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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언어의 홍수 속에서 - 김종철

by 오직~ 2015. 9. 29.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0312.html

 

 

 

 

10년 전쯤 나는 재일조선인 작가 고사명(高史明) 선생을 찾아뵌 적이 있다. 선생은 식민지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으로 목숨을 부지했던 무학(無學)의 부모한테서 태어나 심히 불우한 유소년기를 보내고, 온갖 고초와 간난신고의 세월 끝에 <어둠을 먹다>, <살아있는 것의 의미> 등 자전적 소설과 에세이 등을 발표하면서 일본 문단에서 주목을 받았던 재일 2세 작가이다.

 

내가 고사명 선생을 뵙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그의 작품 자체가 주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분이 가끔 쓰는 에세이에서 ‘근대적’ 삶에 대한 매우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물음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에게서 항용 보는 고답적이고 난해한 언어유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였다. 고사명 선생의 ‘반근대주의’ 논리의 밑바닥에는 무엇보다 개인적인 엄청난 고통, 슬픔이 있었다. 그가 겪은 극빈과 폭력적 환경 속의 성장과정, 청년기의 고난 이외에도, 그에게는 남다른 비극적 경험이 또 있었다. 즉, 그가 늦은 나이에 본 외아들이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자살을 한 것이다. 인생의 무의미를 너무도 일찍 자각한 한 조숙한 소년의 ‘철학적’ 자살은 일본 사회에서 인정받는 작가로 등장하면서 겨우 안정을 찾아가던 고사명이라는 개인 전체를 뿌리째 흔들어놓았고, 그것은 그가 모든 것을 근원적 시각에서 다시 보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도쿄에서 남쪽으로 열차를 타고 1시간 넘게 가면 오이소(大磯)라는 풍광이 아름다운 작은 해변 도시가 있다. 그곳의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역사교사를 지낸 일본인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고사명 선생의 지극히 평온한 얼굴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처음 대했을 때, 나는 엄청난 고통과 슬픔 속에서 진정으로 성숙하고 지혜로운 인간이 탄생한다는 말이 완전히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내가 본 고사명 선생은 이미 소설가는 아니었다. 내가 미처 몰랐지만, 선생은 벌써 오래전부터 불교사상에 귀의하여, 특히 ‘정토진종’의 개조(開祖)인 신란(親鸞)에 대한 우수한 해설서를 쓴 저자이기도 했다.

 

신란의 사상은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중세 이래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해온 대표적인 불교사상인데, 그 핵심은 특별한 수행과 공력을 쌓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든지 ‘아미타불’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것으로-염불을 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타력본원’(他力本願) 사상이다. 끝없는 전란으로 온 세상이 피바다로 변하고 백성의 삶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던 시절에 어떻게 하면 가엾은 백성이 삶의 위안과 용기를 얻을 것인가 - 아마 이것이 정토진종 사상의 탄생 배경이었던 듯하다. 따져보면 최소한이나마 종교적 수련을 행하고, 보시(布施)를 하는 것도 조금이라도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덕행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탄에 빠져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밑바닥 백성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서 신란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에 따르면, 오히려 무엇인가 덕을 쌓아서 자력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행위야말로 어리석은 행위, 교만의 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내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아미타불의 가호를 믿고 지금 내게 주어진 나날의 일에 안심하고 몰두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이다.

 

그리하여 신란은 매우 역설적인 말도 삼가지 않았다. 즉 “선인(善人)도 구원을 받는데, 하물며 악인(惡人)이 구원을 못 받으랴?” 이것은 정토진종 사상 특유의 악인정기(惡人正機)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선인과 악인을 오늘날의 용어로 지배 엘리트와 민중이라고 각각 고쳐서 부르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기는 이 급진적 민중사상은 정토진종의 것만은 아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의 말도 결국은 이와 다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애초 의도했던 것과 좀 다르게 흐르고 말았는데, 실은 이 글을 시작한 것은 그날 고사명 선생을 만났을 때 옆에서 통역을 해준 재일동포 김원중 씨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바상과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는 김원중 씨는 고교 시절에 고사명 선생의 부인 오카 유리코 씨에게 배운 제자라고 했다. 그 인연으로 오랫동안 고사명 선생 부부와 교분을 맺고 살아왔는데, 한국에서 누군가가 찾아온다고 연락이 왔으니 통역을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다고 했다. 별로 유창한 한국말은 아니지만 김원중 교수가 그날 성심껏 통역을 해준 덕분에 나는 고사명 선생과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고서는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최근에 <한겨레> 기자 출신 김효순 씨가 쓴 <조국이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70,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순전히 정권안보를 위해 걸핏하면 간첩 혐의를 씌워 모처럼 조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들의 삶을 망가뜨려놓았던 사례들이 정리돼 있는 이 책 속에서 뜻밖에 바로 그 김원중 씨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나는 그가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와서 대학원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간첩 누명을 쓰고 7년이나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기막힌 대목을 만났다. 유학생 김원중은 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가 몇날 며칠인지 잠도 못 자고 고문을 당하면서 거짓자백을 강요당한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그는 조서의 한 칸에 존경하는 인물을 써넣으라는 심문자의 요구에 잠시 망설이다가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름을 적는다. 나중에 자신에게 결정적인 불이익을 가져다줄 빌미가 될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한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학부 때부터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한 학도로서 평소에 마르크스와 레닌을 존경해온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토록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동시에 그는 아무리 대한민국이 광적인 반공국가일지라도 마르크스 사상을 연구하는 것과 공산주의 운동을 실제로 행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설마 혼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러한 순진한 믿음이 통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군사독재 시대의 이야기지만, 한때 문단에는 어느 소설가가 정보부에 잡혀가 조사받은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혐의는 반공법 위반이었다. 즉, 소설 속에서 ‘인민군’을 미화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소설 속 어느 대목에 6·25 전란 동안 일시 인민군 치하에 들어간 어느 남쪽 지방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어른들의 지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라고 부르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 공안당국의 논리는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말 앞에는 무조건 ‘소위’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고, 따라서 소설의 작중 상황에서도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의 삶은 지극히 몰상식한 논리, 조금도 이치에 맞지 않는 거짓언어 위에 구축되어 왔다. 문제는 이 상황이 군사독재의 종식으로 끝난 게 아니라 형태를 달리하여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이 경제를 죽인다느니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기업이 산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국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이 거짓언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삶은 끝도 없이 황폐해지고 있다. 대체 이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