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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여줘서 고마워 딸바보 시인

by 오직~ 2014. 7. 15.

 

 

http://goo.gl/0KUz7t

 

 

 

 

 

작품의 품격에 비해 주목을 못 받는 작가가 있다. 그 와중에 어이없는 작가들이 어이없는 작품으로 스타가 되는 걸 보면 웃음이 난다. 가서 말해주고 싶다. “너 별로야.” 안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그 안에서 스타가 돼 봤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거든. 좁은 방 안에서 눈에 띄려고 싸우는 거지. 이렇게 날서게 적은 걸 보면 나, 부러운가 보다.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그런 거라는데… 뭐, 그런가 보지. 아무튼 나는 시 쓰는 서효인이 ‘작품의 품격에 비해 주목을 못 받는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인정을 받았다. 효인이와 나는 2009년 봄에 처음 만났고, 효인이는 2011년에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드디어 효인이에게 밝은 날이 온 것이다. 잘됐어, 잘됐어, 중얼거리며 시상식장에 가던 저녁을 기억한다.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 차가 안 막혔다. 와, 그런 날도 있었다!

 

좋은 시는 읽고 나면 어떤 풍경이나 단어가 쑥쑥 솟는다. 그런 면에서 서효인의 수상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은 읽을 가치가 있다. 짜식, 좋겠다. 잘 써서. 그즈음 효인이는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꽤 팔렸다. 몇백만원 정도지만 인세도 받았다.

 

순풍에 돛 달고 효인이는 결혼했다. 딸 은재가 태어났다. 은재는 스물한번째 염색체가 보통 사람보다 하나 더 많다. 나는 지금 바로 앞 문장을 아주 빠르게 적었다. 슬프니까. 왜 우리 효인이 딸이 아파야 하지?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못했다. 2년이 지났고 효인이와 은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놀라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며칠 안 갔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되물었다. “아이를 보고 있으니 그런 마음 따위 없어졌어. 어서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지.” 와, 아빠는 그런 거구나. 낙담할 시간도 없구나, 살아서 견뎌서 아이를 지켜야 하는구나.

 

“다소 느리고, 자세에 교정이 필요하고, 인지 발달을 도와줘야 하는 아이들이 있어.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병원이나 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대기를 걸어놓고 6개월에서 1년 기다려야 해. 하지만 턱을 깎고 눈을 트고 종아리 살을 없애는 병원은 많잖아. 뭔가 이상하지 않아?” 씨발 대한민국. 다운증후군 아이들을 위한 다운복지관은 우리나라에 한 곳뿐이라고 한다.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런데 내가 마음이 더 아픈 건 효인이가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주변과 현실을 돌아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시인의 습성이다. 버릴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 날 괴롭게 해. 인간에 대한 긍정으로 글을 써왔는데, 인간이 긍정할 만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 거야.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보면 모두 사랑스럽지만, 인간이라는 둘레로 모이면 추악해져. 어려워.”

하지만 효인아, 그럼에도 작가란 까만 세상에서 끝내 긍정의 의지를 잃지 않는 존재가 아닐까? 그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빛 아니겠니, 라고 효인이에게 말하지 않았다. 쉬운 말이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긍정하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까. 여전히 글의 힘이 유효한가? 나는 모르겠다.

 

“사람에 대해, 우리가 필히 거쳐야 할 반성의 지점에 대해, 결정적인 순간에 스윽 빛을 발하는 양심에 대해 쓰고 싶어. 회사원, 가장, 시민으로 존재할 때와 키보드 앞에 앉아 백지를 바라볼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야.” 효인이가 대한민국의 모든 문학상을 받으면 좋겠다. 나한테 하나도 안 줘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저렇게 담담하게 세상의 슬픔을 바라보는 젊은 시인에게 무슨 상이 아까운가. 하지만 고작 상 따위가 효인이에게 힘이 될 것 같진 않다. “기쁜 건 그냥 우리 딸들. 딸을 돌보는 아내와 어쨌거나 아빠 노릇을 하고 있는 나.” 올해 효인이는 딸을 또 낳았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높은 분들, 간곡히 빌어요. 우리의 아빠들이, 엄마들이, 아이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세요. 이런 기도를 누군가 보기나 할까?

 

더불어 절대 무엇을 홍보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효인이가 은재와 보낸 시간을 기록한 산문집 <잘 왔어, 우리 딸>이 최근 출간됐다. 읽으면 눈물이 난다. 효인이가 오히려 우리를, 독자를, 그저 방관자인 많은 사람을 토닥거리기 때문이다. “형, 캐나다였나, 암튼 북반구 선진국 어느 나라 사람은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서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면 이렇게 되묻는대. 왜 슬퍼? 어때서?” 효인이의 등은 북반구보다 넓다.

이우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