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서서 ‘죽음’을 떠올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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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소설집 <강산무진>은 드물게 완성도가 높은 책이다. 그렇지만 <강산무진>에 대한 <한겨레>의 최초 기사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름 휴가에 읽을 만한 책으로 이 책을 꼽는 일이 마냥 모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강산무진>에 대한 비판은 작가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강산무진>에 대한 불만은 무엇보다 그것이 철저하게 작가 자신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단편에 하나같이 ‘김훈 표’라는 도장이 찍혀 있는 듯한 형국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달리 보면 그것은 그만큼 소설집의 집중도와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은 그 자체로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의미있는 태도로서 존중해야만 옳다. 다만 <한겨레>의 기사는 <강산무진>에 관철된 작가의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필요는 있다는 취지였다.
<강산무진>이 죽음과 소멸에 바쳐진다는 사실은 익히 지적되어 왔다. 많은 작품들이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으며 그러할 때 작가의 어조는 냉정하기 짝이 없다. 죽음이란 기절초풍하거나 안달복달할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목숨 받아 태어난 것들의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것, 그렇다면 생명이니 존재니 하는 것도 궁극적 소멸의 운명 안에서 잠깐 반짝이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 작가의 굳은 믿음이다. 가령 이상문학상 수상작 <화장>에서 작가는 주인공 아내의 죽음과 부하 여직원 ‘추은주’의 싱싱한 젊음을 대비시켜 서술하고 있는데, 사실을 말하자면 죽은 아내란 곧 추은주의 필연적인 미래라고 해야 옳으리라. 이처럼 인간의 근원적 조건으로서의 허무를 인정하고, “내가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강산무진>)을 직시하기 위해서라도 소설집 <강산무진>은 한번쯤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중국 출신 프랑스 여성 작가 샨사가 얼마 전 방한했다. 그의 가장 최근작인 장편 <음모자들>은 중국의 여자 첩보원과 미국인 남자 첩보원이 자신들의 본분을 잊고(?) 상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황동규 시집 <꽃의 고요>를 추천한다. <강산무진>에 비해서는 한결 촉촉하고 따뜻하게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만날 수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20060714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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