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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체에 유익한 노동기본권 - 하종강

by 오직~ 2019. 2. 21.

방송인 김제동씨와 다섯차례 전국 대도시 순회강연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은행 노조가 기획한 행사였는데, 주말 저녁 시간인데도 은행 직원들은 가족까지 동반하고 김제동씨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강연 장소로 모여들었다.

 

김제동씨는 노동3권에 대해 정말 쉽게 잘 설명했다. “우리가 다 알아듣는 우리말로 좀 쉽게 설명합시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 규정된 노동3권이 뭐냐 하면요, ‘야, 나와봐!’(동료 노동자들에게) 이게 ‘단결권’입니다. ‘어이, 나와봐! 우리 얘기 좀 합시다!’(사장에게) 이게 ‘단체교섭권’입니다. ‘말이 안 통하네, 그럼 둘러엎자!’(성과가 없을 때) 이게 ‘단체행동권’입니다. 노동3권은 매우 살벌한 권리예요. 그런데 왜 전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이 살벌한 권리를 노동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하고 있을까요?”

 

노동3권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고 쉽고 명료한 설명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던 나도 무릎을 치며 들었다. 행사의 성과가 상당히 좋아서 다음해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최근 강연 요청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유명인사가 노조 간부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소문내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참여했고, 인기에 비례해 욕도 그만큼 많이 먹고 있다는 음식평론가도 함께했다. 김제동씨와 함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명인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사람들은 그에 앞서 내 강의를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들어야 하는 순서로 짜였다.

 

그렇게 두 해 동안 준비한 파업을 얼마 전 그 은행노조가 전국에서 모여든 조합원 1만여명과 함께 딱 하루 진행했던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업장 수백곳에서 1만여명 정도의 조합원이 한 장소에 모일 수 있으려면 그렇게 2년 정도는 공들여 준비해야 한다.

 

은행노조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대기업 고임금 노동자’라는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고 텔레비전 방송에 나온 시사평론가는 “만명이나 모였지만 영업에 큰 지장이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19년 전 그 은행 노조원 만명이 모였을 때에는 실제로 여신 업무가 마비됐다. 금융 업무가 자동화·기계화되고 인터넷 금융이 생기는 등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며 마치 노동자 파업권이 무력화된 것이 통쾌하다는 듯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업이 며칠 더 지속됐다면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했으므로 그렇게 쉽게 속단할 일은 아니다.

 

김제동씨 말대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며 회사에 경제적 손실을 끼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도록 하는 ‘살벌한’ 권리를 노동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진행돼온 수백년 세월 동안 그러한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엄연한 사실이 수많은 경험과 연구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실제 한국처럼 노동교육을 하지 않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그렇지 않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실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 최근 벌어진 서울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서울대 총학생회와 대학교수가 보인 반응이다. 파업 수단으로 난방을 중단한 노동자들에게 학생들은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중한 말씨이지만 헌법으로 보장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 학생들을 가르쳤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술 더 떠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세계 어느 나라에 그 나라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의 핵심 시설인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을 끄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임금투쟁하는 나라가 있는지”라고 일갈했다. 그러한 주장은 도서관을 폐쇄했음에도 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다른 나라 파업 사례들을 소개하는 언론 기사로 곧바로 진위가 드러나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와중에도 파업을 지지하는 소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있었고,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는 게시판에서는 파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음에도 총학생회는 치열한 밤샘토론을 거친 뒤 대학 당국에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단 며칠 동안의 진지한 고민과 토론만으로도 올바른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던 청년들이 우리 사회 희망의 불씨이다.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8827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