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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경주읍성과 옛도심

by 오직~ 2010. 9. 9.

 

경주문화원에서 경주읍성 거쳐 성동시장까지 7㎞

 

» 경주경찰서 앞 옛 교육청 뒤에 있는 경주 객사. 세 채의 대형 건물이 이어져 이뤘던 객사 건물 중 왼쪽(정면에서 볼 때) 건물만 남은 것이다. 사진 한겨레 이병학 기자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 시 안팎에 가득한 신라 유적들로 경주는 곧 신라로 통한다. 하지만 경주엔 ‘신라’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경주의 전통마을 양동마을이 그렇다. 고려시대에 영남지역 행정중심인 안동도호부가, 조선시대엔 경상좌도 감영이 설치됐던 도시다. 신라 유적의 눈부신 광채 뒤에서, 또다른 선인들이 남긴 크고 작은 유적들이 반짝이고 있다. 안간힘을 다해 반짝여도, 찾는 이는 거의 없는 ‘한가한’ 유적들이다. 경주문화원에서 시작해 경주읍성 흔적을 뒤적이며 옛 도심을 한바퀴 돌아 성동시장까지 걷는다.
 

» 경주읍성 동쪽 성곽 일부. 앞엔 주변에서 발굴된 석재들을 모아 놓았다. 사진 한겨레 이병학 기자

경주문화원 주변은 고려·조선에 걸쳐 경주 관아가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문화원 경내에서 향토사료관①(옛 박물관·내아 터)과 읍성 북문 쪽에서 옮겨온 양무당(옛 병영관리소), 향토문화연구소 도서실 건물,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봉덕사종·에밀레종)을 걸었던 종각② 등 네 채의 옛 건물을 만난다. 여러 건물 목재를 섞어 새로 지은 것이어서 문화재 지정이 안 됐다. 건물 설명 팻말도 없다. 종각 건물은 종각 중 가장 오래되고(1700년대 말 추정) 규모가 큰 것이다.

 

» 조선 태조 어진을 모셨던 집경전 석실. 사진 한겨레 이병학 기자

읍성 동쪽 성곽 90m 남아 옛정취 물씬

향토사료관 앞엔 스웨덴 황태자이자 고고학자인 구스타브 아돌프 6세가 1926년 서봉총 발굴에 참여한 뒤 당시 박물관 앞에 기념 식수한 큼직한 전나무가 있다. 그 앞엔 경주에서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는 산수유나무(300살 추정)도 있다. 더 오래된 나무는 사료관 뒤뜰에 선, 500살 넘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다. 10월 말 은행잎이 휘날려 노란 카펫처럼 깔릴 무렵 나무 밑에선 고유제와 함께 은행나무 음악회가 열린다. 향토사료관에서 경주읍성 옛 지도와 모형 등 자료를 만날 수 있다. 문화원을 나와 바로 옆 케이티앤지 안으로 들어간다. 경주관아의 집무실인 동헌이 있던 자리다. 동헌 건물은 노동동 법장사로 옮겨져 대웅전으로 쓰인다. 경주관아 터 뒷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란 전직교사 김기조(82)씨는 “경주경찰서 민원실과 등기소 사잇길에 엄청 큰 누각이 있었다”며 “그것이 관아로 드는 문인 월성아문”이라고 말했다. 이 문은 1930년대에 헐렸다.

 

