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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이 묻습니다…국가란 무엇이냐고” - 이계삼

by 오직~ 2013. 12. 21.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616373.html

 

 

 

“부모 자식 간의 교육 중에서 언어로 되는 게 별로 없지 않나? 교육학 용어로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좋은 가르침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가치를 알아보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교육에 대한 평가는 근본부터 엉망인 거다. 당장의 1년치 활동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신학기 돼서 만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선생님한테 스승의 날이라고 감사를 표하라고 하는 게 얼마나 난센스인가? 좋은 가르침은 언어로 다가와 맴도는 게 아니라 삶 전체를 주고받으며 체화되는 것인데.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도 한참 시간이 흐르고 20대가 되어서였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느꼈던 위압감이나 때때로 행사하는 폭력을 이해하게 된 것도 그때고….”

 

 

“어머님은 교육을 많이 받지 않으셨지만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일기를 쓰셨다. 속상한 얘기도 쓰시고 텔레비전 드라마 대사를 쓰기도 하고, 최명희의 <혼불>도 두세 번씩 읽을 만큼 지적 욕구가 강한 분이셨다. 아버지도 다변이고 반골 기질이라 신문을 빠짐없이 탐독하셨다. 없는 살림에도 조선, 동아일보를 두 개나 구독했는데, 배달원이 밀양역 차량기지 직원한테 신문을 맡겨 두면 내가 그걸 집까지 들고 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덕에 나도 어려서 시사에 밝은 편이었고, 글을 쓰면 어른들이 칭찬도 해주셨다.”

 

 

“지성과 통찰력은, 학벌과 아무 상관없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통찰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책에는 지성이 담겨 있지만 반지성도 있다. 풀뿌리 감성을 가지고 있는 이런 할머니들을 봐라. 그분들이 얼마나 지성적인가. ‘국가가 뭐냐?’고 묻지 않나. 법조계에서 수십년 권력의 주구가 되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이런 질문 하지 못한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 그렇다. 국가라는 괴물이 무섭다. 국가는 자기반성도 모르고 자기 과오도 인정하지 않는, 자본의 해결사가 되었다. 이 싸움이 패배할지 승리할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의 승패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패배하느냐’이다. 사람들이 나가떨어져서 절망만 가져가는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이 싸움을 빛나는 기억으로 가져가느냐. 송전탑이 세워져도 삶은 지속되는 거니까…. 이 싸움을 함께 한 사람들이 송전탑이 세워지는 어디든 함께 가서 증언하고, 원전이 세워지는 어디에서든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먹을 것을 나누고 함께하는 관계망이 만들어지는 것. 그걸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가 없다. 아슬아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쭈글쭈글한 할매, 할배들의 선한 얼굴을 생각하면 손을 놓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