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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주무르며 누린 ‘기춘대원군’의 40년 권력 - 한홍구

by 오직~ 2014. 1. 5.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7380.html

 

 

 

온갖 환경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3억2천만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지구의 터줏대감 바퀴벌레. 그 어떤 방법으로도 퇴치가 불가능하다는, 마음 고쳐먹고 동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그 바퀴벌레. 오뎅은 한국 엘리트 집단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저녁때 장사를 나와 오뎅을 끓이면 새벽에 일 마칠 때까지 통을 비우는 법이 없다. 오뎅이 많이 팔리면 꼬치 더 집어넣고, 국물 졸아들면 물 더 붓고, 싱거우면 간장과 양념 치고, 무 더 썰어넣고, 그렇게 해서 새벽까지 통을 비우지 않고 오뎅을 판다.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조선에서 일제시기로, 일제시기에서 해방으로, 군사독재에서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그 숱한 상황변화에도 한국 엘리트 집단의 본류는 단절된 적이 없다. 그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 한국 엘리트 집단이라는 종을 대표하는 개체가 바로 ‘왕실장’ 김기춘이다.

 

“유신헌법은 박정희가 구상하고 신직수·김기춘이 안을 만들었다”

 

문세광 사건 수사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 김기춘은 그 공으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승진했다.

 

유신 시절 동기들이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앞서가던 김기춘은 5공 때는 찬밥을 먹었다. 세월이 바뀌어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뒤 여소야대 상황에서 5공 청산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을 때, 5공 시절 찬밥을 먹은 김기춘은 1988년 12월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무대의 중앙에 복귀했다.

 

14대 대통령선거를 이틀 앞둔 1992년 12월16일, 전 법무장관 김기춘이 부산에서 부산시장·검사장·경찰청장·안기부지부장·교육감·기무부대장·상공회의소장 등 기관장을 모아놓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지원할 것을 모의했는데 이를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아들 정몽준 의원 쪽에서 도청하여 녹음한 테이프를 공개한 것이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지만, 뒤집기의 달인은 따로 있었다.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달던 현장에서 적발되자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은 일을 가녀린 여직원을 무지막지한 자들이 감금한 인권유린 사건으로 뒤집은 신공은 이미 20년 전 초원복집 사건 때도 발휘되었다. 이 사건은 공권력을 동원하여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파렴치한 부정선거 모의가 아니라 불법적 반인륜적 도청사건이 된 것이다.

 

법비(法匪)란 말이 있다. 온갖 비적이 들끓던 만주에서 가장 무서운 비적은 법으로 무장한 법비였다. 김기춘이야말로 법비 중의 법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