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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내 인생을 살다 죽어야 한다.- 김영민 교수

by 오직~ 2019. 1. 5.

지난해 추석, 대한민국 전역이 들썩였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칼럼 때문이었다. 명절 때 만나는 친척들의 오지랖에 대처할 수 있는 법을 쓴 명쾌한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실제로 친척들 앞에서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묻는 패기를 발휘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명절 때마다 생성되는 불쾌한 분위기에 대해 기성세대가 얘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필자인 김영민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이 칼럼으로 대한민국 가장 ‘핫한’ 필자 중 한명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11월말에 출간된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또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칼럼, 에세이 등을 모은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각 부에는 ‘일상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영화에서, 대화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일상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학교에서 학생들과 자극을 주고받고 사회에서 부조리를 목도하고 영화를 통해 질문을 움틔우고 대화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 사람이 하는 일이자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책에는 성장이란 무엇인가, 위력이란 무엇인가 등 답만큼이나 질문 또한 많다.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단순히 명절의 역할을 짚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가족이기에 말할 때 더욱 섬세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한해가 저물기 전, 다가올 해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12월2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김영민 교수를 만났다.


일상에서: 하루 한 줄이라도 기록

―이 코너 제목이 ‘요즘은’입니다. 요즘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 전에는 안 하던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터뷰를 비롯해서 대중 강연, 토크 같은 걸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생각합니다. 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처음 하는 일이니까요. 사실 오랫동안 꺼려왔던 일, 조심해왔던 일이거든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 수줍으신 거죠?

“맞습니다. 특히 직접 책을 내보니까, 여러 행사에 참여하는 게 저자의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하더라고요. 책 내놓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요. 일종의 책임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강연이나 토크를 할 때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건 어떤 것이던가요?

“저는 지금껏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해왔잖아요. 상당히 균질한 청중을 강연 대상으로 삼은 셈이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개인적인 문제를 가져오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남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제가 어떻게 답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소위 현자, 멘토라 불리는 사람을 원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요.(웃음)”


―멘토 열풍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어떤 사람이 책을 썼다고 해서, 혹은 사회적 발언을 활발히 한다고 해서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 없어요. 그 사람의 전문 분야가 뭔지 생각하지 않고 들으면, 여차하는 순간 사기꾼한테 속을 수도 있어요. 멘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이에 부응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왜 저 사람이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지?’ 의심할 필요가 있어요. 저도 섣불리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스스로 경계하고 있어요.”


―시간이 나면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텍스트를 읽고 그에 대해 생각하거나 쓰는 일이 일상의 대부분이에요. 저는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는 직업을 갖고 있어요. 좋아서 하는 일이 바로 공부니까요. 어떤 외국 학자가 금요일이 오면 기쁘다고 말했대요.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면서요.(웃음)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시간이 나면 하는 일이 늘 하고 있는 일과 일치하는 셈이죠.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은 운동과 산책입니다. 몸이 망가지는 것을 막는 일이죠. 그래야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 개인 홈페이지에 ‘하루 한 줄’이라는 게시판이 있더라고요.

“머릿속에 늘 잡다한 생각들이 있잖아요. 그걸 한 줄로 쓰면 ‘하루 한 줄’이 되고, 길게 쓰면 칼럼이 되는 것 같아요.”


―매일 한 줄이라도 남기는 태도가 글의 씨앗이 되는 셈이네요.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떠올랐던 것들이 다 날아가기도 하니까요. 메모하는 습관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루 한 줄’ 게시판에 있는 글들을 읽는다. 한 줄을 기록한 날짜가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기록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남들이 지나치고 마는 것을 어떻게든 남겨두려는 사람의 마음속은 늘 법석일 것이다.

     

책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유머


―이번에 책도 내셨는데요. 독자들이 왜 선생님의 칼럼을 좋아할까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주변에 물어보니 여러 답변을 들을 수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농담 같아서 좋았대요.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이 꼭 농담만은 아니어서 읽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뼈있는 농담은 진담보다 더 큰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속적인 잽이 어퍼컷보다 더욱 강력한 공격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농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김영민은 흡사 복서처럼 보였다. 혹자는 농담이라고 말했다지만, 나는 그것을 김영민이 구사하는 독특한 유머라고 느꼈다. 가령, 앞서 언급한 ‘추석이란 무엇인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글에 특유의 유머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아한 풍자’(delicate sarcasm)라고 칭해도 좋을 것 같아요.

