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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와 풍뎅이에게 폐를 끼쳐서야 되겠는가

by 오직~ 2012. 8. 15.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46630.html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공양> 전문)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재테크> 부분)

 

 

“나방이 왔다 풍뎅이가 왔다 매미가 왔다/ 형광등 불빛 따라와서 모기장 바깥에 붙어 있다/ 오지 말라고 모기장을 쳐놓으니까 젠장, 아주 가까이 와서/ 나를 내려다보며 읽고 있다// 영락없이 모기장 동물원에 갇힌/ 나는 한 마리의 슬픈 포유류”(<모기장 동물원>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