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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일상을 여행하자(1)

by 오직~ 2006. 5. 26.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여행 (1)

지난해 5월 <18.0> 창간호부터 약 1년간, 동부해안에서 서부해안에 이르는 아메리카 대륙을 자전거로 주파한 감동(!) 모험여행기를 연재했던 홍은택씨가 이번호부터는 서울에서 펼치는 자전거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만의 눈으로 바라보고 써내려 가는 서울 자전거 탐사기를 기대해주세요. 격주 연재. 지난해 아메리카 대륙 횡단기가 한겨레출판에서 26일 책으로 선보입니다.

돌아와버렸다. 일상으로.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사무실에 갇혀있는 생활로. 일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놀라 경복궁 역에서 내리는 출근길로.

지난해 11월 말 귀국했을 때는 일상이 즐거웠다. 신문사 동기들과의 송년회는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안 한다고 빼다가 내 순서가 돌아와 번호를 누르니 반주가 흘러나왔다.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이 친숙한 느낌. 미국 대평원에서 건조한 페달 반주로 목 터지게 노래 부르던 시절이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참 먼 곳에 다녀왔구나. 반주가 있으니 좋긴 좋다.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푸르른 저 별빛도 외로워라.”

“고리타분한 노래도 다 부르네” 하는 타박을 받았지만 캔자스에서 <그날이 오면>과 함께 내가 학대하던 이 노래에 정당한 대접을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전자음악의 반주에 노래의 맛이 살아난다. 어쩜 지하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쥐고 있는 그 시간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 달은 그렇게 싱그러운 느낌으로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일상 복귀가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다. 풍찬노숙에 길들여진 내 몸은 지붕과 벽으로 갇힌 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국 오리건 주 플로렌스에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 미주리주 컬럼비아에 있는 집에 돌아와 한 동안 깊은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공기가 흐르지 않는 밀폐된 공간은 내 숨통을 죄어왔다.

 

겨우 실내 생활에 적응할 무렵 귀국했고 익숙한 사람들과 정겨운 길거리와 한없이 늘어지는 술자리와의 낯선 만남을 시작했다. 특히 지하철 풍경이 낯설었다. 내 양 옆과 앞에서 승객들이 병든 닭처럼 존다. ‘한국 사람들은 체력이 약한가 보다.’ 아니면 ‘밤에 서로 많이 부대낀 거겠지’ 남녀노소, 청장년 청소년 모두 존다. 지하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여관이군.

나는 남 보란 듯이 영자지를 읽거나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출퇴근했다. 이런 ‘훌륭한’ 나를 다른 사람들이 조느라고 안 쳐다보다니. 그래도 보고 있는 이가 있지 않을까 힐끗 주위를 둘러보곤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어느 날 출근길에 책을 읽다가 옥수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까지는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안내방송이 들리는데 “무악재, 무악재”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내려야 할 경복궁 역을 지나쳐버린 것이다.

지하철 3호선에서 세 글자의 역 이름은 내게 불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국 가기 전에는 종로 3가역에서 내렸는데 세 글자의 역 이름이 들릴 때는 내릴 곳을 지나쳤다는 뜻이다. 이상하게 종로 3가역 이후 세 글자 역 이름이 많다. 경복궁 무악재 독립문, 연신내. 만약 구파발까지 들린다면 거의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불광 녹번 홍제역처럼 두 글자 역 이름도 있지만 세 글자 역 이름이 들려야 깨는 이유는 내 좌뇌에 세 글자가 들리기 전까지는 늦은 게 아니라는 잘못된 신호가 입력돼 있는 탓일 게다.

지하철 3호선이 좋은 것은 내릴 역을 지나쳐도 요금을 더 내는 경우는 없다. 계단을 올라와서 복도를 가로질러 건너편 계단으로 내려가서 반대편 전동차를 타면 된다. 근데 반대편 전동차를 타면 경복궁역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일원역으로 내빼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고단한 출근길이다.

서울 생활 한 달 만에 나는 이전의 나로 완벽히 돌아왔다. 지하철 투숙객으로, 자전거 여행 전의 나로. 앉을 틈만 있으면 파고들고, 앉자마자 10분도 안돼 곯아떨어진다. 그것도 단계가 있어서 처음에는 체면이 있어서 모자를 쓰고 졸았다. 근데 모자로 머리가 눌리는 게 싫어서 이윽고 모자 없이 졸고 그 다음 단계는 옆 사람의 어깨를 베개 삼아 졸고, 침을 흘리고 코를 골고, 심지어 가방을 놓고 내리고, 역을 지나치고.

