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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기생하는 ‘탐욕의 세력들’ - 김종대

by 오직~ 2016. 5. 27.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744813.html

 

 

 

수사로도 못 잡는 방산 비리

방산 비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11일 감사원은 군의 모의 전투 시스템인 마일스 장비가 부실장비라고 발표했다. 2010년에 이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3년간 운용시험을 했으나 공포탄 감지율은 애초 요구한 허용오차 1%를 크게 벗어난 83%에서 92%로 나타났다. 군은 핵심 성능이 크게 미달된 사실을 알고도 관련 규정을 바꿔 2014년에 업체와 150억원어치의 시스템을 도입했고, 앞으로 800억원에 달하는 추가 장비 도입이 추진될 예정이다. 계약 과정에서 군 관계자들은 납품 업체로부터 접대를 받고 장비의 부실을 묵인했다는 게 감사원의 주장이다.

 

불량 무기 묵인하는 군 지휘관들

3월에도 감사원은 군에 납품된 방탄복이 북한군의 철갑탄에 관통되는 불량 방탄복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일부 군 관계자가 특정 업체와 유착해, 북한군의 철갑탄은 물론 보통탄에도 관통될 수 있는 불량 방탄복을 독점 공급하도록 특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군은 자체적으로 개발에 성공한 액체방탄복을 도입하지 않고 이 업체로부터 2025년까지 30만8500벌의 방탄복을 납품하도록 하는 2700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이미 260억원에 이르는 방탄복 3만5천여개는 납품돼 일선에 보급된 상황이다. 이외에도 감사원은 각종 기동장비와 전력지원 물자 분야에서 추가 비리를 포착하고 검찰과 함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지난 1년6개월 동안 진행한 방산비리 정부합동수사는 주로 해군과 공군에서 대규모 비리를 찾아냈다. 이에 반해 육군에서는 큰 비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감사원의 육군에 대한 감사 결과는 지상군의 기동장비와 개인 장구, 훈련 시스템 등에서 상당한 비리와 부실이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대로라면 과연 군에 성한 곳이 있기나 한지 의심될 정도다. 정작 심각한 점은 박근혜 정부에서 밝혀낸, 사업비 기준으로 1조원에 달하는 방산비리가 2010년부터 최근까지 군 전반에 빠르게 확대돼왔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가 검찰과 국세청과 감사원을 동원해 대규모 방산비리 수사를 진행하던 2009년 이후에도 신형 방산비리가 독버섯처럼 전군에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아무리 방산비리 척결을 외치며 고강도 수사와 조사를 진행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리가 확산되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후 엄벌만으로 척결될 수 없는 군 무기 도입의 구조적 문제가 배후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방산비리 한 건 한 건이 문제가 아니라 국방의 모든 사업을 관리하는 시스템 자체가 부실과 비리의 주범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방산 비리는 사정기관이 팔 걷고 나서기 이전에 군 스스로의 문제다. 불량 장비가 납품되면 일선 전투원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작전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군 지휘관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불량 장비 수용을 거부해야 할 당사자다. 고급 외제 자동차를 샀는데 브레이크가 불량품이라면 화를 내야 할 당사자는 구매자다. 수백억,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군 장비의 경우 핵심 구성품 하나가 불량이면 전쟁이 나도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흉물로 변하게 된다. 이 점을 가장 잘 아는 군 지휘관들이 불량 장비의 운용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은폐하면서 외부기관에 의해 그 사실이 밝혀진다는 것은 군의 지휘체계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안보위기가 상시화된 보수정부 8년 동안, 군은 불량 장비 때문에 항상 작전에 실패해왔다. 2010년 3월의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잠수정과 어뢰를 전혀 탐지할 수 없는 불량 음파탐지장비(소나)를 부착한 해군의 초계함을 최접적 수역인 백령도 해역에 투입하면서 발생한 대형 재난이었다. 당시 천안함의 소나가 어뢰를 탐지할 수 없는 고물이라는 걸 밝혀낸 것은 민군합동조사단의 육군 장교들이었다. 반면 해군 작전사령부나 2함대사령부조차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사건의 원인을 판단하는 데 혼란을 겪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논란을 유발하고 있다. 여기서 불량 소나 때문에 어뢰를 탐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해군의 경계 실패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전혀 다른 용도로 활용되었다. 장비 탓으로 작전 실패를 미루니까 아무도 경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천안함 사건 8개월 후인 11월의 연평도 포격 사건의 경우도 유사했다. 북한의 포탄이 무수히 연평도 민가와 군부대에 떨어지면 우리 해병대는 신속하게 북한 포대를 제압하여 추가 도발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해병대의 K-9 자주포가 발사한 포탄은 북의 포 진지가 아니라 대부분 논에 떨어졌다. 훗날 밝혀진 바는 그해 11월 초 연평부대의 기상관측장비가 고장 나 풍향과 풍속을 고려하지 않고 포를 발사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 역시 불량 기상관측장비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나니 아무도 책임질 일이 없었다.

