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

우리는 왜 설현의 손짓과 송중기의 눈빛에 무너지나 - 정재승

by 오직~ 2016. 4. 26.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40936.html

 

 

 

 

(11) 신경경제학의 탄생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게리 마커스 교수는 인간의 뇌를 클루지(Kluge)에 비유한다. 클루지란 사전적 의미로 ‘고물이지만 애착이 가는 컴퓨터’란 뜻인데, ‘서투르고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은 체계적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할 만큼 영리한 종족이지만, 동시에 주의 깊게 짠 계획을 순간의 쾌락이나 즐거움 때문에 내팽개칠 만큼 어리석은 존재라는 얘기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아직 충분히 완성되지 않은 존재이며, 우리의 뇌는 수만 년 동안 지금 당장의 생존을 최대한 추구하도록 설계된 비합리적인 컴퓨터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결심하고서도 눈앞의 치즈케이크나 삼겹살 때문에 내일로 미루기 일쑤고, 1만~2만원을 아끼기 위해 시내 반대편까지 걸어가서 할인마트를 이용하면서도 300만원이 넘는 평면 텔레비전은 과감하게 ‘지르는’ 비합리적인 존재다. 사람들에게 ‘96% 무해한 음료수’와 ‘4% 유해한 음료수’ 가운데 하나를 반드시 고르라고 하면 무엇을 선택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96% 무해 쪽으로 선택한다. 똑같은 음료를 두고서 단지 ‘무해’라는 어휘가 주는 안정감 쪽에 끌리는 ‘프레임 효과’가 여지없이 통하는 종족이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인간이다.

 

‘딴생각’하느라 입는 손실만 15조

기억력은 또 얼마나 부실한가! 시간이 흐르면 왜 우리의 기억은 불분명해지는 걸까. 너무 많이 기억하거나 나쁜 기억을 간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아서라는 ‘낭만적인 합리화’로 위안하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옛일만 지워진다는 보장도 없고 정확한 기억이 불필요하단 증거도 없다. 순간순간 생존을 염려하던 시대엔 깊은 사고보다는 순간 반응이 목숨을 유지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인간의 기억은 정확성보다 속도가 우선이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우리가 종종 배우자와 누가 설거지를 할 차례인지를 놓고 매번 다투는 것은 자신이 예전에 설거지한 일은 명확히 기억하지만 상대방이 설거지한 건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반적으로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믿고 심지어 불끈 화를 내기도 한다.

 

인간이 늘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합리적인 존재이면서도 충동구매를 하고 불합리한 선택을 반복하는 이유는 우리가 다른 동물 못지않게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의 시간에 섹스에 대한 공상을 하는 사무원이 3명 중 1명꼴이라고 한다. 우리의 마음은 중요한 순간에도 이따금 딴 데 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리적 공백으로 우리가 잃게 되는 경제적 손실은 무려 15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니다. 해로운 줄 알면서도 흡연, 섹스, 비디오게임, 인터넷 등의 중독에 빠져드는 것도 같은 원리다. 한 기결수가 90일의 금고형을 선고받은 뒤 89일째 되는 날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한 실화는 인간이 얼마나 충동적인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다. 당장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와 1년 동안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20만원짜리 수표 가운데 앞의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현상도 비슷하다. 은행이자율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 10만원’을 ‘1년 후 20만원’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뇌가 바로 우리의 클루지다. 진화는 우리가 행복하도록 우리를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시켜온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적 선택은 이런 계획적인 소비와 충동구매 사이에서 벌어진다.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아주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조금만 더 사려깊게 생각하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데도 충동적이거나 세련되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은 ‘최적화가 진화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진화 속에서 생겨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이전 결점을 서둘러 고쳐 나가는 ‘땜장이’의 처지와 비슷하다. 자연 선택은 당장 이로운 유전자들을 선호하고 장기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를 대안들을 폐기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오늘 사용한 편법이 내일 문제가 되더라도 지금 당장 제품을 팔아야만 하는 경영자의 처지와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렇게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서 안전을 지향한 초기 인류 시절의 사고방식 위에 지금의 판단 체계가 세워졌다는 것은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이다. 세상은 ‘코어i 7-6세대’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뇌는 1만년 전 원시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으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데 안달이 나도록 디자인돼 있다. 그래서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를 계산하지는 못한다.”

