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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찾아서

그들 각자의 영화관

by 오직~ 2008. 5. 24.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올리비에 아사야스빌 어거스트제인 캠피온유세프 샤힌첸 카이거마이클 치미노에단 코엔조엘 코엔데이비드 크로넨버그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마뇰 드 올리베이라레몽드 디파동아톰 에고이얀아모스 기타이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허우샤오시엔아키 카우리스마키압바스 키아로스타미기타노 다케시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클로드 를르슈켄 로치난니 모레티로만 폴란스키라울 루이즈월터 살레스엘리아 슐레이만차이밍량구스 반 산트라스 폰 트리에빔 벤더스왕가위장예모 

2007作

20080523씨네큐브

 

칸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여 조직위원장 질 자콥이 직접 제작과 편집을 맡고, ‘영화관(館)’ 하면 떠오르는 느낌을 주제로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 35명이 3분짜리 스케치 33편을 찍어 완성된 영화.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영화관
<어둠 속의 그들> Dans le Noir

 

펠리니와 코카콜라.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영화관은 고전과 오락의 어울리지 않는 동석이다. ‘15분 뒤에 돌아오겠습니다’란 메시지를 남기고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던 매표소의 여직원은 눈물을 훔치지만, 저 뒤의 좌석에선 남녀가 서로의 몸을 탐하며 신음한다. 남녀의 동작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여직원은 배려인지 포기인지 ‘매진’이란 푯말을 매표소 앞에 내건다. 매표소에 가기 전 그녀는 좌석 옆에 버려진 펩시콜라 병과 팝콘 박스도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무언가 정치적인 걸까 싶다가도 유하고 넓은 시선으로 극장을 따뜻하게 감싼다. 코카콜라와 펠리니? 좀 안 어울리면 어떤가. 그게 극장의 낭만인걸.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관
<어느 좋은 날> 素晴らしい休み

 

삼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히카리 극장. 한 남자가 농부표를 끊고 극장에 들어간다. 허름한 극장 내부엔 동네 개가 어슬렁거리고 영사기 아저씨는 “시작합니다”라 외친 뒤 영화를 튼다. 얼굴이 익숙한 남자, 기타노 다케시다. 이곳엔 다케시가 3명 있다. 자신의 6편째 영화 <키즈 리턴>을 트는 극중 비트 다케시(배우로 활동할 때 기타노 다케시는 비트 다케시란 이름을 쓴다), 배우가 연기하는 농부 모습의 다케시(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기타노의 자전적인 캐릭터다), <어느 멋진 날>을 찍은 스크린 너머의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는 마치 자신의 옛 영화를 방문하듯 극장에 들르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키즈 리턴>의 명대사를 듣는다. 어린 시절 마음을 울렸던 그 한마디. “우린 이제 끝난 걸까?”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작고 귀여운, 하지만 따뜻한 자위의 극장.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영화관
<독특한 만남> Sole Meeting

한 남자가 영화를 틀면 정치와 종교의 기묘한 만남이 이뤄진다. 후루시초프와 교황 23세가 어느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본다. 교황을 동무라 칭하며, 교황이 기도하자고 하면 모두 복종하듯 기도한다고 말하는 후루시초프. 종교를 해석하는 독재자의 시선이 우습지만 재치있다. 교황은 후루시초프에게 다가와 우리에게도 공통점이 있다며 서로의 불쑥 나온 배를 가리킨다. 정말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만남이 이념과 종교의 두꺼운 벽을 간질인다.


장이모의 영화관
<영화 보는 날> Movie Night

 

장이모의 영화관엔 영화가 돌아가지 않는다. 주인공 꼬마 남자는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잠이 든다. 기대, 꿈으로만 갖게 된 영화 보기. 중국 시골마을의 영화관엔 스크린 속 모험 대신 설렘이 가득이다. 마을에 들어온 영사기를 보며 뛰어노는 아이들. 동심이 피어난 그곳은 영화가 없어도 어느 극장보다 활기차다. 최근 장이모가 만든 다른 어떤 영화보다 사랑스럽고 따뜻한 느낌. 가공되지 않은 향수가 있어 좋다.


월터 살레스의 영화관
<칸으로부터 5,557마일 떨어진 마을> A 8,944km de Cannes

 

칸에서 8,944km 떨어진 브라질의 한 마을 미구엘 페레이라. 극장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가 걸려 있고, 그 앞의 두 남자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극장의 크기를 축구장에 비유할 줄밖에 모르는 두 남자지만 비트를 타며 쉴틈없이 주고받는 말에는 자신이 있다. 한 남자는 영화 좀 안다고 잘난척하고 다른 남자는 무식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래도 꿀릴 것 없다고 받아친다. 작은 드럼을 치며 리듬을 점점 빨리하는 둘. 33편의 영화 중 극장 안에도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작품이지만 가장 신난다.