» 경주, 신라 말고도 볼거리 많구나. 사진 한겨레 이병학 기자

네거리 건너편의, 일제강점기 경주 첫 서양식 의원이던 옛 야마구치병원 건물③(사진 아래·화랑수련원)을 보고 경찰서 앞으로 간다. 담장 안에 부서진 석탑·탑신·옥개석 등이 즐비하게 널렸다. 깨지고 갈라진 탑과 석물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봐야 한다. 돋을새김된, 잔잔하게 미소 짓는 부처상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길 건너 사회교육원(옛 교육청)으로 들어선다. 이곳 뜰에도 무수한 석조물들이 나뒹굴고 있다. 교육청 건물 뒤로 돌아가면 옛 건물 하나가 초췌한 모습으로 기다린다. 동경관④. 세 채의 건물이 잇대어 있던 경주관아 객사의 왼쪽 건물(정면에서 볼 때)이다. 지붕 한쪽은 팔작지붕, 다른 쪽은 맞배지붕 형식인 데서 다른 객사 건물과 잇닿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복식당 지나 경주읍성 성벽⑤을 보러 간다. 잘린 느티나무 고목 옆으로 겨우 살아남은 읍성의 동쪽 성곽 일부가 펼쳐진다. 치성 모습이 뚜렷한 약 90m 길이의 성벽이 남았는데, 북쪽 부분은 새로 복원한 모습이다. 성벽 앞 잔디밭엔 주변에서 발굴된 각양각색의 석재들을 모아 놓았다. 동문(향일문) 자리를 가늠해 보고, 점집 서너곳과 왕창막걸리 술집을 거쳐 문 닫힌 화교소학교 앞 경주여중 터로 들어선다. 오른쪽 강당 건물 자리가, 조선 태조의 어진을 모셨던 집경전이 있던 곳이다. 본관 앞엔 집경전 앞에 있던 하마비와, 어진을 모셨던 석실 앞쪽에 집경전 옛터임을 알리기 위해 세웠던 ‘집경전구기’ 빗돌⑥(정조 친필)이 있다. 학교 자리는 통일신라 때 문무왕이 즉위식을 했던 신라 이궁 터라고 한다. 학교 옆 운동장은 일제강점기 우시장이 서던 곳. 우시장 옆엔 ‘한탕’이라 불리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그 둘레엔 아름드리나무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인 500년 된 회화나무를 테니스장 옆에서 볼 수 있다.

 

돌아 나와 집경전 터⑦ 골목으로 간다. 태조 어진을 모셨던 석실을 만난다. 향토사료관에서 보았던 집경전구기도(18세기 말)의 석실 그림 그 모습이다. 주민들은 엽전굴로 부르기도 한다. 야마구치병원에서 환자를 수송할 때 인력거를 부르곤 했는데, 이 석실이 한때는 인력거 보관소였다. 다시 학교 담장을 끼고 걸어 북문 쪽 골목길(봉황로 110번길 22-2)로 들어선다. 술장사로 큰돈을 번 부자도 나오고 장관을 지낸 정치인도 나온 골목이다. 북문에서 관아로 향하는 큰길로, 일제강점기엔 주변에 뽕나무밭이 많았다고 한다. 중부동 제5통 민방위대장 집을 지나 교회 뒷골목 왕림목욕탕을 거쳐 북문 터로 나선다. 돼지오케이 식당과 서부방앗간 사이가 북문(공진문) 터다.

 

대로를 걸어 한양마트 지나 신라고시원 앞에서 명사마을 우방아파트로 들어간다. 102동·103동 사이를 지나면 길 건너 소나무숲 우거진 둥근 소공원이 보인다. 이 일대가 경주감영의 옥사 터⑧다. 김기조씨는 “내 어렸을 때 무너져 내린 감옥 담에 누워보니 두께가 내 키를 넘었다”고 회상했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 천년한우 옆길로 든다. 안마치료원 지나 멀리 칼국수집 간판을 향해 걷는다. 오른쪽에서 생뚱맞아 보이는 높직한 목조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일본식 절 서경사⑨ 건물이다. 안에선 구성지게 목청을 돋우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게 아이다. 다시 함 해바라.”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8호 가곡 예능보유자인 박덕화(박기자·70)씨가 제자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건물을 전수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읍성 서쪽 성곽 터(동대로)를 건너 삼랑사지 당간지주를 찾아간다. 가는 길에 골목 안 한복집 김동리 생가 터⑩를 들여다본다. 옛 모습은 없고 안내판만 서 있다. 진아슈퍼와 골프연습장을 지나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널찍한 풀밭이 열린다. 현대 조각작품처럼 보이는 멋진 당간지주가 다가온다. 삼랑사는 신라 진평왕 때 절로 역대 왕들이 방문이 잦았던 큰 절이었다. 홍시식당 뒷문 간판을 보며 골목길을 걸어 중앙시장 네거리로 나선다. 중앙시장은 아랫시장(웃시장은 성동시장)으로 불리는 경주의 양대 재래시장(2·7장)이다.

