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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인유책 : 사람마다 책임 있다 - 유홍준

by 오직~ 2015. 3. 24.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3025.html

 

 

 

 

나 역시 그들의 의전에 기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면 내가 잘 아는 미술사 얘기로 화제를 이끌면서 친선적 분위기를 유도했다. 북경에선 부시장이 초청한 만찬이 있었다. 안내인이 나를 소개하며 유명한 저술가라고 하자 부시장은 나에게 “유 청장님. 북경을 위해 좋은 글 하나 써 주십시오”라며 방명록을 내놓았다. 나는 그들 기분 좋으라고 최대의 찬사를 적었다. “북경이 중국이다.” 이에 힘찬 박수를 받으며 만찬을 마쳤다.

 

다음날 서안에서는 시장이 마련한 오찬이 있었다. 안내인은 덕담을 한답시고 내가 “북경이 중국이다”라는 명구를 남겼다고 치켜세웠다. 그러자 시장은 서안을 위해서도 한마디 써달라며 방명록을 내놓았다. 무어라 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의 수도가 서안이 아닌가. 나는 자신 있게 써 내려갔다. “서안이 있어서 중국이 있다.”

 

남경에서는 시인민위원장이 마련한 만찬이 있었고 안내인은 칭찬이랍시고 북경과 서안에서 내가 방명록에 쓴 글을 얘기했다. 그러자 위원장은 남경을 위해서도 한마디 남겨달라는 것이었다. 남경은 남북조시대 때 여섯 나라의 수도였던 ‘육조고도’이고 신해혁명 후 손문(쑨원)이 중화민국 임시정부 수도로 삼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남경이 일어날 때, 중국이 일어났다.”

 

이렇게 중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는데 그동안 안내를 맡았던 연구소 부소장이 자기 고향인 상해(상하이)를 위해서도 한마디 써 달라고 했다. 나는 서세동점 시절 어지러웠던 상해를 생각하며 한 자 적어주었다. “상해가 흔들리면 중국이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