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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과 함께하는 봄날의 군산항을 꿈꾸다

by 오직~ 2018. 11. 10.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8일 개봉

 

“내 영화는 모두 공간에서 출발”

과거-현재 공존하는 군산에서

시간대 오가며 네남녀 시선 담아

“뫼비우스 띠 같은 우리의 일상

영화는 사실 아닌 기억 찍는 것”

 

영화 배경에 녹여낸 재중동포 감독의 시선

조선족·일본인 향한 차별 가감없이 그려

“윤동주도 후쿠오카서 안 죽었으면

용정 출신 조선족이라고 불렀을 것”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장률 감독. 트리플픽쳐스 제공

 

“어떤 감독은 그림 한 편에서, 어떤 감독은 대사 한 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하죠. 전 늘 누군가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려요.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일상’을 살았을까? 굳이 나누자면 저는 ‘공간의 편’이자 ‘일상의 편’에 선 감독인 셈이죠.”

 

장률(56) 감독은 늘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다 그 여정이 잠시 멈추는 ‘공간’에서 한 편의 영화가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작품에 지명이 많이 들어가는 까닭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그의 여정은 중국의 베이징(<당시>·2004)에서 몽골(<경계>·2007)를 지나 충칭(<중경>·2007)을 거쳐 이리(<이리>·2008), 두만강(<두만강>·2009), 경주(<경주>·2014), 수색(<춘몽>·2016)까지 두루 훑었다. 공간은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삶의 경계였다가 희망이었다가 절망이 되기도 한다. 그의 여정이 이번엔 전북 ‘군산’에 다다랐다.

 

신작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개봉(8일)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률 감독은 “이번 영화 역시 공간에서 출발했다”며 뒷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원래는 일제강점기 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목포에서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의치가 않아 목포와 비슷한 공간을 찾게 됐죠. 누군가 군산에 적산가옥(해방 후 정부에 귀속됐다 일반에 불하된 일본주택)이 많다고 해서 갔는데, 단번에 맘에 드는 집을 찾아낸 거죠.”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장률 감독. 트리플픽쳐스 제공

 

공간이 섭외되자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풀렸다. “참혹한 역사 속에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도시의 미관을 간직한 이 공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지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나요?” 영화는 윤영(박해일)이 한 때 좋아했던 선배의 아내 송현(문소리)과 군산으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이 자폐증을 가진 딸(박소담)과 그의 아버지(정진영)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묵게 되면서 네 남녀의 시선과 관심이 엇갈린다.

 

장률 감독은 박해일과는 <경주>, <필름시대사랑>에 이어 세 번째로 작업을 했다. “친해요. <경주> 촬영 때 장소 헌팅에도 함께 가기도 하고. 친구 같은 관계다 보니 부담 없이 부탁하죠. 문소리씨는 <필름시대사랑>을 함께 찍기 전부터 오랜 팬이었고요.” 영화 속에는 문숙·윤제문·한예리·이미숙 등 많은 카메오가 등장한다. “평소에 거의 사석에서 뵙던 분들이죠. 술 한잔 하다 보면 ‘언제 같이 작업 해야죠?’라고 인사치레를 하기 마련이잖아요? 저는 이걸 인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지하게 ‘그때 같이 하자고 했던 거 기억하죠?’라며 발목을 잡는 거죠. 하하하.” 오직 이미숙씨만 공식적인 루트로 섭외 요청을 했는데, 작은 배역임에도 흔쾌히 응해줘 고마웠단다.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의 한 장면. 트리플픽쳐스 제공

 

<군산>은 이야기 구조도 특이하다. 영화가 ‘전반-중반-후반’으로 나뉜다고 할 때 <군산>은 ‘중반-후반-전반-중반’으로 물리는 구조다. 윤영과 송현이 군산에 도착하며 시작된 이야기는 군산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보여주다 애초 이들이 어떻게 재회했는지, 어떻게 군산으로 향하게 됐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둘이 군산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저는 영화는 사실이 아닌 기억을 찍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기억이 늘 시간 순서대로일까요? 기억은 파편화되고 때로 중간부터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죠. 우리의 삶도 일상도 그렇잖아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물고 물리는.” 영화 속에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죠?’, ‘우리 전에 본 적 있죠?’라는 대사가 유난히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는 조선족과 일본인에 대한 우리의 차별적 시선도 까발린다. 윤영의 아버지는 조선족 가사도우미를 함부로 대하고, 윤영은 이에 반발하며 선의를 베풀지만 도우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송현은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면서도 일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중국 동포 인권 시위에 참여하면서도 조선족이냐는 오해를 받자 불쾌한 기색을 보인다.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의 경험이 녹아든 장면일 터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 조선족에 대해 ‘관점’으로 이야기하죠. 일본 침략엔 분노해야 하고, 재중동포의 권익은 보호해야 하고…. 그런데 일상에선 어떻죠? 조선족 식당종업원·가사도우미,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죠? 만일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 역시 용정 출신 조선족이었을 뿐이라는 생각, 해 본 적 있을까요?” 역사적 정치적 관점 뒤에 숨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때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고민해 봐야 할 우리 삶의 일상이라는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군산에 가보고 싶다’며 ‘장률 감독과 함께하는 군산 투어 어떠냐’는 제안을 던졌더니 그의 눈이 반짝였다. “저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경주에 가 봤어요’라고 말할 때가 제일 좋더라고요. 그 정도로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는 영화라면, 백만·천만 영화만큼 대단하지 않을까요? 따뜻한 봄날, 꼭 함께 군산에 같이 갑시다.” 술자리서도 빈말은 없다는 그이기에 이번 약속 또한 꼭 지켜지지 않을까.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692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