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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김제 성산공원과 일제 흔적들

by 오직~ 2011. 12. 1.

전북 김제 시내 6km…성산공원~김제향교~옥거리~김제역

 

 

 

②“김제여고 출신이다아, 혀부리믄 보두 않구 데려갔단께에. 말하자믄 기름진 쌀 마이 묵고 자랐응게 이쁘다 이것이여.” 전북 김제시의 향토사학자 김병학(82)씨의 말씀. 볏고을(벽골) 김제는 광활한 평야와 삼한시대 수리시설인 벽골제로 이름난 고장이다. 전국 쌀의 30%가 김제 일대에서 나온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엔 쌀 수탈이 자행됐던 곳이다. 일본은 군산항을 통해 쌀을 실어갔다. 전후좌우로 지평선이 아스라한 김제의 도심 한복판, 야산에도 골목길에도 일제가 할퀴고 간 흔적이 남아 있다. 성산공원에서 출발해 김제동헌과 전통시장 거쳐 김제역까지 걷는다. 약 6㎞.

 

김제 시내 주민들의 요긴한 휴식처, 성산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계단길을 오른다. 해발 41m. 성산은 넓고 넓은 김제평야 한복판, 김제시내 주변에 납작 엎드린 야산 중에서 가장 높고 또 아름다운 산(언덕)이다. 성산(城山)이란 이름은 삼한시대(또는 백제 때)에 쌓은 토성에서 유래했다. 토성 바깥을 둘러싼 조선시대 석성이 있었으나, 일제 초기 성벽을 허물어 간척지 매립에 쓰면서 사라졌다. 석성은 찾아볼 수 없고 토성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300m 길이의 성산 산책로를 걷는 동안, 500년을 살아온 느티나무들과 숲을 이룬 키다리 소나무들이 심호흡을 하게 해준다.

 

삼한시대 토성 쌓은 성산…전망대 서면 부안 앞바다까지

산꼭대기엔 전망탑이 있다. 일제강점기 물 저장탱크가 있던 자리에 1996년 세운 30m 높이의 3층 건물이다. 2층에 전시된 김제 역사문화 자료를 보고 3층 전망대로 오른다. 통유리벽 전망 휴게시설이 있으나, 영업을 하지 않는다. 벽시계 하나 달랑 걸린 휴게실 분위기는 황량해도 전망은 괜찮다. ‘징게맹게 너른 들’과 김제의 어머니산인 모악산이 두루 눈에 들어온다. 설치된 망원경을 들여다보니, 군산·부안 새만금방조제 쪽 바다 일부까지 또렷하다. 산책로에 ‘이상운 학생 순의비’가 보인다. 1943년 일제의 쌀 수탈 통로를 막기 위해 주재소와 만경교 다리를 폭파하려다 발각돼 옥중에서 순국한 이리농림학교 이상운 학생을 추모해 세운 빗돌이다. 충혼비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희생된 분들의 넋을 추모하는 빗돌. 일제 때 그 자리엔 신사가 있었다.

 

성산을 내려와 김제 조씨 문중의 용암서원 지나, 김제향교로 들어간다. 맨 뒤 대성전이 조선 말기에 중수된 건물이다. 강당에선 묵향이 진동한다. 주민들이 사서삼경도 배우고 서예도 익히는 공간이다. 향교 앞 거리에, 일제 때 세워져 20여년 전까지 이용돼온 교동정미소 빈 건물이 남아 있다. 김병학씨가 설명했다. “왜정 때 가을이면 이 정미소 주변으로 나락이 산처럼 쌓였다. 순서를 기다리느라, 볏가마들에 각자 이름을 써붙이곤 가서 술판을 벌이는 일이 많았다.”

 

성산 기슭의 김해 김씨 문중 벽성서원 지나 김제전통시장으로 드는 길 옆에 낡고 찌든 일본식 가옥 한 채가 있다. 지루한 철거·보존 논란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일제강점기 건물이다. 향교와 옛 관아 주변 거리는 조선초부터 김제의 중심거리이자 번화가였다. 김제전통시장 골목 한쪽에서 꽹과리·북소리가 요란하다. 엿장수들의 각설이 타령이 한창인데, 구경꾼도 엿 사먹는 이도 없어 썰렁하다.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손뼉 치며 흥을 돋우신다.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김제동헌(수령의 집무실)과 정자인 피금각, 그리고 내아(수령의 처소)를 둘러본다. 옛 자리에 옛 모습대로 앉아 있는 건물들과 앞뒤 마당에 수북이 쌓인 샛노란 은행잎들이 늦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동헌 현판 근민헌의 ‘근민’은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뜻, 피금각의 ‘피금’은 옷깃을 풀고 마음을 나눈다는 뜻이다.

