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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회 - 김종철

by 오직~ 2016. 3. 3.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32131.html

 

 

 

인간문명의 근본 토대는 단 6인치의 깊이에 불과한 토양층(표토)이다. 흙(humus)을 떠나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humans)이 아니다. 사실상 재생 불가능한 자원인 이 토양층은 오직 정성스럽게, 과욕을 부리지 않고 땅을 돌보는 사람들, 즉 토착농민들에 의해서만 보존될 수 있다. 농민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회의 귀결은 파멸뿐이다.

 

100일이 지났다. 작년 11월14일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 공격으로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고 코뼈가 부러지고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이후, 그는 아직 병원 침대에 누워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고 있다. 나는 이제라도 그가 기적처럼 깨어나 가족들과 ‘재회’의 기쁨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농민 백남기와 그의 가족을 위해서라기보다 우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다. 어쩐지 그가 영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그냥 저세상 사람이 돼버린다면 큰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이 비슷한 기분은 예전에도 몇번 있었다. 가장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이경해씨가 자신의 심장에 칼을 찔러 자결을 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을 때였다. 당시 세계무역기구(WTO)가 전세계 농산물 시장의 전면적 개방을 목적으로 제5차 각료회의를 개최한 곳이 칸쿤이었다. 이경해씨는 그 각료회의의 결정에 대한 결연한 항의 표시로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 어디서나 농민(소농)은 농사마저 상품논리로 돌아가는 세태 속에서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칸쿤으로 모여든 세계 각국의 농민들 중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한 농민이 하필이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우리 농민들의 상황은 내가 짐작해온 것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라는 것을 그것은 웅변적으로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민들에 의한 이런저런 호소와 항의의 목소리들이 계속됐음에도, 농민과 농촌을 대하는 이 나라 정치와 주류세력의 자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농촌 현실은 줄곧 더 심한 공동화·황폐화로 치달아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백남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경찰의 잔혹한 물대포가 하필이면 왜 그날 시골에서 상경한 한 늙은 농민- 그것도 평생 정의로운 사회와 올바른 농사를 위해서 헌신해온 농민운동 지도자- 에게로 향했을까? 내게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지난 몇십년 동안 개발독재, 급속한 산업화·도시화 그리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철저히 농촌과 농민을 희생시켜왔던 ‘폭력’의 구조와 메커니즘이 집약적으로 상징돼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과 농촌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풍조는 비단 이 나라의 지배층에 한정된 게 아니다. 수많은 도시주민들과 이른바 ‘교육받은’ 지식인들도 근본적으로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민들은 나날의 생활 속에서 대부분 농사라는 것을 잊고 산다. 도시의 거리거리마다 음식점과 레스토랑이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먹는 것들의 출처와 경로에 대해서 아는 바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기이한 현상이지만, 식품과 농사의 연관성은 많은 도시민들의 관심 밖에 있다.

 

실은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는 내가 먹는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길러져 여기까지 왔는지 꽤 예민했지만, 언젠가부터 둔감해져 버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체념해 버렸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먹는 식품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유독성 화학물질로 범벅이 되거나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이나 바다에서 생산된 게 아닌지, 어떤 재벌회사의 손을 거쳐 얼마나 많은 화석연료를 태우며 수백, 수천, 혹은 수만 킬로미터를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인지, 개인이 일일이 따지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시장개방시대’에는 너무도 힘든 일이고, 따져본들 제대로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체념이 습관이 되고 만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러한 체념이다. 그 체념 때문에 이 나라의 농민들이 농사다운 농사를 짓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되고, 또한 농민들은 철저히 소외된 채 끝없이 궁핍한 삶을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오늘날 쌀값은 20년 전 값 그대로이다. 지금 우리의 한 끼 식사에 들어가는 쌀값은 커피 한 잔 값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지난 35년간 대학등록금이 12배 오르는 동안 쌀값은 겨우 3배 올랐다는 통계도 있다. 35년 전에는 쌀 15가마 정도면 1년치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50가마를 팔아도 모자란다. 원래 우리 농촌에서 3만평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부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3만평의 농사를 지어도 1년 한 가족의 생활비도 충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처럼 기막힌 현실이니만큼 선거 때가 되면 단 한 표가 아쉬운 정치꾼들은 쌀값 인상, 농산물 제값 받기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그 공약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지난해 11월 물대포 공격을 당하기 전, 백남기 회장(전 광주대교구 가톨릭농민회)이 참가했던 전국농민대회는 후보 시절에 쌀값 인상을 철석같이 공약해 놓고는 선거 후에는 헌신짝처럼 버린 현 대통령의 행태를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농촌과 농민을 절망에 빠트린 것은 현 정부 탓만은 아니다. 이 절망적인 현실은 언제부터라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없이 오랫동안 계속돼온 이 나라 주류사회의 뿌리 깊은 농사 경시 풍조, 그리고 무엇보다 역대 정부의 분별없는 농정(혹은 농정의 부재)이 빚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그중에서도 백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게 그렇게 해왔듯이) 정부는 농민 백남기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도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사과도, 책임자 조사도, 처벌도 하지 않고 있다. 길을 가다가 어깨를 부딪쳐도 얼른 사과를 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법도인데도 말이다.

 

정부의 이러한 무책임, 아니 이러한 ‘자신감’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1990년 750만명이었던 농업인구는 지금 270만명으로 줄었다)와 급격한 고령화로 이제 전국적인 선거판에 별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농촌 상황을 계산에 넣은 탓일까?

 

우리가 농사 문제를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식량안보’ 때문이다. 식량(그리고 에너지)의 자급은 언제나 국가의 최우선 과업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와 지배층은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위험천만한) 구조를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농민들을 완전히 죽이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마구잡이로 식량을 수입하고, 농민들과 한마디 의논도 없이 ‘자유무역협정’들을 밀어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기후변화 시대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상화된 기상난조로 농사는 갈수록 예측 불가능한 모험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양보존 문제이다. 인간문명의 근본 토대는 단 6인치의 깊이에 불과한 토양층(표토)이다. 흙(humus)을 떠나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humans)이 아니다. 화려했던 고대문명의 멸망 원인은 거의 예외 없이 토양의 소멸, 즉 사막화 때문이었다. 지금도 중국은 쓰나미처럼 밀어닥치는 사막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50년간 중국의 북서지역에서 사막화 때문에 사라진 마을은 2만4000개를 넘었다. 더욱이 화학물질과 기계를 남용하는 농사의 상업화가 세계 전역을 지배하면서 토양층 소실은 한층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지난 40년간 지구의 경작 가능 토지 중 약 15%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사막화되고 말았다. 사실상 재생 불가능한 자원인 이 토양층은 오직 정성스럽게, 과욕을 부리지 않고 땅을 돌보는 사람들, 즉 토착농민들에 의해서만 보존될 수 있다. 농민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회의 귀결은 파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