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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서해성

by 오직~ 2014. 5. 11.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6330.html

 

 

 

 

우화는 끝났다. 공주의 운명은 여기까지다. 이제 놀이를 끝낼 차례가 되었다. 공주놀이가 길어지면 이야기가 지루해지고 현실이 문득 생생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 한국 사회는 중세적 회귀와 순환 패턴으로 권좌에 오른 한 사람에게만 동화이고 나머지에게는 눈물마저 말라붙는 지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취임 뒤 한 해 동안 100벌이 넘는 맞춤옷을 입었다는 말에서 보듯 그는 공주 노릇에는 적임이었다. 사실 잔치를 즐기는 데는 그다지 재능이 필요하지 않다. 문제는 정치란 고통에 대한 공감과 위기관리능력에 있다는 점이다.

 

 

모든 정치권력은 성공해야만 한다. 그 실패가 몇몇 지도자의 몫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언제든 주권자에게 훨씬 가혹한 까닭이다. 명백히 상식에 어긋난 대선부정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그동안 항의와 저항의 언설을 다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 또한 크게 봐 다르지 않다. 4월16일, 그 지형은 붕괴되었다. 권력의 변화에 대한 인내나 능력에 대한 기대가 세월호와 함께 저마다의 가슴에서 소멸해버렸던 것이다. 사고 자체도 그렇지만 이어진 구조활동은 보통사람의 안목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의 연속일 뿐이었다.

 

 

저 팽목항에 가보았을 때 거기 국가는 없었다. 오직 거대한 죽음과 모종의 위력만이 군림하고 있었다. 빗발치는 민심은 한낱 개인적 혐오나 애증일 수 없다. 사고 뒤 이제껏 정부는 어설픈 장의사 노릇 말고는 정작 온전히 한 게 없지 않은가. 그가 혼인했다는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국민들이 병역과 납세와 근로로 유지시켜온 국가는 어느 물 밑으로 사라졌는가. 때를 놓친 인색한 사과와 마찬가지로 이마저 대답할 차례가 지나가고 있다. 단언컨대 주권자가 무릎을 꿇고 애원해야 하는 권력은 근대국가의 모습일 수가 없다.

 

 

방파제를 치고 올라오는 파도 소리가 엄마를 부르는 그 현장에서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우리가 인간사회 이전에 생물집단으로서 실패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을 앞에 둔 채 한국 사회는 불이 꺼진 뒤에 오거나 불이 꺼지길 기다리는 소방관 같은 행세를 했을 뿐이다. 물리력의 총량을 동원한 전쟁도 아니었고 총칼로 베어 죽이는 학살도 아니었다. 구조 0명. 생환 0명. 이로써 한국은 제로 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생명상실, 정치상실, 국가상실, 미래상실, 또 시장의 상실이다. 이익을 기초로 하는 시장사회에 대한 믿음의 최소한까지 붕괴되었다. 그날 아이티(IT)강국의 스마트폰은 소통이 아니라 배 안에서 죽음을 기록하는 장치가 되고 말았다.

 

 

이 0의 사회에서 무엇을 더 잃어버릴 것인가. 어버이는 자식을 잃었고 산 자는 생명공동체를 잃었고 세월은 내일을 잃었고 시인은 서정을 잃었다. 이미 현 권력 등장과 동시에 절차의 투명성으로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본체는 시들었고 사회양심에 기초해야 할 언론은 박멸되었다. 한 개 혀로 두 말을 하는 갈라진 뱀의 진실은 언론일 수 없다. 마침내는 사태를 모면코자 존재하지 않는 적을 생산해내 슬픔과 비극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하거나 죽음을 희롱하는 언행은 실로 사악한 짓이다. 이러한 사태를 방관하는 일을 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묻고 있다.

 

 

0은 우화의 종말을 명시하고 있다. 드레스를 벗고 맨발로 내려와 먼저 울지 않는 우아한 권력 따위는 필요 없다. 권력과 이익이 있는 모든 처소에서 타락이 일상적으로 수행되어왔음을 세월호는 앞뒤로 입증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를 이 0에서 새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야당을 포함한 권력과 이익의 성질을 바꾸고자 하는 행동 없이 이는 불가능하다. 맹골수도를 지나고 있는 검은 물결은 무엇을 구하였기에 이렇게 또 아침은 오는 것인가. 일어서지 않는 자 무릎이 썩을 것이다.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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