 

다시 남쪽 성밖의 옹기전길⑫로 들어선다. 옹기골포장마차·옹기전손칼국수·옹기골한정식 등 옹기 이름이 들어간 가게는 많으나 정작 옹기전은 두 집만 남았다. 경주 옛 사진들을 전시한 문화의 거리를 만난다. 포항물회 식당 앞이 남문(징례문) 자리다. 경주읍성의 4대문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헐려나갔다. 남문·솥전·옹기전·관아 등 경주의 1930년대 사진들을 감상하며 문화의 거리를 걷는다. 일제강점기의 본정통이다. 골목을 돌아 한 허름한 식당 앞을 지나는데, 길 가던 어르신이 말했다. “하이고, 즈기 아즉도 있네. 아구찜 차암 마이도 묵었다.” 30년 됐다는 진영식당으로, “경주시민이면 한두번 안 가본 이가 없을 정도로 알려진 식당”(신라문화원 박주연씨)이다.

 

30년째 내려온 성동시장 무한리필 좌판 뷔페

신라쇼핑 옛 성곽터 남동쪽 모서리로 나선다. 오른쪽으로 경주역이 바라다보인다. 은행·생명보험사가 몰린 건물 앞 도로변으로 과일·채소를 파는 노점들이 깔렸다. 성동시장 들머리다. ‘남4문’ 골목으로 들어가자 동글동글한 색색의 간판들이 내걸린 분식 골목이다. 재미있는 곳이 이른바 시장 뷔페다. 4천원에 밥과 국, 20가지 안팎의 반찬을 무제한으로 골라 먹을 수 있다(그릇들에 뚜껑이 없는 점은 아쉽다). 성동시장에서 30여년 역사를 가진 뷔페식 좌판 식당가로, 14집이 한데 모여 성업중이다. 11년째 하고 있다는 박성자(56)씨와 30년이 넘었다는 이금석(70)씨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기 바로 정통 원조 가정식 무한 리필 한식 부페라. 밥 묵고 나모 요구르트도 준다.”

 

뷔페식당가 옆 골목에 여든세살 어르신이 40년째 막걸리를 팔아온 할매집이 있다. 막걸리와 잡다한 밑반찬을 안주로 낸다. 할머니가 아이스박스 얼음덩이 사이에서 꺼내 따라주시는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며 땀을 식혔다. 7㎞를 걸었다.

 

 

» 경주문화원에서 경주읍성 거쳐 성동시장까지 7㎞.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킹 쪽지

한정식 머고 한옥에서 묵고

◎가는길 |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 타고 대구 지나 경주나들목에서 나간다. 서울역에서 경주역까지 하루 6차례 새마을호 열차가 운행된다. 7회째 막차(밤 10시35분)는 무궁화호다. 새마을호 4시간44분, 무궁화 5시간.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경주행 고속버스가 4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경주고속버스터미널 (054)741-4000. 경주역에서 경주문화원까지 걸어서 10분 거리. 문화원 주변 주차장 1시간 1천원. 평일엔 문화원 안쪽에 차를 댈 수 있다. 문화원은 토·일요일 휴무.

◎ 먹을곳 | 황남동 도솔마을(054-748-9232)의 정식, 서부동 골목집 가마솥손두부·추어탕(054-772-3137)의 순두부, 옹기전길 옹기골한정식(054-773-9085)의 영양돌솥밥, 밀면식당(054-749-8768), 대화만두(054-772-9972).

◎ 묵을곳 | 경주시외버스터미널 뒤쪽에 모텔들이 몰려 있다. 탑동 월암재, 배반동 수오재 등 한옥에서 묵어도 좋다. 3만~8만원, 예약 신라문화원(054-774-1950).

◎ 여행문의 | 경주문화원 (054)743-7182, 신라문화체험장 (054)777-1950, 경주시청 문화관광과 (054) 779-6395.

20100909한겨레 경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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