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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아산 온양행궁과 재래시장

by 오직~ 2010. 11. 6.

 

아산시청에서 온양행궁터 거쳐 온양전통시장까지 4.5㎞
 

충남 아산엔 이름난 온천이 세 곳 있다. 온양온천역 부근에 13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온양온천이 있고, 도고면에는 200년 역사의 도고온천이, 음봉면엔 20여년 전 개발된 아산온천이 있다. 온양온천은 1960년대까지 대표적인 국내 신혼여행지. 최근엔 수도권 어르신들이 전철 1호선을 타고(어르신 무료!) 와 온천욕 즐긴 뒤 국밥 한 그릇씩 자시고 돌아가는, 당일치기 여행지로 각광받는다. 아산시청에서 출발해 옛 시장골목을 돌아 온양행궁 터와 어의정을 거쳐 온양전통시장까지 걷는다. 온양장날(4, 9일)을 택한다면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옛 장터 명맥 잇는 50년 경력 대장간·30년 뻥튀기집

아산시청 앞 공원에서 조선 초의 청백리 정승 고불 맹사성(1360~1438)의 동상<278A>을 만난다.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고불의 고향이 온양이다. 아산시 배방면 중리, 600년 된 두 그루 은행나무(맹씨행단) 옆에 그가 살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고택이 있다. ‘…강호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그가 지은 ‘강호사시가’를 우물거리며, 샛노란 옷을 입은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걷는다. 일부 복개된 온양천(온천천)을 건너며 하류 쪽을 보니, ‘살진’ 고기들 노닐었을 물길에선 생활오수만이 흐른다.

 

장날이면 강아지·토끼·오리·닭들이 나오는 동물시장<278B>이 열리는 주차장 지나, 밀냉면을 잘 하는 신정식당·강원냉면을 거쳐 옛 시장 골목으로 든다. 온갖 장류를 팔았다는 된장골목, 부대에서 나온 깡통들을 펴 팔던 깡통골목, ‘니나노 술집’으로 이름난 ‘장미골목’이 있었던 옛 번화가다. 도로확장 공사로 된장골목은 사라지고, 나머지 골목들도 쇠퇴해가는 중이다.


» 온양온천역 고가철길 밑에선 풍물시장(4, 9일)이 열린다. 삼태기·소쿠리·광주리들이 쌓여 있다.

“낫 하나는 전국에서 알아준다”는 대장간으로 간다. “물건을 갖구와야 곤치지, 보지두 않구서니 말루다 워치게 곤친디야.” ‘창구대장간’<278C> 주인 허창구(66)씨가 두 손으론 불꽃을 튀기며 삽날을 갈고, 귀로는 농기구 수리 문의를 받고 있다. 12살 때부터 대장간 일을 해온 50여년 경력의 장인(충남 무형문화재 대장장 기능보유자)이다. 지금도 쇠를 불에 달구고 두드려 낫과 쇠스랑·호미·곡괭이 등을 만든다.

 

‘장미골목’ 거쳐 다시 복개천으로 나선다. 동일목재 앞길 양쪽에 옥수수·쌀·보리를 튀겨주는 ‘뻥튀기 집’<278D>이 두 곳 있다. 할머니 대여섯 분이 들고온 곡식을 깡통에 담아 두고 차례를 기다린다. 시커먼 무쇠기계가 불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뜸을 들인 뒤, 마침내 ‘펑’ 소리와 함께 몇배 부피의 먹을거리가 터져나온다. 가게 이름도 없이 30여년간 구수한 간식거리를 만들어온 김영선(61)씨는 “먹을 게 워낙 많아지니 손님이 점점 줄어든다”고 말했다. 한 깡통 튀기는 데 3000원.


농약·종묘사·그릇가게 골목으로 든다. 장날이면 골목에 흰 천막을 치고 옷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원래 여기가 온양장(재래시장)인데 저짝(길 건너 온양전통시장)에 비하면 상권이 팍 죽었다.”(그릇가게 주인 홍종구씨·73) 옛날식 온천 목욕탕 신정관 앞을 지난다. 온양온천관광호텔, 신천탕과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부터 운영돼온 목욕탕이다. 서울 신길동에서 전철 타고 왔다는 할머니 두 분이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다. “물이 좋아서 일주일에 두번씩 와요, 목욕하러.” 온양온천역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온천욕 2800원.

 

네거리 모퉁이의 온양온천관광호텔로 들어간다. 조선 임금들이 온천욕을 하려고 찾던, 온양행궁 터가 이곳이다. 태조 때 첫 임시행궁이 지어진 뒤 세종 때 규모를 갖춘 행궁이 완성됐다. 세종은 안질 때문에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세조 행차 때(1476년)는 온천 옆에서 새로운 샘(신정)이 발견돼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성종 때 다시 세운 신정비(1483년)<278E>가 호텔 정원 옆에 있다. 본관 옆엔 ‘영괴대비’<278F>와 고사목이 된 느티나무들이 있다. 영괴대란 영조가 왕세자(사도세자)와 함께 행차했을 때(1760년), 세자가 활쏘기 등 무예를 연마하던 장소에 3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게 했던 곳을 말한다. 정조 때는 이 나무 둘레에 대를 쌓고, 기념비를 세웠다. 비 앞면의 ‘영괴대비’ 글씨는 정조 친필이다. 신창면 쪽에서 옮겨온, 머리 부분을 새로 만든 온천리 석불도 옆에 있다. 호텔 본관에는 온양행궁과 관련한 자료와 사진을 볼 수 있는 ‘온양행궁 전시관’이 있다. 온천욕 5500원.

