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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하루만 일해보라 - 박점규

by 오직~ 2016. 5. 17.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43021.html

 

 

 

황종철씨는 매일 아침 울산 앞바다에 떠 있는 초대형 배에 오른다. 현대중공업이 세계적인 기술이라고 자랑하는 부유식 원유·가스 생산설비(FPU), 최첨단 석유시추선이다. 25년 경력의 베테랑 배관공인 그는 용접공들과 함께 이 배를 만든다. 그런데 오는 8월 석유시추선이 완성돼 아프리카 콩고의 모호노르드 유전으로 떠나면 그와 동료들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2014년 12월 4만1059명이었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는 2016년 3월 3만3317명으로 줄었다. 1년 남짓 만에 7742명이 사라졌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대중공업은 해양사업부에서 일하는 하청 1만3천명 중 3천명만 남긴단다. 해양플랜트 비정규직이 모여 사는 동네 꽃바위의 방값이 30% 넘게 떨어졌다. 장사가 될 리 없다. 현대중공업에서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넘게 해양플랜트 기술을 익힌 기능공들이 사라지고 있다. 연말까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에서 쫓겨날 비정규직이 5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인원수의 20배다.

 

지난해 조선 3사의 적자 8조원 중 7조가 해양플랜트였다. 유가가 급락해 석유시추선 주문이 끊긴 탓이다. 유럽 경제위기로 선박 수요도 줄었다. 중국과 일본이 정부 주도로 조선산업을 육성해 경쟁력을 키울 때, 한국 정부는 ‘낙하산 인사’에 바빴고 기업들은 저가 출혈경쟁에 분주했다. 무엇보다 생산 현장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90% 이상 사용한 것이 부메랑이 됐다. 건축에 싸구려 자재를 마구잡이로 쓰듯, 싼 인건비로 사내하청을 마음껏 쓰다 버렸다. 기술은 축적되지 않았고 품질은 떨어졌다. ‘싸구려의 덫’에 걸린, 세계 최대 비정규직 조선소의 역습이다.

 

무능한 정부와 제 주머니만 챙긴 대기업. 세계 1위 조선강국을 ‘조선망국’으로 만든 주범들이 정규직 노조를 죄인으로 둔갑시킨다. 재벌 신문들이 ‘최악 ‘수주절벽’ 와중에…상경투쟁 하겠다는 현대중공업노조’, ‘노조, 적자에도 ‘임금 올려달라’…회사 문닫기 직전까지 ‘투쟁’’이라는 기사를 쏟아내며 정규직 노조 사냥에 나선 풍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식인들의 훈수가 가관이다.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비판은 딱 두 줄, 그 열 배의 지면으로 정규직 노조를 ‘조진다’.(송호근, 부자 도시가 쏘아 올린 SOS)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구조조정과 판박이다. 구조조정 결과 직원들은 왕창 잘려나가는데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재벌의 경제력은 몇 곱절 커진다. 대기업은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된다. 지금 거제에선 결국 삼성이 대우조선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여소야대 정국, 야당이 하청노동자들을 지켜줄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밥 먹듯 호남을 방문하는 것처럼, 잘려나가는 하청노동자를 찾아가는 일은 힘들까? 야당의 새 원내대표들이 긴급회동을 하고 기술 좋은 비정규직들이 사라지지 않게 ‘조선산업 일자리 대책기구’를 꾸리는 건 어려울까? 종철씨는 야당 지도자들이 조선소에 와서 하루만 일해 봤으면 좋겠다.

 

지금 현대중공업 노조는 비정규직을 외면하다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후 12년 만에 들어선 민주노조다. 종철씨는 정규직 노조가 하청노동자 대표들이 포함된 공동의 기구를 만들어 부패한 경영진의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어렵다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주면 좋겠다. 현대중공업이 정규직도 4천명을 자른단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위기의 조선소 직영과 하청, 이보다 더 적합한 순망치한의 예는 없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