 천명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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