어느 날 빈 자리가 없을 때는 어쩔 줄 몰랐다. 몸이 배배 꼬이고,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그래도 자리가 안 나면 손잡이에 몸을 매달고 갔다. 앞에 앉은 일곱 사람이 강철대오를 이루며 내가 내릴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아 애간장이 녹은 적도 있다. 다른 열에서는 선수 교체가 빈번한데 내 앞의 일곱 명은 마치 출근하기 전 서로 전화해서 나를 골탕 먹이기로 작전을 짜고 나온 것 같다. 그런데 7인의 생김새를 보면 연락망이 있을 사이는 아닌 게 10대에서 50대까지, 직장인에서 학생까지 출신성분이 다양하다. 우연이라고 하면 더 화가 난다.

그런 나를 나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겨울 날 나는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자전거를 꺼냈다. 나는 어렵게 터득한 여행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싶지 않았고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만약 여행을 떠나야 여행자가 된다면 진정한 여행자는 아니다. 여행을 떠나면 사회와 가족의 복잡한 관계에 얽혀 있는 현실에서 멀어지게 돼서 저절로 생활이 간결해지는 면이 있다. 그랬다가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그 다층적 다면적 관계들의 포충망에 걸려들고 만다. 물론 기분전환은 됐겠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반복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멀리 가지 않고도 떠나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일상을 여행하고 싶다. 출발지와 종착지는 같지만 매일 새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자전거를 타면 나의 정체성은 지하철 투숙객에서 바이크 라이더로 바뀐다. 자전거로 보는 서울은 지난 30년 이상 살아온 서울이 아니다.

2월1일 아침 6시반 사위가 캄캄했다. 자전거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막막하다. 내가 사는 수서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의 경우의 수는 수없이 많다. 지하철 3호선처럼 확정된 노선에 몸을 싣는 게 아니라 주행하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미로찾기와 같은 즐거움이 있다. 몸으로 푸는 퀴즈다. 그게 여행이 아닐까.

바이크 라이더에는 두 종류가 있다. 보이지 않는 라이더와 보이는 라이더. 보이지 않는 라이더는 자기가 보행자나 차 운전자의 눈에 안 띌 거라는 전제에서 자전거를 탄다. 언제 어디서나 차에 치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니 본인이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그건 내 책임이다. 주로 인도로만 가고 인도에서도 보행자들에게 안 들키려고 노력한다. 마치 밤도둑처럼 주행한다.

보행자들은 사슴과 같아서 놀라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뒤에서 보행자를 추월할 때 “지나갈게요” 또는 더 정확히 “왼쪽으로 지나갑니다” 라고 하면 보행자들은 왼쪽으로 비키라는 신호로 알아들었는지 모조리 왼쪽으로 피한다. 벨을 울리면 보행자들은 혼비백산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오히려 더 진로를 잡기 힘들다. 그래서 은밀히 살짝 비집고 지나가야 한다.

보이는 라이더들은 반대다. 최근 자전거인구가 늘어나면서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의 요란한 원색 셔츠에 검정 팬츠의 사이클 복을 입고 색깔이 들어간 고글을 쓰고 다니는 라이더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은 핸들바는 물론 헬멧에도 전등을 달고 야광 조끼도 입고 가방에도 야광 칠을 하거나 야광봉을 매고 가기도 하고 심지어 경광등을 달고 가는 사람도 있다. 최대한 자기를 드러내면서 눈에 띄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차 운전자들이 자신들을 알아보고 피해나가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라이더들의 문제점은 아무리 표시를 심하게 해도 차 운전자들이 못 알아보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눈에 띄겠지라는 전제에서 행동하다가 그 전제가 안 지켜지면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안 좋은 라이더는 보이지 않는 라이더이면서 보이는 라이더로 행세하는 것이다. 자신이 투명인간인 것처럼 대로를 주행하는 경우다. 사고를 예약하는 것과 같다.

나는 안 보이는 라이더의 계파에 속하기로 했다. 차 운전자들을 믿기보다는 자신을 믿기로 했다. 일단 복장부터 검정색 파커에다 검정색 비니(beanie) 모자 검정색 마스크 검정색 신발. 복장일습을 갖추고 “어때?” 하고 아들에게 물어보니 밤도둑 같다는 정도를 기대했는데 테러리스트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거울에 비춰보니 분위기가 똑같다. 더구나 미명에 출발하니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의식하기 어려울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라이더가 됐다는 뜻은 차도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실 엄두를 내지 못했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 국가중 교통사고 사망률 1위와 같은 통계가 무섭다. 경적도 요란하다. 그러나 인도로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첫 관문은 일원터널.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인도에 배수로가 있고 배수로를 덮고 있는 보도블럭은 군데 군데 솟아 있다. 중간에 사람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려야 한다. 무사히 터널 통과. 그리고 대치2교에서 양재천을 만났다.

양재천은 탄천에 합류하고 탄천은 한강에 합류한다. 역시 지하철에서 나오길 잘했다. 추운 날씨지만 금방 몸이 더워진다. 자전거가 일으키는 바람에 머리가 시원하다. 한강을 만나 계속 서쪽으로 달렸다.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를 연달아 제낀 뒤 잠수교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서울여행이 시작됐다.

 

 


20060526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