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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개혁, ‘경험의 벽’은 통곡의 벽인가 - 권인숙

by 오직~ 2017. 8. 26.

자신도 가해의 경험이 있기 때문만일까? 그보다는 그 경험의 해석을 막는 ‘경험의 벽’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군대는 워낙 그런 곳’이라는 기본 틀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고, 남성들이 경험하는 학교나 회사 등의 조직생활도 비슷해 군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우는 것을 방해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셨던 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교도소에 방문해 인권침해 조사를 할 때 양심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동행할 경우 분위기 흩트리는 소리를 자주 해 방해가 많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요즘 교도소 너무 좋네!”를 연발하고 재소자들이 음식 등에 대해 불만을 표하면 “뭐 그런 것까지. 우리 때 생각하면 말이지!” 하며 재소자들의 문제 제기에 다른 사람이 공감할 여지를 줄여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교도소는 특별한 질서와 시설의 공간이다. 양심수 경험자는 자신이 겪은 재소 경험의 인상이 너무 진해 격세지감의 표현을 터트린 것이다. 이 일화는 경험이 때로는 사물을 인식하는 데 양날의 검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겪어보지 않으면 상대방 입장을 절대 알 수 없다고도 하지만, 경험은 자기 중심의 강고한 기준과 편견을 만들어 생각과 가치를 특정 벽에 가두어 놓기 쉽게 하기도 한다.

비슷하게 연상되는 곳은 군대다. 한국의 징병제하에서 군대는 교도소에 버금가게 특별한 공간과 질서의 경험인데, 차이는 소수가 아닌 다수의 남성이 겪는다는 것이다. 군대를 겪어본 자들의 특정 이슈에 대한 공감력은 대단하다. 유승준이나 엠씨몽의 사례에서도 확인되지만 군대 기피는 엄청난 여론 집중력과 이슈의 지속성이 있다. 군 기피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관심은 군 기피를 거의 불가능하게 제도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정치인의 자격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군 인권침해 문제나 제도 변화에 대한 요구나 관심은 상대적으로 아주 약하다. 2005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때도 그런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군대 내 사병 간의 가학과 피학적 인간관계와 폭력적 문화에 관한 솔직한 묘사로 화제가 되었다. 당시 남성 영화평론가들은 전쟁영화가 아니면서 군대 이야기를 다룬 첫 영화라는 데 모두 다 입을 모았다. 코미디 소재 말고 진지하게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군대문화를 다룬 매체의 표현물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인정했다. 윤종빈 감독 자신도 희화화하거나 미화한 것 말고는 “어떤 사람에게도 군대에 관한 진실을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씨네21>, 2005년 11월25일)라고 했다.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진한 경험을 하면서도 왜 진보적 지식인조차 그동안 군대문화에 대한 사실적 묘사나 분석을 거의 하지 않았을까?


자신도 가해의 경험이 있기 때문만일까? 그보다는 그 경험의 해석을 막는 ‘경험의 벽’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군대는 워낙 그런 곳’이라는 기본 틀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고, 남성들이 경험하는 학교나 회사 등의 조직생활도 비슷해 군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우는 것을 방해한다. 군대에서 어떤 부정적인 일이 있어도 그 경험이 나도 다 이겨낸 적이 있는 ‘통과의례’이고 사람 혹은 ‘진짜 남자(사나이)’가 되는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 쉽다. 또 군 인권을 강조하면 군대 구성원이 개인주의적이 되어 서열적 군기가 무너질 거라는 두려움도 무척 크다.


‘요즘 군대론’도 그 벽의 한 유형이다. 12년 전 지피(GP)에서 김 일병의 총기사건이 났을 때도 요즘 외동으로 유약하게 자란 왕자님들이 집단생활을 견디지 못해서라는 해석과 게임문화의 영향이라는 해석이 군필 기자들에 의해 유력하게 설파되었다. 2014년 윤 일병 사건이 났을 때도 한 진보적인 군사평론가는 요즘의 왕따문화 때문에 자신이 군대생활 할 때는 없었던 집단왕따 현상이 일어났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군 인권 문제 발생의 원인을 군 생활에 부적합하게 길러진 요즘 청년들의 특성에서 찾으려는 선배 경험자들의 시도는 늘 활발하다.


‘경험의 벽’은 군 인권 문제에 대한 실체 인정과 원인 파악을 시작부터 방해한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국방부 장관에 여성을 임명하는 등 군대 개혁을 경험적 벽이 약한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공관병 갑질 사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도 직접 군인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이다. 한국의 징병제가 내포한 군대문화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페미니스트 여성학자들이다.


한국은 군대 문제를 이야기할 때 여전히 ‘군대도 안 가본 주제에!’라는 품평의 힘이 세다. 이 자격검증의 문화부터 극복해야 한다. 군 경험자들이 ‘경험의 벽’을 넘기 힘든 군대에 군대를 안 가본 사람들의 상식과 가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78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