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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노예의 길 - 박성민

by 오직~ 2015. 11. 24.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18400.html

 

 

 

 

 

반독재 투쟁보다 어려운 반독점 투쟁

2000년대 이후의 패권은 논란이 있다. 나는 관료가 패권을 차지했다고 보지만 어떤 이들은 재벌이라고 단언한다. 어쨌든 정치가 몰락한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력 판도는 외환위기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파워그룹의 신질서가 만들어낸 것이다. 관료와 재벌이 패권을 원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어쨌든 정치가 힘을 잃자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고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2000년대 들어 파워그룹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 법원, 헌법재판소, 검찰, 그리고 로펌을 포괄하는 ‘법조’가 그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최고, 최후의 판단자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 2015년 대한민국의 패권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선출된 권력인 정치는 다시 밀려났다.

반독재 투쟁보다 반독점 투쟁이 훨씬 어렵다. 가장 힘이 센 자와 가장 자주 보는 자와 가장 분노해야 할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적이 안 보이는 시대다. 반독재 시대가 칼싸움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적이 누구인지, 어디서 공격하는지 알 수 없는 ‘테러의 시대’요 ‘드론의 시대’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엘리트들이 다 포섭되었기 때문에 ‘어용’도 없고 ‘사쿠라’도 없다.

1990년대가 ‘개혁의 시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개혁의제를 선도했던 ‘시민단체’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2000년 총선에서의 ‘낙천·낙선 운동’ 이후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만일 대한민국이 운이 좋았다면 시민단체의 공백을 채워주는 것을 뛰어넘어 한국 사회에 사상적·전략적·정책적 자양분을 공급해줄 ‘싱크탱크’로의 전환이 활발히 이루어졌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전환에 실패했다. 대한민국은 전략적으로 개혁의제를 선도할 ‘지적 네트워크’가 경제 규모에 비해 굉장히 취약하다.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공공성이 결여된 이기적인 사회가 되고 말았다.

자유를 버리고 1970년대로 도피한 2015년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정치, 자유, 개혁의 시대였던 1990년대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응답하라 199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