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혁명 D. H. 로런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 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달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것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류점석 옮김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이전의 오랜 시간 동안 모름지기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할 일은 두 가지뿐인데, 그것은 ‘사랑’과 ‘혁명’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철부지였다. 그런 유치하면서도 단호하고, 무책임하면서도 매혹적인 지침은 언제 내게 주입되었을까? 이 정언명령 같은 지침에 등장하는 ‘사람’에서 여성은 배제되어 있고, 따라서 이 말에서는 왠지 남근 냄새가 난다. 그래서 그런 남근주의는 아마도 고등시절, 한때 문학을 지망했으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것으로 자족하고 있던 대책없이 낭만적인 인간에 의해 발화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 말은 정액처럼 뿌연 안개 속에서 할 일도 갈 길도 찾지 못하고 있던 소년에게 그물을 찢고 나온 고등어처럼 혹은 한 줄기 섬광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청계천 헌책방에 가도 ‘혁명’이라는 제목만 보면 경련하듯 흥분했고, 형들이 보던 <사상계>에서 ‘실존주의 특집’ 같은 기획을 접할 때 ‘혁명’이라는 단어만 열심히 찾았던 것만 같다. 그리고 내 20대를 관통했던 길고도 긴 유신시절을 타력으로 지난 뒤, 나이 들어 우연히 이 번역시를 접했을 때, 그리고 이 시가 하필이면 그의 소문난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외설물로 찍혀 평생 고생했다는 D. H. 로런스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과 신선함은 낯설면서도 유별났다. 요컨대, 이 시를 접하기 전에 나는 혁명은 모름지기 ‘소름 끼치도록 진지’한 영역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낭패감은 더욱 컸다.
그랬다. 혁명이라는 해묵은 관념에 관한 한, 이 전복적인 시는 장쾌하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못에 찔린 풍선처럼 사람을 맥 빠지게 했고, 유머스럽다기보다는 스승의 아내를 사랑했고 그 대가로 주류에서 밀려 평생 가난에 시달리던 로런스의 삶처럼 쓸쓸하고 처연하면서도 한편 당당했다. 그런데 다소 자조적이라고? 그럴 리가 있는가. 광부의 아들이었던 로런스의 20세기는 학살의 시대였고, 또한 혁명의 시대였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 심지어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고 하니 사조나 유파에 종속되지 않는 이 잠언류의 인생파적 시는 반계급적이라기보다는 그 너머의 차원인, 삶이 매순간 혁명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의 체험시로 읽어야 할 것이다. 시인은 어떤 혁명을 권장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혁명이다. 자본주의는 시작부터 필연적으로 천민에게 합당했다. 슬프게도, 혁명가들 중에도 덕이 결여된 천민들이 많았다.
방금 선거가 끝났다. 이 번역시를 끄집어내면서 나는 이번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녹색당이 떠오른다. 의무만 강요받았던 국가로부터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 권리라고 녹색당은 주장했고 ‘노동이 재미’여야 한다는 로런스의 욕먹을 꿈에 그들은 일찍부터 동감했다. 모두가 경제발전이라는 지속불능의 낡은 깃발(인식의 산술적 평균)을 무기처럼 흔들어댈 때 대구 달서갑에서 30.1%의 놀랍고 눈물겨운 득표율을 얻어낸 내 한심한 후배 변홍철은 “자동차가 전쟁을 일으킨다”는 권정생 선생의 시대착오적인 말씀이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더 이상의 경제발전은 세계에 죄를 짓는 일이다”라고 호소했다. 이번에도 헛발질로 그쳤지만, 그 슬픈 ‘당나귀들’은 ‘돈을 좇는 혁명’이 아니라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소망했던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419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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