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이 질적으로 문장의 절대경지에 도달했다면, 다산은 양적 방대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태생과 체질의 차원에서 보자면, 연암은 물이고, 다산은 불이다. 두 사람의 일생은 물과 불의 흐름을 고스란히 체현해냈다. 물은 매끄럽게 흐르고, 불은 격렬하게 솟구친다. 그 사상적 결정판이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다. 열하일기는 1783년, 연암의 나이 47살, 한창 생이 무르익은 시점에서 나온 연암사상의 결정판이다. 목민심서는 1818년, 다산이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던 바로 그해에 완성된 걸작이다. 마치 목민심서를 쓰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유배지에서 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산과 목민심서는 혼연일체다.
“열심히 부딪혀야 한다. 내 머리가 깨지든 바위가 깨지든 벽이 깨지든.” “미래로 가야 하니 과거의 저를 버릴 수밖에 없었죠.” “외롭다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자신 없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오, 이건 음악뿐 아니라 모든 공부의 원리가 아닌가.
그렇다. 이 천지간에 새로움이란 배움의 열정밖에 없다. 그리고 배움이란 자신과의 부단한 대결이다. 자신을 넘어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곧 길이요 도(道)다. 다산과 연암이 지성과 글쓰기를 통해 보여준 그 길을 조용필은 노래를 통해 내게 들려주고 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서재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대신 나는 내가 다니는 모든 길을 서재로 삼고 싶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수많은 다산과 연암 ‘들’을 만날 것이다. 매 순간 다르게 변주되는 조용필의 노래로 내 감수성을 충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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