“유머가 있다고 말씀하신 거 취소하면 안 됩니다.(웃음) 그동안 스스로 재미없는 강의와 글에 고통을 많이 받아서 칼럼에서까지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꼭 유머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그냥 글이 저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수업 시간이랑 똑같다고,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다고 해요.”


―냉소가 있는 유머여서 매력적인 듯싶어요. 이 세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가 느껴졌어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에서는 맞습니다. 그런데 시니컬하지는 않아요. 제가 냉소적일 수 없는, 냉소적이면 안 되는 직업을 가졌잖아요. 끝끝내 희망을 버리면 안 되죠.”


―교수님께 희망이란 무엇인가요?

“희망이란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스스로 생각한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루쉰의 소설 <고향>의 마지막 문장을 언급할 수 있겠군요. ‘희망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 지금 말하는 희망이란 것도 나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이 아닐까? (…)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실상 땅 위에 본디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학술적 글쓰기가 아닌 칼럼 형태의 글쓰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 있나요?

“마음 상태가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예요. 하나는 측은지심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의 감정이에요. 저 같은 경우, 분노의 감정이 글쓰기를 추동하죠. 말도 안 되는 상황이나 언설들을 마주하면 쓰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근데 늘 명심하고 있는 게 있어요. 분노가 글을 시작하는 연료가 될 수는 있어도, 비행은 다른 연료로 해야 한다는 거죠.”


―언제, 어떤 경우에 분노하시나요?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볼로딘의 표현을 빌리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 예언이나 일삼고 있을 때’ 분노합니다. 그리고 멀쩡한 사람들이 무임승차자처럼 행동할 때 분노합니다.”


―칼럼을 쓸 때 특별히 염두에 두는 게 있나요?

“기본을 뒤집는 거죠. 저의 기본은 논문이니까 ‘논문이 아닌 것’으로서의 칼럼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해요. 넓은 독자층을 고려하는 거예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 한가지에 대해 말하는 칼럼이 좋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적극적으로 그렇게 안 하려고요. 글에 여러 단면을 만든 뒤, 각자 알아서 자기가 원하는 걸 가져가면 가장 좋지요.”


―너무 쉬우면 사람마다 가져가는 게 다 똑같을 수 있으니까요?

“글이 쉬우면 읽기 편해진다는 명분하에 많은 것들을 희생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쉽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개인적으로는 한번 읽고 완벽히 이해되면 실패한 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독자가 여러 차례 생각하게 만들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 읽는 이도 비로소 다른 영역에 가닿을 수 있어요. 읽기 편한 글을 접할 때 독자는 자신이 알던 사실을 재확인하는 데서 그치고 말지요.”


―어려우면 아예 글을 읽을 시도조차 안 할 수 있잖아요.

“저는 독자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과 글의 내용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글을 끝까지 읽고 싶게 만드는 동력은 물론이거니와, 읽고 난 다음에 재밌게 잘 읽었지만 여기에서 다 이해하지 못한 게 뭘까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글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책 제목에 아침과 죽음이 다 등장하잖아요. 아침이라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시작의 경쾌함’과 죽음이라는 말이 떠올리게 하는 ‘끝의 서글픔’이 한데 있어 곱씹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글을 읽으며 유독 심신이 기울어졌어요. 죽음을 앞둔 자의 곁에 있는 자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가까운 사람의 목전에 죽음이 있을 때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을 거예요. 그럴 때 저는 루틴(routine·일상의 규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말해요. 평소처럼 밥을 먹는 것, 잘 때 자는 것. 그렇게 루틴을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어려운 일상을 견디는 데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고요.”


―산책하고 디저트 먹고 그런 것도 포함되겠지요?

“그렇죠. 그런 것들이 비탄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위로한답시고 쓸데없이 길게 얘기하는 것보다 밥을 먹든 탁구를 치든 일상의 루틴을 함께 하는 게 좋다고 봐요.”




취향에서: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선생님께서는 영화, 만화, 디저트 등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한 것 같습니다. 둥글게 사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사회 전반적으로 취향을 상당히 비열하게 강요하는 문화가 있지요. 거기에 대해서는 뻔뻔하게 저항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취향이 지속될 확률이 높더라고요.

