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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을 빼돌린 형들 조직 - 최현숙

by 오직~ 2018. 3. 12.

썩어빠진 교회를 향해 예수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 19절)라고 부르짖었는데, 교회는 ‘사흘만 보도 거리가 없으면 잠잠해질’ 거라는 문자를 돌렸고, 적중했다. 무엇보다 초장 대응이 전광석화였다. 성폭력 보도가 나간 2월23일, 이미 한만삼은 사라졌다. 수원교구 말로는 ‘지방에 내려가 회개’라는 걸 하고 있단다. 주일미사를 포함해 ‘3일간 미사 없음’ 공지와 함께 저 문자가 돌았고, 기자들은 허탕 쳤다.


25일엔 수원집 큰형 이용훈 주교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형들이 사과문을 냈고, 28일엔 큰집 맏형 김희중 대주교가 담화문을 냈다. 사고 친 동생을 잽싸게 빼돌리고, 형들 몇 명이 대신 나서 사과라는 걸 한 거다. 작금의 성폭력 폭로 대열에서 모든 가해자들이 뭐가 됐든 한마디씩은 하는데, 한만삼만 입도 뻥끗 안 하고 있다. 형들이 침묵을 명했을 테고, 이 경우 침묵 명령은 직무정지와 빼돌리기가 합작된 조직적 은폐다.


한만삼은 증발했지만, 그의 사진과 온갖 정의롭고 평화로운 말과 동영상들, 그가 쓴 책과 글들이, 온과 오프에 나돌고 있다. 성폭력범이라 해서, 그가 한 일들이 다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너나없이 인간은 표리부동하고 다중적이며 난해한 존재다. 형들에게만 인정하고 형들 뒤에 숨어버린 게 졸렬하다는 거고, 그래도 끄떡없는 이유는 형들과 형들이 장악한 비상(非常·비상식)한 국제조직 덕이라는 거다.


신부들의 성폭력에는 남성 권력의 문제와 함께 독신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종교 지도자들의 성폭력을 다룬 기사에서 공정식 범죄심리학 교수는, “내적으로 성범죄 욕구를 갖고 있는 이들이 과도하게 도덕 윤리를 겉으로 강조하는 건 자신의 부도덕한 면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분석했다(<일요신문> 2월23일치). 실화를 바탕으로 신부들의 아동 성폭력과 교회의 조직적 은폐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나오는 가해 신부들의 심리치료 전문가는, ‘신부들의 성폭력을 하나의 정신병리현상으로 분류할 만하다’고 말했다. 익명이 보장된 통계조사를 근거로 그는 ‘신부들의 50% 정도가 다른 성인과 성관계를 한다’고 말했다.


몰래라도 한다니 다행이다. 강제로 못 하게 하는 게 문제다. 신부도 직업인데 ‘하려면 옷 벗고 하라’는 압박은 생존권 위협이다. 신부를 포함한 모든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하지 않음’은 보장되어야 하고, 신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독신이어서 더 성(聖)스럽고 신(神)스럽다고 포장된 남자들이, 크고 작은 조직의 대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앉아 있는 천주교 조직 자체다. 그 남자들이 없으면 제사(미사)조차 못 지내는 퇴행적이고 자폐적인 성차별적 집단이며,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를 내세워 남성권력 카르텔을 대물림했다고 21세기에도 우기는 희귀한 조직이다.


하나 더, 한만삼 건을 닥쳐 발언만이라도 할 만한 천주교 단체들의 의뭉스러운 침묵. 교회 내 공식기구들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교회 쇄신과 사회 민주화’를 목표로 모인 신자들의 자발적 공동체들과 여성 공동체들마저 입을 봉한 채, 몇 개 언론이 경과만 보도하고 있다.

지난 9일 마친 큰형들의 대회(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8년 춘계 정기총회)에서도 한만삼에 대한 결정은 없다. 수원 집안 문제라서 참견 안 하는 게 그들 조직의 의리란다. 관련해서 나온 대책은,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위 설치와 성폭력 피해 접수창구 마련. 머, 그러시라. 성폭력은 성별 위계와 권력의 문제다. ‘남자만 대장 되는 조직’에 대해 기대할 바 없다. 자퇴한 사람으로서 기회 되는 대로 신경질은 내겠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5576.html#csidxfc723e0e264a2c09c3f43a837f0aa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