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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힘이 희망이다

by 오직~ 2017. 7. 24.

서울 대흥동에서 혼자 사는 85살 황문자(가명) 할머니 이야기다. 친정엄마까지 일곱 식구가 창신동 하꼬방, 한강 모래사장 천막촌, 한강초등학교 수재민수용소, 경기도 광주대단지 집단이주 등을 거쳐 봉천동 달동네로 들어가 살 때다.


“연탄 열장을 다라이에 이고 산비탈을 찔룩찔룩허며 오르다 찌이익 미끄러지면, 진흙탕에서 난리가 날 거잖아. 연탄은 쏟아져 깨지고 떼굴떼굴 굴러가고, 사람은 나자빠져서 허리 다치고 무릎 깨지고. 나 넘어지는 걸 아줌니 하나가 잡아주다가 둘 다 다라이채 나동구라지구서는, 서로 쳐다보구 깔깔대구 웃었다, 야. 겨울 되기 전에 연탄가게에서 아랫동네에다 천 장씩 이천 장씩 부려놓거든. 그럼 여자들 몇이서 산동네 배달을 맡는 거야. …장마철에 비탈길을 올라가다 찌익 미끄러지면, 쌀봉투고 보리봉투고 툭 터져가지고는, 진흙바닥에 다 쏟아지는 거야. 그때 비닐봉지가 어딨어? 물 젖으면 녹아서 금세 찢어져버리는 누런 종이, 그걸루다 봉투를 했거든. 그건 손잡을 데가 없잖아. 그걸 하나두 아니고 여러 개를 웅쿠려 껴안구는, 새끼줄에 낀 연탄 두 장을 들구 올라가는 거야, 그러다가 자빠져봐. 연탄 깨지고 쌀봉지 터져 쏟아지고. 어구야 젠장, 그 지랄을 하구 살아낸 거야 내가, 하하하. …아닌 말루 나보다 나을 것두 없는 사람들이야. 그 한 푼을 벌겠다고 나랑 같이 젤 꼭대기 동네까지 다라이루 연탄배달 벽돌배달을 한 여편네들이야. 그런 돈을 빌려줬는데, 도저히 다 못 갚는다고 나자빠진 건데, 그 여자들이 ‘야밤 도주 안 해서 고맙다구, 어디 가서든 잘 살라’며 보내주더라구. 그렇게 딱지 팔아 영감 장례 해 주구 빚잔치하구, 상계동으루 간 거야.”


신바람을 내다가, 어느새 울먹인다. 고생을 견디느라 차라리 웃었고, 살아내느라 힘이 세졌다. 고난을 견디며 만들어진 힘은, 강하고 유연하며 전략적이다. 시혜로 다가가면 인사말로 받아 챙기며, 권리로 다가가면 눈을 마주치며 당당해지고, 존중으로 다가가면 천천히 마음을 준다. 빈곤은 물질 너머의 의제다. 빈곤에 대한 동정은 혐오이자 자기 불안이며, 기껏해야 물질주의자의 자기 안위다. 모멸감은 남들의 시선 때문이고, 자기 비하는 세상의 비교와 취급 때문이다. 빈곤과 무엇이든 할 거면, 이미 그들 안에 있는 힘을 볼 수 있으면 된다. 빈곤을 벗어나는 힘은 모르겠고, 빈곤을 견디는 힘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고난과 고통이 사회적 힘으로 모이는 경로는 내 구술생애사 작업에 눌어붙은 질문이자 미궁이다. 물론 딜레마는 오만가지다. ‘정상가족’은 바람으로만 남아 있지 현실에선 상당히 깨졌다. ‘글이나 씁네’ 하는 내가 단칸방에 혼자 사는 이혼녀라는 걸 알자, 작은딸이 아비 없이 만든 외손녀와, 카드빚 지고 도망가 소식마저 끊긴 작은아들과, 이혼해서 일본 가 사는 큰딸 이야기가 이어졌다. “큰아들네만 아직 그러구 사는데 그 년놈들 안 온 지가 삼년이 넘어. 눈에 보이면 심난밖에 더해? 다 나가 살고 혼자 사는 지금이 젤로 속편해.”


가장 큰 딜레마는 여전히 새끼들이다. 견디는 이유이자 보람이었고, 그래서 애와 증이 징그럽다. 손주세대들은 노동자와 국민 낳기를 포기한다니, 혹 희망은 거기에서 올지 모른다. 견디는 이유와 힘이 가족과 새끼를 넘어서는 건, 사회를 뒤흔들 수 있다.


참, 뻔뻔함도 큰 힘이다. 작년 삼복더위에 후원품으로 나온 선풍기를 갖다드렸더니, “아유, 고마워. 평생 고생만 하고 살았으니, 이제 내 꺼 없으면 있는 놈 걸루 살아야지 머, 하하하.”


최현숙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3952.html#csidx66bbdb15fba5f4a9f0aa8282717e8b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