“‘달콤한 연대’라는 이름의 점조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술 마실 때 따라다니는 대신 디저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먹는 모임이죠. 한국 문학도 즐깁니다. 그런데 제 또래 남자들 중에서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요.(웃음)”


―글 곳곳에 시가 인용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가 지닌 힘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가장 안전하게 ‘미칠 수’ 있는 형식이 아닐까 해요.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 중에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시가 가장 경제적인 방식이라고 봅니다.”


―언제부터 시를 읽으셨어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 <심상>이라는 잡지를 봤어요. 많지 않은 정기 구독자들 중 하나였어요. 지금도 틈틈이 시집들을 찾아 읽습니다.”

시를 좋아하던 김영민은 영화도 좋아했다.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논문자격시험을 치르고 귀국한 해에 동료들과 영화를 만들었다. <안토니아스 라인>에 대한 영화평론을 써서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종합일간지에서 영화평론 부문이 만들어진 첫해였다.

     

―영화를 볼 때 어떤 방식으로 보시나요?

“처음에는 철저히 소비자로 접근합니다.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완벽하게 향유하는 자세로 영화를 보죠. 보고 나서가 문제예요. 제 안의 다른 자아들이 출동하기 시작하니까요.(웃음) 같은 영화를 두번째 볼 때는 만드는 사람의 자세가 됩니다. 카메라 위치, 시퀀스 구성 등 영화 만드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게 되죠.” ―영화를 보는 기준이 있나요?

“저는 좋은 영화, 좋지 않은 영화 다 가리지 않고 닥치면서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안 보는데 노력해서 보는 게 있긴 해요. 저예산 독립영화. 충분히 재미있고 가치있는 작품들이 많아요. 상영관에 사람들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시선과 취향은 사람을 완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잖아요. 본인이 어떤 사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나요?

“제가 알 리가 없죠. 도통 모르는 일이에요. 모른다는 얘기 꼭 써주세요.(웃음) 작은 단위에 대한 얘기는 할 수 있겠네요. 이번에 에세이를 쓰다 자각하게 된 건데, 전에는 일종의 텍스트 해석자였다면 이제는 직접적인 텍스트 생산자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적 문서나 문학 작품을 가지고 그에 대한 생각을 쓰는 사람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산출자가 되어간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도 배우는 일 

 

―연구해오신 정치사상사는 정치학과 철학이 결합된 학문처럼 들립니다. 독자들을 위해 정치사상사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정치학, 철학, 역사가 결합된 학문이지요. 세가지 모두에 관심이 있으면 그 사람은 정치사상사를 공부하는 게 맞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가, 이게 정치철학의 질문이에요. 여기에 대한 답을 바로 하지 않고, 과거의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어떤 답을 해왔는지 파악하는 게 정치사상사입니다.”


―과거를 톺아보면서 그것을 지금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내다보는 역할까지 하는 셈이네요.

“사람이 같이 모여 사는 게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거든요. 인류가 굉장히 오래전부터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왔어요. 그 답들을 어떻게 제시해왔는지 파악하면서 현재를 위해, 미래를 향해 다시 도전하는 거죠.”


―‘위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에서 본인이 논문 심사 받을 때의 경험(논문을 읽지 않고 논문 심사에 들어온 교수들에 관한)을 언급하며 한국 학계를 비판하셨는데요. 한국의 교수 사회나 대학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최근에 많은 이들이 대학 사회에 깃든 개인윤리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했는데요, 그에 더하여 직업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위논문 심사를 맡은 교수는 원고를 충실히 읽고 코멘트해가며 심사에 임해야 하지요. 학생 역시 그 나름대로 이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들이 있고요. 대학 구성원들이 버튼을 누르면 서비스가 제공되는 자판기로 서로를 간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동전도 넣지 않은 채 상대를 자판기로 간주하고 버튼을 눌러대면, 앞서 말한 무임승차자가 되는 거예요. 이는 교수, 학생, 직원 모두가 유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배우는 입장에서는 배움이 어떤 수단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해요. 많은 학생들이 수단화된 인생에 익숙해져 있잖아요. 공부해서 자격증 따야지, 좋은 직장 들어가야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어디를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 자체에 대한 몰입의 기쁨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일에서는 어떤 것이 중요할까요?

“가르치는 일이 배우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흔히 배운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는데, 가르치는 과정에서 한번 더 배우거든요. 예컨대 말을 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걸 배우잖아요. 배움과 가르침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 결심이 중요하죠.”