같은 방식으로 2012년에 논란이 된 전방 ‘노크 귀순’이나 2015년의 ‘숙박 귀순’ 사건은 전방의 과학화경계시스템도 수풀이나 계곡과 같은 감시 사각지대를 보는 데 역부족이라는 장비 사정으로 인해 상당 부분 인간적 요인에 의한 경계 실패를 이해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국방 실패의 책임은 불량 장비

2014년 10월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의 사격으로 교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해군의 유도탄 고속함에서는 76㎜ 포와 40㎜ 포가 한꺼번에 고장이 나서 이를 수리하는 동안 북한 경비정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명백한 작전 실패에 대해 합동참모본부는 국정감사에서 교전을 수행하지 못한 내막을 은폐하다가 뒤늦게 “76㎜ 포는 5분 만에, 40㎜ 포는 10분 만에 수리를 완료했다”며 작전을 잘한 것으로 호도하는 해괴한 변명까지 제시했다. 만일 포를 수리하는 동안 북한 경비정이 추가 공격을 해왔더라면 꼼짝없이 우리 장병들이 당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불발탄에 그 책임을 전가해버리니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해피엔딩이 되었다. 2014년에 해군 구조함인 통영함이 세월호 참사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사정도 불량 음파탐지장비로 인해 제때 투입할 수 없던 사정 때문이다.

 

이렇게 막상 군사작전에서 실패하면 어김없이 불량 장비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이 불량 장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받아들여진다. 마치 운전자가 남을 치어 사고를 내고 그 원인으로 자동차 브레이크 고장으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면서 책임질 수 없다고 하면 이를 받아줄 피해자가 몇이나 될까. 우리 군의 지휘관들이 항상 이런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니까 어쩌면 이런 불량 장비들은 군 지휘관을 보호해주는 좋은 명분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정작 일선 전투원들의 생명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북한군의 위협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로부터 만들어진 총체적 품질 불량이었다.

 

이런 부실 구조는 아무리 감사원이나 검찰이 나서서 조사나 수사를 해도 개선되지 않는 우리 군의 불치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당장 최전방으로 가서 일선 장병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헬멧, 방탄복, 전투복, 군화에 대한 불만이 쏟아진다. 일선에 보급된 바 있는 신형 복합소총, 대포병 레이더, 감시장비, 무인기, 전차 등 핵심 무기에 대해서도 그 운용에 심각한 고충이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첨단 무기라는 명분으로 도입된 무기는 잦은 고장과 성능 미달로 과연 전쟁이 나면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 병기 부사관은 “차라리 고장이 나지 않는 재래식 무기가 훨씬 유용하다”며 첨단 무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군의 무기 도입과 전투 준비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이런 부실한 장비운용을 묵인하는 것은 군 지휘관들이다.

 

전쟁이 나면 불량 장비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군인 자신인데 왜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그 배후에는 어떤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일까. 아군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거대한 탐욕의 실체는 임기 중에 대형 무기도입 사업을 성사시키려는 최고 지휘관의 업적주의와 사업 성사를 통해 조직에 배정되는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군사 관료주의일 것이다. 여기에 사업 한 건만 잘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는 한탕주의 외부 세력이 가세하면 웬만한 군사정책까지 바꿔버릴 수 있는 아주 낯익은 탐욕의 구조가 드러난다.

 

이미 오랜 기간 타당성 검토를 해서 적절한 예산을 배정하고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한 경우에는 비리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의 새로운 위협을 부각하며 기존 계획을 바꿔 예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국방사업이 ‘긴급 소요’라는 명목으로 끼어들기 시작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 신형 포탄과 레이더로 북한 장사정포 기지를 타격하는 일명 ‘번개 사업’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미 국내에서 개발을 하고 있는데 무기중개상이 개입해 해외 구매로 계획을 변경하고 무기 가격을 부풀리거나 성능을 조작하는 일도 있다. 공군 전자전훈련장비 도입 사업과 해군의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달리 군이 긴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타당성 검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초저가 예산으로 불량 장비를 도입한 사례가 통영함의 음파탐지장비, 해병대의 스파이크 미사일 도입 등이다.

 

안보위기 맞물리며 부쩍 증가

이런 문란함은 안보위기가 고조된 2010년 이후 부쩍 늘어나 이제는 비리를 조장하는 몸통이 국방부 자신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보수언론을 통해 북한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무기 도입이 추진되는데 지금 어떤 국방 시스템도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는다. 설령 비리를 차단하고 제대로 추진된 사업이라 하더라도 그 실상을 보면 상당 부분의 부수 장비나 탄약을 누락하고 주 장비만 도입한 탓에 실제 전쟁에서는 써먹을 수 없는 무기인 경우도 많다. 전투기는 샀는데 공대지미사일은 구입하지 않았다면 그 전투기는 무엇에 쓸 것인가. 경항공모함이라는 초대형 함정을 구입했는데 함정만 있고 탑재되는 항공기가 없다면 과연 도입 목적이 부합하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무모하게 벌여놓은 대형 무기도입 사업들은 그 자체가 부실 덩어리다. 이런 국방은 그 존재 자체가 비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 비리를 척결하는 핵심은 계약과 납품 과정에 대한 조사나 수사가 아니다. 무기 도입을 결정하는 군사정책, 즉 군의 무기소요결정 단계에 조사를 집중해야 한다. 지금껏 방산비리 수사가 구조적 개선이라는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속출하여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지금의 방산비리 수사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한다. 정책 결정자가 아니라 하급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산비리 수사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들을 양산하였고, 중소기업과 같은 하청기업에 가혹한 처벌만 남발해왔다. 반면 무기소요결정의 책임자들이 조사받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무리하게 계획을 변경하고 비현실적인 초저가 예산으로 사실상 비리를 조장한 책임자들은 거의 처벌받은 적이 없다. 이 점은 우리 국방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정의롭지 못한 세력의 기득권을 더 연장하는 폐해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