빔 벤더스의 영화관
<평화 속 전쟁> War in Peace

 

콩고강 근처의 카발로 마을. 100년의 식민지, 30년의 군사독재, 10년의 시민전쟁을 거친 이 마을에 작은 영화관이 있다. 돌로 담을 쌓고 지푸라기로 지붕을 덮었으며 작은 흑판에 상영시간을 적어놓은 곳. 빔 벤더슨은 처음으로 평화를 맞는 카발로 마을의 극장을 찾아갔다. 노을이 지는 하늘과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는 이 마을에서 전쟁은 아슬아슬하게 상영 중인 영화 속에 남아 있다. 영화관 밖으로 새어나오는 총성 소리와 뇌리에서 쉽게 떠나가지 않는 전쟁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마주하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조심스레 평화를 맞는 마을의 떨리는 심정을 전한다. 현실을 떠나보내는 장소로서의 영화관. 카발로의 하늘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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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의 영화관
<꿈> It’s a Dream

 

어린 시절. 극장에 대한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항상 그곳에 잠시 멈추게 마련이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소풍가는 마음으로 발길을 향하던 곳. 차이밍량의 영화관엔 시간을 잃은 기억이 묘하게 얽혀 있다. 아빠는 젊은 시절의 모습인데 엄마는 이미 할머니다. 영화를 좋아했던 외할머니를 따라 극장을 자주 찾았던 꼬마 차이밍량은 꿈속의 영화관을 두리번거리듯 영화관 곳곳에 옛 추억을 꺼내놓는다. 외활머니가 사주던 꼬챙이에 꽂힌 배는 어느 젊은 여자의 손에 들려 있다. 액자에 갇힌 외활머니와 꼬마 차이밍량, 젊은 아빠와 늙은 엄마가 한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마지막 장면. 시간이 얽힌 이 기묘한 판타지는 아마도 꿈 아니면 영화관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빌 어거스트의 영화관
<마지막 데이트> The Last Dating Show

 

영화보더 더 뻥 같은 데이트. 빌 어거스트의 영화관에는 연애는 생전 해본 적 없는 것 같은 덴마크 남자와 귀여운 외모의 이란 여자가 있다.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를 주고받는 둘. 어떻게 이야기가 잘 통해 남자는 여자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본다. 덴마크영화였던지라 대사를 영어로 통역해주는 남자. 하지만 통역이 엉터리다. 스크린에선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남자는 사랑이 어쩌고저쩌고라며 작업을 건다. 그러다 남자의 통역이 시끄럽다는 세 남자가 시비를 걸고 둘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영화관을 나온다. 뻥으로 가득한 데이트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관
<3분> Trois Minutes

 

노란 우비를 입은 남자가 창을 바라보고 서 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니 저 멀리 또 한명의 우비남이 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잔 모로가 극장 안으로 들어가고 거기엔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 남자는 앙겔로풀로스의 1986년작 <비키퍼> 속 마르첼라다. 사랑과 삶에 대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의 대사를 빌려 읊조리던 잔 모로는 컷이란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린다. 사랑의 기억이 극중극을 타고 극장 속 현실이 되어 돌아온다. 앙겔로풀로스가 찍은, 조금은 아쉬운 3분극.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관
<내 로미오는 어디에?> Where is Romeo?

 

로미오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란의 한 극장에서 여자들이 눈물을 흘린다. 스크린엔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1968년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상영되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여성들이 모인 이란의 한 극장을 찾았다. 나이도, 생김새도 다른 여성들이 로미오를 찾는 줄리엣의 음성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여성들만 모인 극장을 찾아 카메라를 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슬픈 전율을 남긴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관
<전희 영화관> The Electric Princess House

 

극장 안과 밖엔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른다. 적어도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관에선 말이다. 출병을 앞둔 남자가 아이를 밴 아내, 두딸과 함께 극장에 온다. 영화를 보며 먹을 옥수수를 사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가족. 하지만 빨간 장막을 지나 들어간 그곳엔 폐허가 된 극장 내부가 펼쳐진다. 초라한 스크린엔 범핑카를 타며 즐거워하는 여자의 모습이 흑백으로 비친다. 극장 안과 밖을 가르는 세월의 차이. 따뜻한 향수를 기대하고 찾아간 그곳엔 냉정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단 하나 트릭을 부리지만 똑같은 영화”라는 악평도 없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관에 꼭 한번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장첸이 출연한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관
<주조공장> La Fonderie

 

핀란드의 서늘한 느낌이 감도는 초록벽 앞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 있다. 극장에서 표를 파는 여자와 입구 앞에서 표를 체크하는 남자. 어느 시골의 매점 같은 이 극장은 딱 봐도 카우리스마키의 공간이다. 그만의 독창적인 색이 있고 무표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오후 6시 일이 끝난 노동자들은 공장을 빠져나와 극장으로 향한다. 극장에선 노동자의 일상을 다룬 영화가 상영 중이다. 지극히 건조하게 그려진 카우리스마키의 영화관은 노동자가 노동의 의미를 확신하는 자리다.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일상. 지극히 무심한 표정의 극장. 그곳엔 영화와 관객이 있을 뿐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뭘 찍을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 집 바로 옆에 주조공장이 있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통쾌와 감동으로 기억에 남는 몇 개의 장면...

옆 좌석에 앉아 자꾸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망치로 때려죽이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직업>

빌 어거스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로치

로만 폴란스키...

(아이고~ 이 기억력 ㅠㅠ)

 

3분의 미학..

시간이 길고 짧고의 문제가 아니다.

순간의 감동과 재치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세시간의 영화를 보는 감동을 3분으로 충분히 느낄수 있는 "영화"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