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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상처 받는다 - 정희진

by 오직~ 2013. 2. 28.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2004

 

 

 

이 책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이다. 나는 책보다 영화가 좋았다. 앙 리(李安)가 아닌가. 목을 빼고 까치발을 디디며 그의 우주를 기웃거렸다. 이 텍스트는 의미심장한 주제들로 미어질 지경이다. 일제 구명보트의 견고함과 보험 처리 장면에서 일본 근대성에 ‘감탄’했다가, 뗏목으로 쫓겨난 소년에게서 약탈자에게 자아를 빼앗긴 사람을 보았다. 동물을 먹어치우는 식충 섬은 버자이너 덴타타(이빨 달린 질) 이야기를 연상케 했다.

 

 

1977년 7월2일. 거대한 화물선이 침몰한다. 힌두교도이자 무슬림이며 크리스천인 파이(Pi)라는 사연 많은 이름의 인도 소년과 250㎏짜리 벵골호랑이가 227일 동안 바다에서 표류한다. 둘은 멕시코 해안에서 구조된다. 아니, 소년은 구조되고 리처드 파커(호랑이 이름)는 뭍에 닿자마자 근처 밀림으로 들어간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파커가 사라진 밀림 입구를 두 번 클로즈업한다. 통증이 느껴지는 압권이었다.

 

 

소년은 엉엉 운다. 살아남은 감격 때문이 아니라 7개월 넘게 함께했던 리처드 파커가 뒤도 안 돌아보고 “아무 인사도 없이”(so unceremoniously) 떠났기 때문이다. 운동경기 때 득점을 해도 세리머니를 하는 게 인간인데…. “나는 그가 내 쪽으로 방향을 틀 거라고 확신했다. 날 쳐다보겠지. 귀를 납작하게 젖히겠지. 으르렁대겠지.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매듭지을 거야. 그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밀림만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더니 고통스럽고,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날 살게 했던 리처드 파커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353쪽)

 

 

식민주의적 발상이지만 파이보다 그럴듯한 사람 이름, 리처드 파커. 망망대해에서 호랑이를 친구 삼아 보살피고, 싸우고, 겁먹고, 정들었던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상처받는다. 호랑이는 인간이 사는 법, 즉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와 슬픔, 내 마음에 남은 그의 빈자리, 서투른 작별의 후유증과 상관없다. 바다에서 살다가 이제 밀림에서 살 뿐이다.

 

 

인간이 급격히 외로워진 시기는 의미, 이성, 역사주의 따위를 앞세워 자연을 공격하면서부터다. 그나마 인간 중에서는 선하고 지혜로운 파이. 그의 일부가 아무 인사도 없이 떠났다. 사람은 인연 덕분에 산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 스스로 부여한 의미일 뿐 자연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최대치의 관심이라고 해봤자 ‘너희는 지구의 재앙이야’.

 

 

문명 대(對) 자연? 이런 문법은 없다. 우리는 모든 인식 대상에 대해 그렇듯 자연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안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알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은 없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은 인간이 추구하고 투사하고 개입한 문명의 또다른 얼굴로서 자연(cultured nature)이다. 그중 가장 믿을 만한 자연은 인간이 만든 신(神)이 아닐까.

 

 

배신감! 나도 그 장면에서 울었다. 삶이란 나는 남고 내게 의미 있는 관계자(關係子)들은 떠나는 과정이다. 시간은 그들을 태우고 멈추지 않고 나를 앞지른다. 건강, 능력, 기억, 사람, 중독… 이들을 제때,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할 때 몸에 남아 병이 된다. 미련과 후회, 그리움이 지나치면 “떠나보내라”고들 한다. 사실 그러고 말 것도 없다. 그들은 혼자 간다. 존재하지도 않는다. 떠났으니까.

 

 

물론 인간은 무의미 속에서도 살지 못한다. 다만, 탐욕스러운데다 멍청하기까지 한 호모 사피엔스의 우월감이 만고(萬苦)의 근원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지구의 유일한 인식자(knower)라는 생각은 스스로 만든 망상이다. 백번 양보해서 ‘생각하는 동물’이면 뭐하나. 문제는 무엇을 생각하느냐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찰나를 사는 먼지다.

 

 

파커 덕분에 내 인생의 중대한 몇몇 관계자들을 떠나보냈다. 고열과 구토를 동반한 감기가 세리머니를 대신했다. 오랜 세월 나를 괴롭혔던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강박은 다소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서러움이 가시질 않는다. 이 추운 날 아침 무거운 몸을 일으킬 이유를 찾아야 한다. 파이, 파커! 어쩌면 좋겠니.

2013한겨레 정희진 여성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