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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화려한 옛 기억 부여안고 무너져가는 교동도의 풍경들

by 오직~ 2010. 11. 21.

유배 터의 쓸쓸함도 즐길 만하더라

» 교동도의 늦가을 풍경과 역사유적지를 자전거로 둘러보는 이들도 많다. 화개산 동쪽 상룡리 고갯길의 라이더.
외딴 마을, 조용한 여행지를 선호하시는 분들, 적적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도 마다않는 분이라면 교동도 여행 강추다. 섬이란 대개 외진 곳이지만, 수도권 섬 무리에 속하면서도 교동도처럼 여행자들 발길이 덜 닿은 섬도 드물 것이다. 요즘엔 옛것, 낡은 것에 관심을 갖는 젊은층도 부쩍 늘었다. 방송(‘1박2일’)에 소개돼 관심을 모은 교동도의 낡고 누추한 시장골목(대룡시장)으로 20대 남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자전거를 싣고 들어와 구석구석 페달을 밟아 둘러보는 이들도 눈에 띈다. 대룡시장 말고도, 을씨년스럽게 허물어져 방치돼 있는 옛사람들 흔적이 수두룩한 곳이 교동도다.

 

우거졌던 잡풀 시들고 현란한 단풍빛도 바랜 늦가을이니, 고려·조선 왕족들의 위리안치 유배지이자, 군부대 철조망에 갇힌 교동도 풍경이 제대로 쓸쓸하게 다가올 터이다.

 

» 고구리 영산골(연산골)의 700년 된 느티나무. 주민들이 연산군 위령제를 지내는 나무다.

한강·임진강 물과 예성강 물이 합쳐지는 물길 어귀, 교동도는 삼국시대 이래 서해안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조선 중기(인조)엔 경기·황해·충청 삼도 수군을 관할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됐던 중요 섬이다. 마을에 바닷가에 산자락에 남아 있는 교동도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방치된 성곽 교동읍성 | 교동면 읍내리. 조선 인조 때, 고읍리에 있던 읍성과 관아가 옮겨와 형성된 마을이다. 비석거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면 성곽 흔적과 함께 곳곳에 흩어진 석조물들이 다가온다. 비석거리는 옛 교동부사·군수들의 행적을 기려 세운 선정비·불망비들을 모아 세웠던 곳이다. 길 넓히고 농지 개간하며 옮겨 다니다, 지금은 교동향교 들어가는 길목에 39기의 비석들을 모아 세웠다.

 

무너져가는 성곽 흔적 중 가장 뚜렷이 남아 있는 것이 남문 석축이다. 교동읍성에 있던 동·남·북문 중 남문인 유양루 자리다. 문루는 사라지고 홍예와 주변 성벽만 남아 있다. 1921년까지 누각이 남아 있었으나, 폭풍으로 허물어져 철거했다고 한다. 문으로 들어가 길 오른쪽으로 잠시 걸으면 민가주택 뒤 밭둑에 선 두개의 돌기둥과 돌계단을 볼 수 있다. 교동부 관아로 드는 내삼문이 있던 자리다. 내삼문 초석은 본디 넷이었으나, 두개를 일제강점기에 교동공립보통학교(교동초교)에서 가져가 교문으로 썼다. 교동초교 안에서 교명이 새겨진 초석을 볼 수 있다. 돌기둥 위 산자락에 무너진 시멘트건물 터가 있는데, 이곳이 관청이 있던 교동부 터(교동부지)다. 일제강점기엔 금융조합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민가 자리는 옛 객사 터로 추정된다. 집주인 한기일(70)씨가 말했다. “허물어져가는 한옥이었는데 하도 낡아서 집수리를 하려다, 목수가 헐고 새로 짓는 게 낫다고 해 허물어버렸지. 그때 나온 주춧돌들이 저거여.” 주춧돌 등 여러 석재들을 세워 밭의 경계석으로 쓰고 있다. 집 앞 길옆엔 짜 맞춘 우물 정(井)자 석재가 그대로 남은 커다란 우물이 방치돼 있다. 읍성 성곽은 무너져내리긴 했지만, 원형이 살아 있는 모습이다. 북문 터 성곽 안쪽 커다란 오동나무 밑에 연산군의 폐비 신씨 초상을 봉안했다는 사당 부근당이 있다. 이 주변은 철종이 어린 시절 살던 잠저지이기도 하다.

 

» 남산포구에 정박한 배들이 밧줄을 묶던 계류석

 

삼도수군통어영 남산포 | 읍내리 바닷가 포구가 남산포다. 어항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배 한척만이 밧줄에 묶인 채 풍랑에 출렁인다. 지금은 썰렁해졌지만, 일제강점기까지 죽산포와 함께 중국·일본 배들이 드나들던 포구다. 교동문화보존회 한기출씨는 “남산포는 조선시대 중국 등 외국 배들이 한반도로 들 때 기항하던 중심포구였다”며 “60년대까지 운행했던 철선 갑제환호도 인천에서 교동 남산포를 거쳐 연백까지 오갔다”고 말했다. 남산포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있던 자리이자, 중국 사신을 맞는 장소(대빈창)이기도 했다. 남산(진망산) 위에 사신당이 남아 있다.

 

남산포로 드는 길 삼거리 왼쪽 시멘트창고 건물 옆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높이 1m쯤 되는 돌기둥 하나를 볼 수 있다. 전성기 남산포구에 정박한 배들이 밧줄을 묶던 계류석(사진 위)이다. 여러개가 줄지어 있었다지만 하나만 남아 방치돼 있다.

