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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문인기행

by 오직~ 2015. 5. 20.

-고은

참외와 오이 사이로 한 뙈가를 척박한 비탈밭에서 봄가물 가을장마를 함께 하며 겨레붙이에 못지않게 지내왔으니

 

<청진동에서>

우리가 범죄 구더기 득실거리는 역사를 증오하며 떠도는 것은

떠도는 곳에서 우리가 쓰레기 그물에 갇힐지라도

금빛 저녁마다 물결 위에도 솟아오르며 날으는 날치때 아니냐

그렇다. 우연은 어느 날보다 잉잉거린다. 끝내 필연이 된다.

우리가 우연으로 모여서 이리저리 떠도는 동안

가장 눈부신 역사의 필연으로 복되어라 고난이어라

그리운 벗아, 금빛으로 모여 저녁은 영원하다.

아무리 우뢰소리 1호 4호 그리고 9호를 먹어도 쓰러지지 않고

더 필요한 만호 수평선의 번개칼을 외쳐 부른다. 오라! 오라! 오라!

우리가 여기서 떠돌지 않을 때

누가 구층 십층 밑에서 우리 진실로 하여금 떠돌겠느냐

 

 

-박용래

"오동꽃 우러르면 함부로 노한 일 뉘우쳐진다."

 

몸의 허당, 마음의 허방을 에우기 위하여

 

한 사람의 벗이 열두 명의 소실보다 부드럽고 천 석 추수만큼의 상속보다도 무거운 것이라면 첫 번째 보람은 한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소슬바람에도 앉을 자리가 없이 날리는 허벅눈

 

 

-송기숙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보름달 같아도

 

비록 어렵게 살아도 생각은 수월하고  하찮은 보람으로 깊은 시름을 덜어가는, 그런 보통 평민들과 한 틀로 된 사람이었다.

 

 

-조태일

돌이켜보면 자기 살 생각은 어디로 갔든 무턱대고 남의 걱정이 먼저였던 이십대에 상종을 시작하여 어느덧 남의 고질보다 내 고뿔이 더 급하게 된 불혹이 넘도록 서로 이맛살 한 번을 찌푸려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만날 직업도 산업도 없이 송구영신을 거듭하였다.

 

설익은 풋것은 담아 줄망정 오종종하거나 좀상스러운 완성을 한눈에 능멸하였고, 드러난 흠집은 애써 감싸주되 감추어진 변덕은 함께 하늘을 이지못할 적의를 대하듯이 모질게 미워하였으니, 그의 그릇은 한데에서의 풍마우세에는 능히 무표정으로 견디어내면서도 송곳 끄트머리만한 인간의 장난에는 당장 열 조각의 사금파리로 깨어질 것도 무릅쓰던 둔중한 질항아리였다.

 

오장육부가 젓갈이 다 되도록 운수를 숫제 술에 맡기다시피 하였다.

 

태풍과 파도가 야합하여 낳은 최서남단의 절도로서, 아이들은 물결소리에 자라고 성인들은 풍랑에 나부껴 늙어가는 곳이었다. (가거도)

 

 

-임강빈

꼭 비렁뱅이끼리 자루 찢고, 한 동네 떨거지들끼리 찧고 까부르고 하는 것이 우리 문단의 병폐와 버릇이어서 구태여 이를 비웃거나 나무랄 건더기조차 없는 터에 새삼스럽게 이르집어 탓을 한들 무슨 소용일 것인가. 선생은 애당초 잡다한 동네를 비켜 다녔다. 그리하여 큰길을 피해 고샅에서 만나는 달빛이었다.

 

 

-강순식

사람은 가고 세월은 오니, 날을 더할수록 주는 것은 살 날이요 느는 것은 산 날인데, 세상에 없는 사람의 세월은 짧고 세상에 있는 사람의 세월은 기니, 이 셈은 도대체 어디에서 틀렸기에 이런 것인가. 셈이 틀린 것인가, 셈을 틀리게 한 속셈이 틀린 것인가.

 

 

-박상륭

푸짐하게 흐르는 한강수를 굽어보며 틉틉한 막걸리를 몇 주전자씩 넉넉하게 들이켜곤 했다.

 

 

-박용수

그의 세월은 남강처럼 흘러가건만 그의 인생은 계속 진주 시내의 주막 속에서 맴돌되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정환

무정세월은 청산녹수처럼 흘러가고

 

사형언도애서 무죄 석방까지의 9년 옥살이...

 

 

-윤흥길

생기는 것이 있음 직한 일엔 소식이 오밤중이면서도 노는 데엔 살 만해진 사람들보다 더 바쁜 게 게으른 실업자의 소석임을 경험으로 깨닫게 된 것도 그 어름이었다.

 

 

 

 

☆ 이문구의 문인기행

    글로써 벗을 모으다 (2011)

- 이문구 / 에르디아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던 때

순전히 이문구 작가의 구수한 구어체 글을 읽기 위해 사두었던 책이다.

그가 기행한 문인들의 소식보다는 그가 표현한 문장에 방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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