 

경제학 가정 맞다면 상품비교에만 수십년

1만년은 우리의 몸이 그사이에 등장한 사물들에 적응하려고 변화하기에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1만년도 더 전에 우리 조상이 지닌 것과 똑같은 진화된 심리적 기제를 아직까지 지니고 있다. 이것을 ‘사바나 원칙’(Savanna principle)이라고 부른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뇌는 아직도 사바나 원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세상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아줌마들은 샤넬 가방을 보면 쾌락의 중추가 자극받고, 아저씨들은 근사한 술을 보면 쾌락의 중추가 요동을 친다. 이 요동이 충분하기만 하면 바로 구매 행위로 이어진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샤넬 가방을 살 가치가 있으며, ‘너는 내 진정한 친구야’라는 친구의 한마디는 한턱을 내기에 충분하다. 형편이 안 되어도 상관없다. 카드 할부라는 제도가 있으니까.

 

쾌락의 중추가 요동치지 않는다면? 남들보다 덜 요동친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이때를 대비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비장의 무기인 설현과 송중기가 있으니까. 설현이 통신사 대리점 입구에서 손짓하고 송중기가 화장품을 쓰라고 권하면 우리의 쾌락의 중추는 여지없이 요동을 칠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우리는 자신이 설현 때문에 쾌락의 중추가 자극받은 것인지 제품 때문에 쾌락의 중추가 자극받은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멋진 이성이 우리의 원시 뇌를 자극하듯이 현대 소비사회에선 ‘명품 브랜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이 21세기 초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존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Homo economicus), 그러니까 ‘주어진 정보가 충분하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이익을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알며,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두루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행동은 하지 않는 존재’로 가정해왔다.

 

그러나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경제학자들의 말대로, 우리가 ‘합리적인 고객이라면’ 쇼핑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제품을 소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꼼꼼히 계산해서 상품을 선택한다. 즉, 가격 대 성능비를 열심히 따져보아야 한다. 만약 경제학자들의 가정대로 우리가 소비한다면, 인간을 초고성능 컴퓨터라고 가정해도, (상품수가 10가지인 경우 0.001초, 30가지면 17.9분이면 결정이 끝나지만) 상품수가 40가지인 경우에는 서로 비교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려 무려 12.7일, 50가지면 35.7년이 걸려야 계산이 끝난다고 한다. 좀 엉뚱한 계산이긴 하지만, 청바지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는 그다지 꼼꼼히 따지지 않고 구매를 한다는 얘기다.

 

합리적인 존재만으로 가정한 20세기 주류 경제학의 틀은 당연히 재고되어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이 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의사결정만을 하는 것은 아닌가? 친구를 위해 보험을 들어준다거나 타인의 삶을 위해 내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는 기부행위처럼 사회적 의사결정은 왜 일어나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방법론을 차용해, 실제로 경제적인 선택의 상황을 주고 어떻게 선택하는지 보는 학문이다.

 

1980년대 주류경제학이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치우치면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이 일었고, 그 무렵 행동경제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주식시장이나 주택시장의 거품, 금융회사들의 파생상품 판매 등 현실 사례를 통해 인간이 합리적인 의사결정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물론 고전주의 경제학의 거두인 애덤 스미스도 1759년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손실 회피 성향을, 1776년 <국부론>에서 과잉 확신 경향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 교수는 금융시장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다룬 행동금융론의 뼈대를 세우기도 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모스 트베르스키 스탠퍼드대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대부로 꼽힌다. 그들은 지난 50년 동안 잘 교육받은 이성적인 인간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많이 하는지 행동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논문들을 쏟아냈다. 그들의 제자이자 동료인 리처드 탈러 교수는 경제학 이론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을 정리하고 행동경제학을 체계화하고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경제학의 뉴턴 공식’ 풀어줄 신경경제학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블랙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녹차를 마셔야겠다는 결정을 할 수가 없고, 담배나 설탕이 몸에 좋지 않기 때문에 금연이나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일 또한 있을 수 없다. 또 경제적 인간에게 이타적 행동이나 윤리, 도덕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에서 ‘희망소비자가격’과 ‘할인가격’을 동시에 써놓는 얄팍한 상술에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며, 미끼상품을 걸어 일단 손님을 끌어모으는 행위에 속지도 않을 것이다. 계산대 옆에 초콜릿이나 면도기 등을 진열해 놓은 곳에 쉽게 손이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경제학자들이 가정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자가 아니라, 때론 감정적이며(그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때론 수학적으로 꼼꼼히 따지지 않으며(그것이 어리석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때론 내 이익만이 아니라 남의 이익을 먼저 챙기기도 한다. 이런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해, 마케팅은 일찌감치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을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했지만, 아직 주류경제학은 아름다운 수학적 이론에 매달려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복잡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 채, 지난 400년간 ‘풀 수 있는’ 간단한 시스템에 몰두해온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변수로 해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설명하는 ‘경제학의 뉴턴 공식’을 어떻게 찾으려고 할까? 아마도 그 실마리는 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신경경제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음 회에 좀더 자세히 논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