 

화개산 자락 화개사와 교동향교 | 화개산(260m)은 교동도의 최고봉. 산 남쪽 자락에 조선 인조 때 고읍리에서 옮겨온 교동향교가 있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동재·서재 등의 건물 형태와 배치가 독특하다. 왼쪽 담 옆에선 물맛 괜찮은 약수가 솟는다. 화개사는 비구니 스님 한분이 지키는 자그마한 암자다. 이 절도 고읍리 쪽 절골에 있다 옮겨왔다고 한다. 법당 건물은 영락없는 한옥의 모습이다. 여기 얽힌 사연이 우습고 씁쓸하다. “옛 법당이 불탄 뒤 불상을 모실 곳이 없어 임시로 요사채에 모셨는데, 결국 이 불상을 한 대학교에 팔아 마련한 돈으로 읍내리의 김씨 부잣집 사랑채를 사들여 옮겨 지었다”(한기출씨)고 한다.  

 

 

» 영산골 화개산 등산로 초입의 옛 한증막. 70년대까지 실제 사용했던 한증막으로, 석축을 한겹 덧씌워 외형이 다소 커졌다고 한다.

고읍리와 연산군 유배지 | 고구리는 일제강점기 고읍리와 구산리를 합치며 지은 지명이다. 고구리 저수지 귀퉁이에 고읍리가 있다. 읍내리로 읍성을 옮기기 전까지 관아가 있던 고려시대 읍성 터다. 마을을 둘러싼 낮은 구릉 위에 남은 토성과 석축 흔적, 옥사 터(형옥지) 등을 볼 수 있다. 한기출씨는 “화개산 자락 쪽을 살펴보면 옛집터들이 무수히 남아 있어, 당시 마을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토성 터 남쪽엔 13세기 고려 희종이 유배 와 머물던 경원전 터도 있다.

 

화개산 자락 고구2리(영산골)는 옛 이름이 연산곡이다. 연산군이 유배된 장소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뒷산을 영산으로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마을엔 700년이 넘었다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주민들은 해마다 삼월삼짇날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며 마을의 안녕을 비는 대동굿을 하고 연산군 위령제도 함께 지낸다고 한다.

 

화개산 등산로를 따라 10여분쯤 걸어 오르면, 널찍한 터를 닦고 최근 세운 ‘연산군유배지’ 빗돌을 만난다. ‘연산군 위리안치소 추정지’다. 유배 장소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추정지로 거론되는 세곳 중 가장 유력하다고 평가되는 이곳에 빗돌을 세웠다. 정확한 유배 지점은 아니지만 화개산에 막혀 어둑한 북서향 지형, 좌우로 우거진 울창한 수림 등이 위리안치 터로 삼았음직해 보인다.

 

죄인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에 가까운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는 연산군. 그는 유배된 해 겨울 병을 얻어 숨을 거둔다. 병이 심해진 사실을 알고 중종이 의원을 보내 구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온다. 화개산 자락, 연산군 유배 터에 흩날리는 늦가을 낙엽들이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화개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옛 한증막 터, 화개약수, 조선 말 효자무덤 등도 만날 수 있다.

20101118한겨레 강화 교동도=글·사진 이병학 기자  

 

 

 

 

여행쪽지

승용차나 자전거 가져가세요

 

⊙ 가는 길 |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나들목에서 나가 48번 국도 따라 강화도로 간다. 강화읍 거쳐 하점면 신봉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교동·창후 표지판 따라 가면 창후리 선착장이다. 교동도 월선포구행 배편은 물때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정하지 않지만, 봄·여름엔 하루 20회 안팎, 가을·겨울엔 10회 안팎이 운행된다. 화개해운. 편도 1인 2300원, 승용차 편도 1만6000원, 오토바이 5000원, 자전거 3500원.

 

⊙ 교동도 둘러보기 | 교동도에 마을버스가 2대 있다. 2시간 간격으로 운행돼 이용엔 불편하다. 승용차나 자전거를 싣고 들어가 둘러보는 게 좋다. 섬의 주요 마을 도보여행은 1박2일 코스다. 읍내리·교동읍성·남산포·향교·화개사·대룡리시장·고구리·연산군유배지·한증막 등을 걸어서 둘러보는 데도 6~7시간은 잡아야 한다. 화개산 산행은 왕복 1시간40분 안팎. 교동면사무소 옆, 고구2리 영산마을 등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

 

⊙ 먹을곳·묵을곳 | 고구리 송계정(불고기·생대구탕) (032)932-5559, 대룡리 풍년식당(찌개류·생선조림류·2인 이상 가능) (032)932-4629. 대룡리에 여관(교동파크) 하나와 민박·여인숙들이 있다.

 

⊙ 여행문의 |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032)930-3515, 교동면사무소 (032)930-4310.

 교동도 여행 알아두기

 

강화도 창후포구~교동도 월선포구 배편은 물때에 따라 소요 시간이 네배까지 차이가 난다. 물이 찼을 땐 15분가량 걸리지만, 물이 빠지면 배가 우회해 1시간이나 걸린다. 교동도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

특히 당일 여행일 경우, 월선선착장에 내려 미리 그날의 ‘배 도는 시간’을 알아두시길.

 

⊙ 창후리 포구에서 배를 탈 때 인적사항을 적어 군인에게 제출해야 한다.

 

⊙ 교동도에서 철조망이나 부대 주변, 북녘 해안을 향한 촬영은 금지된다.

 

대룡리 시장골목은 주말에 더욱 썰렁해진다. 식당 등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자식들 기다리는 서울·인천으로 나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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