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양식

무의미의 축제

by 오직~ 2015. 10. 11.

 

"그래, 그렇지."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그 말을 어쩜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하냐."

알랭이 놀라워했다.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원....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방미경 옮김 / 민음사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무론 (Chapter1~Chapter5)  (0) 2015.11.10
인물과 사상 2015. 10  (0) 2015.10.31
인물과 사상 9월호  (0) 2015.10.03
고령화 가족  (0) 2015.09.29
느낌의 공동체  (0) 201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