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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의 싱가포르

by 오직~ 2015. 4. 2.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684350.html

 

 

 

 

감정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분야 1위!

 

이 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기껏 인구 500만으로 1억 가까운 필리핀(39위)을 뛰어넘어 국내총생산 세계 36위에다 1인당 국내총생산 5만6113달러로 룩셈부르크와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8위다. 한국은 두 분야에서 각각 13위와 29위를 차지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 나라는 부패가 적다는 뜻인 부패인식지수에서 덴마크, 뉴질랜드, 핀란드에 이어 세계 7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43위다. 정보기술 분야 세계 2위(세계경제포럼 2014년), 사업편의지수 세계 1위(세계은행 2012년), 국제경쟁력 세계 3위(국제경영개발원 2014년), 외환보유고 세계 10위(국제통화기금), 실업률 1.6% 세계 6위(국제노동기구), 인간개발지수 세계 9위(유엔개발계획), 경제자유지표 세계 2위(월스트리트 저널), 세계화지표 세계 1위(포린 폴리시) 같은 것들도 모두 이 나라 몫이다. 이쯤 하면 다들 알겠지만 싱가포르를 말한다. 멋들어진 빌딩들, 잘 가꿔놓은 열대 정원, 깔끔한 거리에다 곳곳에 버텨 선 쇼핑센터들을 보노라면 싱가포르에 붙인 온갖 현란한 경제지표들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세상 사람들은 그 싱가포르를 열대낙원이라고도 불러왔다. 경제지표로 보나 겉모습으로 보나 싱가포르가 세계 최고 우등생 반열에 오른 건 틀림없다.

 

지난 23일 숨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를 다루는 나라 안팎 언론들이 하도 위대한 지도자라 떠들어대길래 따져보았다. 근데 언론들이 그 싱가포르를 모조리 리콴유의 업적이라 우기는 걸 보면서 심사가 좀 복잡해졌다. 21세기 세계시민사회를 외치는 판에 임금님 은혜를 떠받드는 왕조사관 유령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조선일보>류에서는 아예 리콴유에 박정희까지 끼워 들고 나서기도 했다. 한 나라 경제를, 그것도 시민이 온갖 어려움을 겪어가며 일궈낸 경제를 독재자 한 명 공으로 돌리며 당치도 않은 개발독재란 수사까지 갖다 붙였다. 불법 정치를 경제로 둘러대는 아주 비과학적인 그 불온한 용어로 면죄부를 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서울에서든 싱가포르에서든 자카르타에서든 마닐라에서든 경제는 경제고 독재는 독재일 뿐이다. 거기엔 개발이니 안 개발이니 같은 수식어가 필요 없다. 젊은 시절 노동판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제법 이름난 치킨라이스 식당을 차리기도 했던 싱가포르 친구는 “모두가 개미처럼 죽을 만큼 일했다. 왜 ‘리콴유의 싱가포르’인가? 동의할 수 없다”며 1970년대를 돌아보았다. 바로 그런 자부심을 지닌 개미들이 오늘날 싱가포르의 주인공들이 아니겠는가?

 

“돈 충분해?”라는 외신기자들의 우스개

그렇다면 아래 경제지표들은 누구 은혜를 입은 탓인가? 싱가포르는 이른바 선진국 가운데 국민총생산 대비 국가부채가 105%로 일본(227%), 그리스(174%), 이탈리아(132%), 포르투갈(129%)에 이어 세계 5위다. 적잖은 경제 전문가들이 싱가포르의 미래를 밝게만 보지 않는 까닭이다. 최상위 경제 우등생들인 노르웨이(30%), 스위스(35%), 스웨덴(40%)과 좋은 비교거리다. 게다가 세계은행이 소득불평등을 매기는 지니계수에서 싱가포르는 155개국 가운데 123위를 자치했다. 중남미 엘살바도르(124위)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126위) 같은 나라들 주변을 헤매고 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같이 1인당 국내총생산 최상위 나라들이 소득평등 분야에서도 1~3위를 차지한 사실과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경제 우등국 싱가포르의 시민 평균 월급이 미국 돈으로 따져 한 1800달러쯤 되고 10% 웃도는 시민이 월 1000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리콴유의 아들이자 총리인 리셴룽은 수당과 보너스를 뺀 공식적인 연봉만도 싱가포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의 약 32배에 이르는 180만달러(2012년 삭감된 연봉 기준)를 받고 있다. 이건 1000달러 월급쟁이 시민이 15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되는 돈이다. 20만~30만달러인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총리들 연봉을 그 나라 보통 월급쟁이들이 따라잡는 데 3~5년쯤 걸리는 현실과 아주 먼 거리에 있다. 이건 국가수반 가운데 둘째로 많은 돈을 받아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봉 40만달러의 4.5배이며, 또 중국 주석 시진핑 연봉 2만달러의 90배에 이른다. 경제 우등생 싱가포르의 속살은 이렇게 비틀려 있다. 나라 안팎 언론들의 위대한 지도자론에 따른다면 말할 나위도 없이 이것도 리콴유의 업적이다.

