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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쓰는 부고, 천경자 - 서해성

by 오직~ 2015. 11. 17.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7368.html

 

 

 

 

 

천경자가 죽었다. 그는 죽었고, 이제 뜨거운 시간만 물감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아직 다 죽은 것만은 아니다.

 

가을이 아무렇게나 오는 건 아니었다. 올가을 길목, 천경자 부고가 뒤늦게 당도했다. 뉴욕에서 죽은 천경자 소식이 고향에 이르는 데는 두 달이 걸렸다. 천경자의 뼛가루는 제 그림 앞에서 스스로를 조문한 뒤 사라졌다. 큰딸은 어머니 육신을 먼 나라에서 화장하여 자식 같은 그림들이 걸려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을 잠시 회고하였달 따름이다. 이윽고 허드슨 강물에 뿌렸다는 뼈는 흩어져버렸고 그를 둘러싼 붓자국만 여적지 허공을 배회하면서 환을 치고 있다. 그의 삶과 죽음은 미처 마르지 않은 물감처럼 사람들 귓바퀴에 묻어 있다.

 

서울이 남녘 부산에 있던 피란시절 그는 <생태>로 세상에 통렬하게 나타났다. 서른다섯 마리 배암에서 서른다섯 살로 태어난 여인 천경자는 폐허에서 만난 차라리 황홀한 착란이었다. 환상 신비 꿈 또한 고독 낙담 비애가 오히려 죄 화려하였다. 때로 가장 정적인 인물화에서 지독한 혼돈이 엄습해왔다. 나병도 그에게는 꽃이었고 죽음마저 배암으로 혀를 내미는 형상이 징그러워서 더 싱싱했다. 천경자의 뜨거운 색채, 꽃도 아프다는 걸 한국인은 비로소 그를 통해 알았다. 악이거나 금기라도 그에게서는 하물며 요염하였다.

 

한낱 열여섯에 천경자는 여수 포구에서 일본으로 가는 도정에 제 이름을 바꾸었다. 그날 봉건과 인습 사이에 사리고 있던 자신을 반쯤은 죽였다. 구슬 옥 자 옥자는 거울 경 자 경자가 되었다. 그후 그 거울 속 여인은 늘 눈을 뜬 채로 자신을 응시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유혹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고 그리우면서도 슬프고 동경 어리면서도 필시 아무것도 보질 않는 눈은 상처받은 영혼을 후벼내면서 살아야 했던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이었다. 남편과 짧은 혼인생활이 끝나고 닥쳐온 가난과 동생의 죽음이 잉태시킨 불안을 견디기 위해 천경자는 인간사 흉물인 배암을 갈비뼈 밑으로 모셔왔다. 꿈틀거리는 뱀집 앞에서 행한 스케치를 통해 그는 죽어가는 자신을 가까스로 끄집어내올 수 있었다.

 

10·26 직후 김재규의 집에서 압수물품으로 나온 그림에 제목을 붙인 것은 군사독재의 검찰청 직원이었다. <미인도>. 미술관과 전문가들은 이 그림이 천경자의 작업이라고 거듭 확언했다. 기술적 검토 이전에 작가가 여전히 부지런히 활동중인 상황이었다. 외부 감정은 당사자가 부존할 때만 권능이 유효하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미인도> 사태는 그림 권력만 남고 예술은 처형당해버린 비극적인 미술사로 이제라도 성찰하는 게 마땅하다. 그 어름에 그는 한국 사회를 떠났다. 죽은 그를 두고 끝내 금관훈장 승급 따위로 희롱하는 건 망자의 고통을 더 흉하게 할 따름이다.

 

문자와 문자를 아무리 익혀도 끝내 원형질 사무치는 천경자는 문명의 세련미로 표현된 원시의 비의이자 용서받을 수 없는 탁월한 모순이었다. 불을 그리지 않아도 그는 불꽃이었고 불이 사모하는 황홀한 액체였다. 그는 한생을 바람과 이별 사이에 서식했다. 서식의 종류가 그림이었다. 그 서식방식대로 두는 것만이 그를 더는 처형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남도 사투리와 담배 한 대가 잘 어울리는 여인. 담배 피우는 여인으로 영정이 된 경우도 그가 처음일 터이고 금연시대의 압제 아래 앞으로도 어려울는지 모른다. 죽은 천경자가 용서한다. 누구도 그를 용서할 수는 없다. 오직 스스로 용서할 뿐이다. 다만 한번만 돌아보시라. 여기 겨울 배암 한 마리가 그림에서 나와 절을 올리오. 담배 한 대 태우고 가시라. 뜨거운 물감은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