     

―앞으로 더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부터 현대무용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몸을 잘 써보고 싶어요. 머리를 쓰는 것만큼 몸을 정교하게 쓰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언어는 이탈리아어. 제 로망 중 하나가 학생들 데리고 이탈리아를 일주하고 답사하는 거예요. 스스로가 좋은 답사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답사를 잘하기 위해서 그 전에 언어를 배워야겠지요.”


―여행이나 답사가 견문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특정한 목적을 갖고 떠나지 않더라도 정신이나 다른 부분이 마사지됩니다. 자극 때문에라도 학생들에게 최대한 다른 환경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그간 우리나라 교육에서 부족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읽기 모임도 하고 계시다고요.

“고전부터 시작해서 학생들이 그때그때 읽고 싶은 것을 함께 읽어요.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를 지향해요. 한국어든 영어든 잘 쓰는 것뿐 아니라 꼼꼼하게 읽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일이에요.”


―김영민 교수님께 공부란 무엇인가요?

“제 일상입니다.”


새해에는: 나 자신으로 할 일을 생각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작년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습니다. 성장이란 것이, 전보다 나아져야 하는 일이 우리가 꼭 달성해야 하는 목표일까요?

“성장을 하면 좋은 게 있어요. 바로, 성장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거예요. 청소년기에 겪었던 문제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되기도 하잖아요. 성장하면서 넓은 시야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관점에서는 성장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아니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에 몰두하다 어느 날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체험, 그거면 족하지요. 하다못해 키 크는 것도 그렇잖아요. 어느 날 문득, 자라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게 경이로운 체험이지 매일 아침 체크하면 스트레스만 쌓이죠.”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쓰신 적이 있는데요, 그러려면 그에 상응하는 소소한 행복과 기대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개인적인 새해 계획이나 바람이 있나요?

“늘 하던 대로 여러 가지 디저트를 경험해보고 온천에 자주 가는 것. 그리고 좋은 만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절판된 만화들이 애장판으로 다시 나왔으면 좋겠고요.”


―작은 것들을 바랄 때 달성될 확률이 높잖아요.

“거대한 것들을 바라기보다는 목전에서 할 수 있는 일들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누워 있기, 숨 잘 쉬기, 천천히 일어나기.(웃음)”


―새해에도 지켜나갈 원칙이 있다면요?

“학생들과 종종 나누는 얘기가 있어요. ‘좋든 싫든 네 인생을 살다가 죽어야 한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이는 것도 본인이 납득할 수 없으면 따르면 안 돼요. 유행이든 권위가 요구하는 것이든 마찬가지예요. 그건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소진하는 거예요.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닌 그 이상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고민하는 것도 필요해요. 생존과 번식 이외에 사람으로서, 나 자신으로서 할 일을 생각하는 거죠. ‘나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자기의 삶을 살다가 죽을 권리와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김영민 교수님이 김인환 교수님께 드린 질문(학부 시절 ‘문학개론’ 강의실에서 ‘아무 질문이나 해보라’는 김인환 교수의 말에 대학생 김영민이 한 질문)을 제가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사시는 동안 잘했다 싶은 일과 잘못했다 싶은 일을 말씀해주세요.

“잘했다 싶은 일은 고시나 취직 준비로 대학 시절을 소진하지 않고, 공부하면서 문학과 예술을 즐기며 살겠다고 결정한 거예요. 돌이켜봐도 기특해요. 잘못했다 싶은 일은 플랭크와 스쿼트(둘 다 근력강화운동)를 소홀히 한 것이에요. 성장기로 돌아간다면 꼭 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늘 종강 시간에 당부합니다. ‘수업 끝나면 저를 볼 일은 없겠지만 틈틈이 플랭크와 스쿼트를 하세요.’”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우리가 애써 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일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만이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질문을 던지는 일은 나를 둘러싼 편견을 깨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내 삶을 끌어안겠다는 능동적 태도에 더 가깝다. 이 태도가 지속되면 나는 나를 알게 된다. 상처받은 내가 다음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어떤 것이 필요한지 궁리하게 된다. 다름 아닌 ‘내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삶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 새해에는 내 삶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가만히 상상해보고 미소 짓는 것, 새해가 의미있다면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어떤 계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나를 아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동안 해야 할 공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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