 

그러니 리콴유가 위대한 지도자인지 독재자인지 그 판단은 고스란히 싱가포르 시민들 몫이다. 싱가포르 시민이 그이를 영웅이라면 영웅이고 독재자라면 독재자다. 비록 나라 안팎 언론들이 앞다퉈 리콴유 영웅담을 퍼뜨리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그 싱가포르 시민들 속내를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싱가포르 정부가 직유로든 은유로든 가르쳐온 대로 리콴유를 국부로 여기고 영웅으로 떠받드는 이들이 적잖을 것이다. 근데 과연 얼마나 많은 시민이 리콴유를 존경하거나 부정할지 그 속을 들여다볼 만한 연장이 없다. 이게 바로 우리가 몰랐던 싱가포르다. 경제 우등국 싱가포르에 언론자유와 표현자유가 없는 탓이다. 2015년 ‘국경 없는 기자회’(RSF)의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171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싱가포르가 153위를 했다. 분쟁 상태인 리비아(154위)나 이라크(156위)와 같은 수준이다. 이건 그동안 언론 탄압으로 악명을 떨쳐온 버마(144위)나 콩고민주공화국(150위)보다 상태가 더 안 좋다는 뜻이다. 싱가포르와 같은 경제 우등국인 핀란드(1위), 노르웨이(2위), 덴마크(3위)가 언론자유 분야에서도 최고 성적을 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동안 외신기자들은 누군가 싱가포르 정치 기사를 쓴다면 “돈 충분해?”란 우스개를 주고받곤 했다. 아버지 리콴유에서부터 아들 리셴룽 총리까지 툭하면 외신들을 고발해왔던 탓이다. 2013년 <블룸버그>가 47만달러짜리를 당했듯이 외신들은 리패밀리를 건드리겠다면 밑천부터 따져보는 각오가 필요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이코노미스트>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타임> <아시아위크>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같은 매체들이 리패밀리에 의문을 달았다가 줄줄이 당해왔으니.

 

내 싱가포르 친구가 외국으로 떠난 이유

물론 리패밀리가 싱가포르 주류 언론을 대상으로 그런 소송을 걸 까닭은 전혀 없다. 신문, 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 매체의 주인이 정부인데다 검열로 쥐고 흔들 수 있으니까. 예컨대 최대 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발행자인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SPH)가 모든 일간신문의 발행자를 겸하는 식이다. 미디어코프(MediaCorp)가 발행자인 일간 <투데이>나 7개 방송 채널도 사실은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Temasek Holdings)이 주인이고 보면 예외가 없는 셈이다. 그게 <스트레이츠 타임스>에서 일했던 내 친구가 “진짜 기자를 하고 싶다”며 결국 외국으로 떠난 까닭이기도 하다. 그게 이 글에서 인용한 싱가포르 친구들이 저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게 싱가포르다. 좀 농담스런 조사지만 갤럽이 2012년 발표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분야에서 싱가포르가 150여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시민들, 자신이 만든 정부를 향해 아무런 불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시민들이 살아가는 아주 잘사는 나라 싱가포르의 정체다. 리콴유의 작품이다.

 

그런 싱가포르를 2014년 <이코노미스트>는 167개국을 대상으로 한 민주주의 지표 조사에서 75위에 올렸다. 튀니지(70위)처럼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나라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싱가포르와 비교 대상 경제 우등국들인 노르웨이(1위), 스웨덴(2위), 뉴질랜드(4위) 같은 나라들은 민주주의 지표에서도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이건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같은 경제 우등생들이 언론자유, 민주주의 지표 같은 사회 모든 부문에서도 최상위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경제와 정치와 사회 수준이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이게 바로 경제만 우등생인 싱가포르와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마땅히 리콴유의 유산이다.

 

1959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출발해서 1965년 독립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리콴유의 인민행동당(PAP)은 실질적인 야당 없는 일당독재로 악명을 떨쳐왔다. 아버지 리콴유를 아들 리셴룽이 물려받아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인민행동당은 지금껏 56년 싱가포르 역사를 통틀어 오직 12석만을 잃었을 뿐이다. 그러니 2011년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이 87석 가운데 6석을 잃자 치명상을 입었다며 호들갑을 떨 만도 했다. 그동안 정치학자들은 그 리콴유-리셴룽의 인민당이 지배해온 싱가포르를 세습 전체주의 사회로 규정해 왔다. 그 리셴룽이 총리 자리를 차지하고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총리의 아내 호칭은 싱가포르 경제를 주무른다는 테마섹의 최고경영자 노릇을 해왔다. 리셴룽의 동생 리셴양은 최대 통신사 싱텔(SingTel) 최고경영자를 거쳐 현재 창이국제공항을 관리하는 민간항공국 대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렇게 리패밀리가 지배해온 싱가포르를 경제학자들은 족벌자본주의라 불러왔다. 좋든 싫든 그 전체주의 족벌자본을 이끄는 자들을 역사에서는 독재자라 불러왔다.

 

껌씹기와 오럴섹스마저 법으로 금지

여기 칠순 가까운 싱가포르 화가 친구가 있다. 그이는 싱가포르식 ‘보모국가’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이 나이에 아직도 정부한테 사사건건 훈계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민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럴 법도 하다. 화장실 물 내리는 것부터 껌 씹는 것까지 정부가 법으로 다스리는데다 오럴섹스마저 법으로 금지했으니까 오죽하랴. 이게 2012년 신경제재단(NEF)이 밝힌 행복지수(HPI)에서 조사 대상 151개국 가운데 싱가포르가 90위를 차지한 까닭이 아닌가도 싶다. 리콴유의 성취다.

 

리콴유 영웅담이 앞으로도 얼마나 돌아다닐지 알 순 없지만, 지난 25년 동안 내가 만나왔던 적잖은 싱가포르 친구들 가운데 리콴유를 영웅으로 받들어 모시는 이들이 없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손질 없이 태어난 영웅이 없겠지만 그 영웅의 본질만큼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적절한 온도에서 달걀은 병아리로 변하지만 어떤 온도도 돌을 병아리로 만들 수는 없다.” 마오쩌둥이 역사를 읽는 법이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