호텔을 나와 길 건너 고가철길 밑으로 간다. 철길 기둥들은 온양행궁 관련 옛글과 조각상들로 장식돼 있다. 철길 밑은 자전거 전용도로다. 온양온천역에서 신정호수(둘레 4㎞)까지 이어진다. 역과 신정호에 각각 100대의 무료 자전거가 마련돼 있다. 50년 가까이, 3대째 젓갈을 팔고 있다는 굴다리식품<2790>을 들여다본다. 새우젓·황석어젓 사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전용 토굴까지 갖추고, 서울서 전철 타고 오는 손님을 맞는다.

 

남산사거리 옆 골목 아산문화원에 들르면, 온양 역사·문화와 관련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제일타워 뒷골목으로 오른다. 제일타워 자리는 옛 동방극장 터다. “동방극장도 사라지고 온양역 앞에 있던 온양극장도 없어지고, 인구 27만의 도시 아산에 극장이 없어요. 영화 보려면 천안까지 나가야 하죠.”(시청 권경자 홍보기획팀장)

 

어의정(御醫井)을 만나러 간다. 섹시다방·꿀벅지클럽 등 자극적인 간판들 즐비한 유흥가 거리를 한동안 걷는다. 옛 물길을 덮어 만든 복개천 도로다. 어의정은 세종대왕이 그 물로 눈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우물이다. 어천·어정수로도 불린다. 밭 가운데 방치돼 있다가, 89년 조사를 거쳐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재를 모아 복원했다. 그러나 “5~6년 전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물이 완전히 말라버렸다.” 김용호 온양2동 자치위원장이 말했다. “그래도 어의정은 주민들의 자존심입니다. 웬만한 행사·단체·모임 이름 앞엔 다 어의정이 붙지요.”


» 세조가 온양에 머물 때 새로운 샘(신정)이 솟은 내용을 기록한 신정비. 성종 때 다시 세운 것으로 온양온천관광호텔 안에 있다.

온양온천역까지 내려가는 길은 “반듯하게 구획정리한 주택가”여서 단조롭다. 일부 주택 낡은 담벽은 벽화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온양온천역 옆 고가철길 밑에선 장날(4, 9일)이면 풍물시장<2792>이 떠들썩하게 펼쳐진다. 채소·나물·과일에서부터 삼태기·키·광주리·싸리비까지 주로 어르신들이 펼치는 좌판이 촘촘하게 깔린다. 대광주리 3만원, 키 5000~4만원. 역 앞 공원 한쪽엔 51년 세운 ‘이충무공사적비’(정인보 글, 김충현 글씨)와 비각이 있다. 현판은 이시영 전 부통령이 썼다. “50~60년대 신혼부부들이 기념사진 찍던 곳이죠.”(주민 홍기표씨)

 

‘온양전통시장’으로 들어선다. 첫 골목은 의류·화장품·패션용품 가게 즐비한 젊음의 거리, 두번째 장옥시설이 된 골목은 음식점 거리, 세번째 골목은 잡화점 거리다. 시민문화복지센터 지하 극장에선, 어르신들의 사랑과 재혼 문제를 다룬 악극 ‘아빠의 청춘’을 공연중이다(11월27일까지 목·금·토요일).

 

“뭐 좀 신나는 노래 읍디야?” 시장 라디오방송 인기 ‘짱’

 

색색의 복분자·흑미·녹차 호떡을 파는 수레 앞을 지나는데 방송이 흘러나온다. “상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날씨도 좋고, 장날이고, 또 상인 씨름대회도 열리고, 얼마나 좋은 날입니까…다음 들려드릴 곡은 나훈아의 ‘사랑’.” 서툴지만 정감 넘치는 아주머니 목소리. 상인들이 운영하는 시장 내 라디오방송(온궁미니방송국)이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곳은 온양상설시장 건물 2층 ‘유유자적 카페’. 평소엔 음악을 내보내고 하루 2시간씩은 상인 8명이 번갈아가며 진행자로 나서 시장 소식과 정보를 전한다. 초기엔 시끄럽다며 반발하는 이도 있었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노래를 틀면 즉각 항의 전화가 들어온다. “너무 처지네그랴. 신나는 거 좀 읍디야?”

 

유유자적 카페는 방치돼 있던 옛 고시원 자리를 새단장해 지난 10월 초 문을 연, 상인과 고객들을 위한 공간이다. 한식·분식을 내는 식당과 카페, 모임방·창작공방 등이 마련돼 있다. 65살 이상 어르신에겐 음식값을 2000원, 커피 등 차를 1000원 깎아준다. 카페 아래층은 소머리국밥집 15곳이 모인 먹거리장터다.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점심(12~3시)엔 5000원짜리 국밥을 3000원에 판다. 아산시청에서 여기까지 4.5㎞를 걸었다.

 

그리고, 더 볼 곳이 있다. ‘온양’을 제대로 알려면, 고개 넘어 온양6동(옛 온주동)으로 가야 한다. 온양이란 지명이 유래한 곳이다. 조선시대 관아건물인 동헌과 그 문루인 온주아문, 온주향교, 그리고 읍내리 당간지주(보물 537호)를 볼 수 있다.

 

 

 


 

20101104한겨레 아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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