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

아류 제국주의 국가, 대한민국 - 박노자

by 오직~ 2014. 1. 23.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0735.html

 

 

 

 

부끄러움 같은 감정은 개인을 행동으로 나서게끔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하지만 냉철한 분석을 대체할 수 없다.

 

미국 중심의 세계에서 산업국가로 크고, ‘친미성’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 돼버린 대한민국에서는, 미국은 굳이 일일이 ‘식민지적’ 통치를 할 필요조차 없다. 한국인들이 다 알아서 잘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으로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의 경쟁에서 어느 한쪽에 베팅할 필요라도 있는가?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미군과 미국 투자자를 자국민보다 먼저 배려할 것이 어차피 보장돼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아니면 최근 10여년간의 영어 광풍을 관찰해보라. 과연 고려대나 성균관대 등이 영어강의 비율을 50%까지 높이려고 안간힘을 동원하는 것은 ‘미국 신식민지 당국’ 간섭 때문인가? 한국에서 영어는 이미 전통시대의 한문처럼 사회귀족들의 특권언어가 돼버렸으며, 부모에게 조기유학이나 영어연수 보낼 돈이 없어서 영어를 덜 하게 된 학생들에 대한 차별은 전통시대의 천민차별처럼 당연지사가 되고 말았다. 식민성은 이미 우리들의 집단 정체성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자본가들은 과연 미국에 대한 순수한 고마움(?)으로 은행권을 비롯한 가장 ‘단맛이 나는’ 투자시장들을 미국 등 핵심부 자본을 위해 열어젖히고 있는가?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한-미,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서 국내 시장을 핵심부 자본에 ‘제공’해준 데 대한 반대급부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착취질서에 비중 있게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 질서 자체가 제국주의적 성격을 지니는 만큼, 미국의 충실한 후국(侯國)으로서 그 질서에 참여하는 대한민국을 아류 제국주의 국가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감히(?) 이라크의 유전들을 국유재산으로 묶어 두었던 사담 후세인 정권에 대한 불법 침략을 감행해 이라크에서 시장주의적 정부를 세워주는 것이 ‘본류’(本流) 제국주의 국가가 할 일이라면, 그 시체 더미 속에 들어가서 ‘자원개발’ 등으로 경제적 착취의 기회를 노리는 것은 아류 제국주의 국가의 몫이다.

 

‘한국식 제국주의’라면 결국 대자본의 경제 영토의 대폭적 확장을 의미하는 것인데,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바로 이와 같은 확장은 현실이 됐다.

 

결국 친미성향이 거의 내면화돼 있는 한국 지배자들은 각종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 등 중심부 자본에 국내 고수익 투자 기회를 제공해가면서 미국 주도의 신제국주의적 세계질서에 편승해 일종의 아류 제국으로서 농지·에너지 약탈부터 저임금노동 착취까지 세계의 주변부에서 또 하나의 ‘작은 식민모국’으로 군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