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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은 이 집 마당에는 단단한 잎사귀를 가진 매그놀리아 나무가 근사하게 뻗어 있다. 이 나무 그늘 아래 긴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눕자 눈 앞으로 강물이 흐른다. 달이 떠올라 강을 비추는 광경에 왜 그렇게 빠져들었는지 모르겠다. 수천년 수만년 되풀이돼온 것일 텐데 나는 꼼짝 않고 그 강물에 젖은 달빛을 바라보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문득 정적 속에서 우주의 비밀을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언젠가 지금 같은 달빛을 본 적이 있다. 2003년 2월 나일강가에서였다. 수 천 년 전에 세워진, 지금도 짓기 어려운 왕릉과 석상의 유적들이 널려져 있는 이집트의 룩소. 그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짓고 영생을 얻으려 했던 왕들은 미이라의 껍데기로 남아 있는데 나일강은 지금도 태연히 흐른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지금 오하이오 강을 보면서 그 화두가 떠오른다.
나는 그 동안 항상 뭘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목표를 이루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잠시고, 곧바로 보다 어려운 목표를 설정해 스스로 채찍질했다. 그래서 현재는 미래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했다. 그 무수한 디딤돌을 밟아서 가는 미래는 항상 저 멀리 달아난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현재가 내 삶에서 소외돼 있는 것이다. 직선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내게는 두 점,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밖에 없었다. 그 두 점을 잇는 선분인 현재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자전거 여행은 과거와 미래를 천천히 연결함으로써 보다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속도를 다투는 시간성에서 벗어남으로써 과거와 미래로부터 해방돼 무시간성 또는 초시간성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다.
천년 만년을 흐르는 강물도 사실은 시간의 소산이다. 언젠가는 강줄기가 말라 사막이 되거나 물이 차고 넘쳐서 바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의 단위가 워낙 아득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면서 동시에 초시간성에 대해 생각해볼 단초를 제공한다. 저 강조차 영속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영속하는가. 영속하는 것이란 없는 것인가. 변한다는 것만은 영속하지 않는가. 그러나 영속하는 게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래서 결국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역설이 탄생하는 것이다. 역설은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규정하려고 할 때 만들어진다. 규정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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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9. 한겨레신문 기사중에서...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홍은택 이란
사람의 글, 한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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