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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깃발대회’의 의미 - 박권일

by 오직~ 2016. 12. 8.

그 깃발을 본 순간 현실감이 사라졌다. 잠깐, 뭐지? 내가 지금 뭔가 이상한 걸 본 것 같은데? 그런데 다시 봐도 ‘장수풍뎅이 연구회’다. 동시에 입에서 튀어나온 외마디. “헐!”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광장은 매주 기상천외한 깃발들로 채워졌다. “민주묘총”, “하야와 번영을!”, “혼자 온 사람들”, “고산병 연구회”…. 크기도, 서체도, 색깔도 제각각인 깃발의 숲 속에서 사람들은 깔깔대고 지저귀며 서로의 깃발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깃발을 보며 키득대다가 문득 14년 전 겨울이 떠올랐다. 촛불의 기원, 2002년 촛불집회 말이다. 시민들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중학생의 죽음을 추모하며 광장에 모였다. 수십만 촛불의 바다가 황홀하고 평화롭게 일렁였다.


겉보기와 달리 그때 광장 ‘내부’는 평화롭지 않았다. 깃발. 그렇다. 그놈의 깃발이 문제였다. 아스팔트 투쟁에 익숙한 운동단체들은 관성적으로 지도부 노릇을 하려 들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사람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스스로 “순수한 일반 시민”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운동단체들의 깃발을 내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집회 때마다 “깃발 내려!” 고함이 튀어나왔다. 깃발은 ‘불순’ ‘정치’ ‘선동’의 상징이었다. 적에게 트집 잡힐 수 있기에 깃발은 배제되어야 했다. 2002년을 기점으로 광장의 헤게모니는 “일반시민”에게로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2008년 촛불집회도 “순수한 일반시민”의 축제였다. 2016년의 촛불집회도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촛불시민은 정당한 시위 진로를 가로막은 경찰차벽에 맞서 싸우려는 동료 시민을 “프락치”라 불렀다. 반면 경찰 힘들까봐 경찰차벽에 붙은 항의 스티커를 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시민들의 ‘순수성 강박’은 여전히 집요하게 작동하는 중이다. 그러나 2016년 촛불에는 과거와 다른 점이 존재한다.


먼저 ‘전역성’(全域性)이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은 건 서울과 지방의 큰 온도차였다. 당시 광화문은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혁명적 분위기였음에도 지방 도시들은 과연 같은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싸늘했다. 2016년 촛불은 그때와 다르다. 전국 각지에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이슈가 다르단 점을 고려해야겠으나 어쨌든 2008년 촛불이 서울 중심적이었다면 2016년 촛불은 전국적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성찰성’이다. 2016년에도 촛불시민의 ‘순수성 강박’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저항의 방식과 관점에 대한 자성이 (지식인들에게서가 아니라) 촛불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국가가 허락한 시위’만 용납된다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과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폭력 대 비폭력’이란 이분법을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 광화문과 청와대라는 장소에 얽매이지 말자는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는 점은 각별히 기록될 필요가 있다.


2002년의 “깃발 내려!”는 14년 뒤인 2016년 ‘천하제일 깃발대회’가 되었다. 과거 십여년 동안 나는 촛불집회에서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 나눠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불 좀 빌려달라는 정도였다. 대개는 조용히 촛불을 들고 있거나, 구호를 외치거나, 걸어다녔을 뿐이다. 하지만 ‘장수풍뎅이 연구회’ 이후 생겨난 깃발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수다스럽고 즐거워졌다. 도무지 이해 못 할 깃발을 든 이들에게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장수풍뎅이든 얼룩말이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균질하고 순수한 촛불만이 아니라 제멋대로의 깃발을 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잉여로울’지라도 깃발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세계에 의미 있게 개입하려는 열망이 물질화한 것이 깃발이기 때문이다. 그중 어떤 깃발은 저항을 연결하는 매개이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좌표가 될 수도 있을 테다.

변화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리라. 분명한 건 2014년 4월16일 그날, 사람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영원히 깨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바닥을 경신하는 국가의 실체를 보며 우린 비로소 어떤 진실을 깨닫게 됐는지 모른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실은 우리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깃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3709.html#csidx4d09fc899e7a0dca2f5cda091c61c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