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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10대들에게 고백함/김어준

by 오직~ 2006. 5. 1.
1.

두발 자유화. 이 쌍팔년도 이슈,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참, 후지다. 바리깡으로 학생 관리하겠다는 발상이 여전히 유효한 교육정책이 된다는 거, 정말 후지다. 이 사안 관련해 한 일간지에 기고한 어느 현직교사는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의 학생들처럼 머리를 기르고 교내에서 키스를 할 정도로 우리사회가 성숙되지 않았고 우리 학생들에게는 그럴 만한 자정능력이 없기에 두발 자유화 반대한다 하셨다. 머리 길이와 교내 키스를 등가 나열하는 것도 의뭉스럽고 두발과 자정능력을 관련짓는 것도 이해하기 힘드나 결정적으로 당혹스러운 건 정말 우리 학생들의 자정능력이 부족하다면 그 능력 배양할 교육을 기획할 일이지 아예 머리 잘라 가두는 게 옳단 말인가. 아, 좌절스러워.

2.

해서 결심했다. 사실대로 고백키로. 10대들, 지금부터 잘 들어주시라. 이거 어른들끼리 암묵적 합의로 당신들에겐 그 접근을 원천차단 해 온 기밀 되겠다. 어디 받아 적어들 두셔. 먼저 두발과 공부의 상관관계. 한 마디로, 없다. 학생이 공부나 하지 머릴 왜 길러. 왜 못 길러. 다리털, 겨드랑이 털, 꼬추털과는 다르게 두개골 털에는 DHA 함유되어 있나. 진짜 이유는 털이 아니라 통제권 문제다. 머리털 내주면 쥐고 있던 학생 통제권 상실할까 두려운 거다. 선생님 자신들도 그 방식으로 육성됐다. 물론 자신들도 싫어했다. 하지만 편하다. 통제에 용이하니까. 그래서 계속 한다. 외모 신경쓰면 공부 못한다. 아니다. 외모만 신경쓰면 못한다. 외모도 신경 쓰고 공부도 잘 할 수 있다. 두발 자유화. 데모들 열심히 하시라. 털 단속. 교육적 역사적 법적 정당성 없다. 건투 빈다.

3.

말 나온 김에 딴 것도 고백하자. 공부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 된다.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공교육 열심히 따라가면 시험 잘 치는 사람 된다. 시험 잘 치면 훌륭한 사람 되나. 아니다. 시험 잘 치면 점수 잘 나온다. 점수와 훌륭한 사람과의 상관관계. 없다. 그럼 판검사나 의사들은 다 훌륭하시게. 그 양반들 중 안 훌륭한 분들도 무척 많으셔. 단, 점수 높으면 연봉 높을 확률, 상대적으로 높다. 그건 맞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또 아니다. 돈 버는 능력과 공부 능력, 별개다. 그럼 왜 어른들이 공부공부 하나. 불안해서. 공부 외에 어떻게 훌륭한 사람 되는 건지 어른들도 모르니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 어른들 모른다. 물론 공부 잘 하면 좋다. 유용하다. 하지만 공부와 훌륭한 사람, 관계없다.


다음, 성 문제. 먼저 자위. 이거 또 10대 남자들 많이 고민한다. 답부터 말하자. 돈 워리. 머리 절대 안 나빠져. 긴장해소에 아주 좋아요. 정신건강에도 좋아. 몸이 요구하는 만큼 해주셔들. 손은 씻고. 그리고 포르노. 맘껏 보셔. 선생님들도 다들 넉넉히 보셨어. 죄의식 가질 거 없다. 실은 포르노보다 그로 인한 죄의식이 조장하는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더 나쁘다. 근데 그거 과장됐단 건 알고들 보셔. 영화잖니. 실제론 그렇게 안 돼요. 이성교제. 뭐 하고 싶다고 맘대로 되는 영역은 아니다만 할 수 있다면 해. 그러다 섹스. 둘이 합의된다면. 콘돔 꼭 써. 직전에 거둔다느니 까불지 말고. 임신 절대, 절대 조심. 섹스가 죄가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질 수 없는 일 저지르는 거, 그게 죄다.

될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한 우물을 파라. 아니다. 떡잎만 봐선 모른다. 떡잎은커녕 나이 서른 넘어도 몰라. 우리 공교육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재능은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건 뭔지 사유하고 각성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공교육 바로 그거 하라고 있는 건데. 하여 우리나라엔 대학졸업하고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우물을 파. 그러니 호기심 가고 궁금한 건 뭐든 닥치는 대로 덤벼들 보시라. 인생 790년 못 산다. 하고 싶은 건 겁먹지 말고 다 해봐.

그리고 영어. 스트레스 많이 받지. 이거 못하면 바보되는 거 같지. 사회 나가도 이거 꼭 필요하다고 그러지. 거짓말이다. 영어로 지구온난화나 벤담 공리주의 매일 토론하며 살 것도 아닌 데 영어 죽자 사자 할 거 없다. 영어로 유엔 연설할 것도 아니고. 사실 유엔 연설도 우리말로 돼. 나중에 영어로 심각한 비즈니스해야 할지 모른다. 그럼 어설픈 영어 말고 실력 있는 통역사 수배해. 물론 잘 하면 좋은 점 있다. 도구가 하나 더 느는 거니까. 영어는 도구다. 어른들은 영어를 신분의 표식, 능력의 징표로 여겼기 때문에 자기 열등감에 그렇게들 영어, 영어 하는 거다. 다시 말하는 데 영어는 도구다. 취미 맞으면 하고 안 맞으면 그냥 다른 과목처럼만 해. 그래도 돼.

4.

시작해놓고 보니 많다. 지금부턴 좀 짧게. 사랑의 매. 그런 거 없다. 매는 그냥 매다. 악법도 법이다. 아냐. 악법, 바꿔야 한다. 악법 만나면 싸워. 시민불복종 공부하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노. 하나 보면 하나 안다. 사람 속단 하는 거 아니다. 남자는 군대 가야 사람 된다. 천만에. 가야 하니까 가는 거야. 선생님들 진학지도. 참고만 하셔. 사실 선생님들도 그 과 나와서 실제 뭐 하는지 모른다. 하면 된다. 거짓말. 군바리 정권시절 까라면 까라고 만든 문구. 안 되는 거 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핑계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구축하라고 국가 있다. 적어도 삼국지 10번 읽어라. 쓸데없다. 철저히 한족 중심사관의 재밌는 무협지. 제갈공명이 칠종칠금 했던 남만 호족이야기에서 배울 건 베트남인들 불굴의 정신이다. 제갈공명 꾀가 아니라. 동방예의지국. 이건 우리 조상들이 공물상납 잘하고 종주국 예우 잘한다는 중국인들 칭찬이다. 뭐 자랑스러울 거 없다. 담배 피면 머리 나빠진다. 경험상 그건 대충 맞다. 심지어는 정력도 감퇴돼. 각오는 하고 하라고. 오늘은 여기까지. 담에 또 봐. 안녕.

5.

아참 그리고 얘들아, 우리 한겨레 좀 읽어주라. 노땅신문 되서 쉰내 나 죽겠다.

 

20060428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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