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번 ‘10대들에게 고백함’ 글에 메일 쇄도했다. 웬일이니. 10대도 한겨레 보는구나. 장하다. 그 대부분은 엉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인생 상담 리퀘스트. 두발 자유화란 고리쩍 이슈가 여적이니 기막혀 글쓰긴 했다만 이실직고 하건대 본인 평소 10대 문제에 극히 무관심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부산한 작자다. 10대 문제에 관한한, 뭐 좀 삐거덕대는 구석 있는 거야 그 나이에 당연한 거고 다소간 좌충우돌 후 대충 알아서 균형들 잡아갈 텐데 청소년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어른들 뭔 각을 그리 잡고 심각하게 호들갑 떨어대는지 나 원 참, 주의자다. 이따위 사고방식이니 상담엔 한참 자격미달 되겠으나 어쨌든 뱉어 놓은 말들이고 답장 한 장 안 했으니 에라이, 기왕 구라친 거 이 지면 통해 단체로 리플코자 한다.
2. 하고픈 말, 첫 번째. 여행, 떠나시라. 우리나라, 작다. 지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더 협소한 건 생각의 폭. 우리, 도시 국가다. 모두 같은 동네 사람들. 같은 옷 입고 같은 거 먹고 같은 곳에서 살고 같은 유행 따른다. 그러니 다르면 틀린 거고 틀리면 자기만 따 될까 싶어 다들 눈치 보며 산다. 씨족사회. 떠나시라. 세상 넓다. 다른 거 많다. 다른 거 겪어들 보시라. 겪어보면 알게 된다. 다 다른 게 정상이란 걸.
3. 두 번째. 연애들 듬뿍 하시라. 세상엔 대체제가 없는 게 있다. 다른 무엇으로도 그 효용과 가치를 대신할 수 없는 거, 그런 게 드물지만 있다. 연애가 그렇다. 연애가 대뇌피질의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시켜 증폭시키는 생체 에너지의 고양 정도는 놀라운 거다. 인류 문화자산 대부분은 결국 그 덕이다. 둘이 좋아 환장하고 미쳐 팔짝 뛰고 틈만 나면 물고 빨고 잠시라도 헤어지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연애, 최대한 많이 하시라.
연애할 때 몇 가지 팁. 가장 중요한 거. 본전의식 버리셔들. 약게 하는 연애는 얕아 완전연소가 안 된다. 돌려받을 수 있겠다 싶은 만큼만 미리 정산해 주지 말고 그냥 줘. 연애에 기법이 있다면 그 정수가 그거야. 미련 없이 줘. 그리고 사랑해 헤어진단 소린 대략 조까는 소리다. 유약한 자아의 ‘아무래도 불리한 상황 도래가 명백한 조건에서 지레 수건 던지고 남은 자존심 주섬주섬 챙겨 그나마 맵시 있게 토끼기’라는 연애처세의 가소로운 수작이다. 그러니 제발 그 소린 하지 마셔들. 관계 생명이 다한 거라고 사실대로 고백하셔들. 그러다 결혼. 결혼은 그 사람이 아니라 아차 그 사람인 줄 안 사람과 하는 거다. 결혼과 관련해선 한 가지만 기억하자. 그거 숙명이 아니라 제도다.
4. 세 번째, 집 나가시라. 한 푼이라도 자기 힘으로 벌 수 있다면, 코딱지만 한 공간이라도 등 댈 수 있다면, 바로바로 집 나가셔들. 어른이 뭔가. 제 몫 제가 감당하는 자다. 사는 거 매 순간 불확실한 선택이다. 그 선택 스스로 하고 그에 따르는 리스크 기꺼이 감당하는 자가 어른이다. 그런데 선택엔 항상 비용이 따른다. 선택이 원래 그런 거다. 선택이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고민은 바로 그 비용을 어떻게 하면 지불하지 않을까 하는 데서 비롯된다. 가능하면 공짜로 가고 싶은 거다. 우리나라에선 이 비용의 마지노, 부모가 평생 대신 감당한다. 그래서 결혼하고도 어른 못 된 자, 우리나라엔 수두룩하다. 평생 누군가의 자식이기만 하다. 그거 효도 아니다. 그거 삶 자체를 부모에게 위탁하고 평생 징징거리며 사는 기생이다.
하지만 우주 운행의 절대 원리. 세상, 공짜 없다. 작용 있음 반작용이 있단 뉴튼 제 3법칙도 결국 그 소리다. 뭐든 선택하면 그에 대한 비용, 반드시 따른다. 그거 못 받아들여 자기 인생만 억울하다 여기고 사는 자들 지천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런 선택들이 모여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거다. 그 결과를 스스로 부인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선택도, 누가 뭐랄 수 없다. 그리고 그래야 자유인 될 수 있다. 독립들 하시라. 독립하지 않고 절대, 어른 못 된다. 그러니 어여어여 집 나가시라.
5. 네 번째, 사람, 동물인 거 잊지 마시라. 우리, 동물이다. 지금처럼 수많은 규칙과 관습을 만들어내 이렇게 번잡하게 동물이 아닌 양 산지 그리 오래 안됐다. 그 보다 훨씬 오랜 세월 우리 종을 지구상에 살아남게 만든 본능적 감각들, 그 복잡하고 인위적 규칙들 덕분에 많이들 퇴화됐다. 특히 최근 몇 백 년 사이의 우리나라에선 명분론, 관념론이 유난히 득세한 지라 그 퇴화, 유난하다. 그거 잊지 말아야 한다. 당당한 한 마리의 수컷과 암컷으로 세상 주눅 들지 않고 살 수 있게 만드는 힘, 거기 있다. 지면도 다 됐고 이만 줄이니 뭔 소린지 잘 모르겠거든 그냥 외워두시라. 언젠가 문득 느낌이 올 거다. 그때 그 느낌 꽉 붙드셔들. 인생 행복한 한 마리 동물로 살 수 있음, 그게 장땡이다.
6. 마지막으로 한겨레 많이들 봐주시라. 한겨레, 10대 니들이 많이 봐줘야 하는 신문이다.
본인은 이 글로 이 칼럼 마지막이다. 잘 먹고 똥들 잘 싸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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