 

시다바리다방과 해태다방 사이 골목 끝자락은 조선시대 감옥이 있던 곳. ‘옥거리’라 불린다. 여인숙·술집 간판 즐비한 옛 홍등가 골목으로 든다. 파라다이스·진선미·홍콩…, 간판들은 낡고 닳았는데, 담벽엔 ‘청소년 선도구역’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50대 아저씨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까놓고 말히어서 여가 거시기 똥골목이랑게. ×팔이골목이라고도 허고.” 수십년 전엔 “방아찌러 왔다가들 쌀 팔아갖고 아조 며칠씩 묵음시로 바닥 볼 때꺼지 퍼마시던 데”라고 한다.

 

김제전통시장 통과해 원각사 절 지나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 보고 찻길로 나선다. 김제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전통시장 사거리 앞 박약국 지나 김제초등학교 쪽으로 걷는다. 디씨몰마트 주변은 “일제강점기 쌀을 수탈해가던 하시모토 농장 창고와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김제묘목장 가게 앞엔 감나무·매실나무·복숭아나무 묘목들이 가득하다. “봄갈에 마이 심는디, 땅만 파지기만 허면 지금 심어두 안 죽어. 다 살드라고.”(묘목장 주인) 대봉시 3년생 3만원.

 

유황꿀돼지 식당 골목을 돌아 당구장·유흥주점이 된 옛 제일극장 건물을 만난다. 제일극장은 김제극장·중앙극장과 함께 김제의 3대 극장이었으나 다 문 닫았다. 골목길 걸어올라 오른쪽 자영고등학교(옛 김제농고) 옆 언덕길을 바라본다. 코비갯재라 불리던 고개다. 부안 쪽에서 소금 짊어지고 벽골제 둑길 걸어와 김제 거쳐 전주로 가던 이들이, 고개 밑 주막에서 묵어갔다고 한다. 본디 여우고개였으나, 주막의 젊은 주모가 남편 몰래 손님들과 어울리며 몸을 함부로 하자, 남편이 부인 코를 베어버린 뒤 코비갯재로 불린다고 한다.

 

» 성산공원 벽성서원 정문. 겨울나기용 연탄이 쌓여 있다.
일제 일본식 가옥엔 다다미방·옛 벽지 그대로

고갯길을 뒤로하고 고엽제전우회 지나, 역시 당구장으로 바뀐 중앙극장 건물 보고 김제시립도서관(옛 읍사무소 자리) 앞으로 간다. 도서관 오른쪽 옛 동진농지개량조합(동진농조·현재 자활센터) 담벽에서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동진소나무’로 이름붙여진 200년 된 나무다. 앞 빗돌에 ‘수류만리(水流萬里) 송색천년(松色千年)’(물은 흘러 만리에 이르고, 소나무 푸른빛은 천년을 간다)이란 글을 새겼다. 동진농조는 1925년 일제가 김제·부안·정읍 일대 물 관리를 위해 만든 조합으로, 최근까지 존재했다. 일제 쌀 수탈의 전초기지이면서 한편으론 당시 농민들을 가뭄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기구다. 치욕과 풍요로움, 양면성을 가진 김제의 관개수리 역사를 지켜본 소나무라 하여 시민들이 보존하고 있다.

 

‘덩덩따다구긍~’ 김제농악보존회(지하 1층) 연습장에서 흘러나오는 장구 소리 들으며 농어촌공사(옛 군청) 앞을 지난다. 여기서 경찰서 오거리 지나 김제역에 이르는 도로는 일제 이후 교육청·법원·등기소·경찰서 등이 자리잡은 관청거리다. 가로수로 심어진 상록수 히말라야시더(개잎갈나무·설송) 행렬이 이채롭다. 김제동초등학교 옆골목, 1939년 도정공장 안채로 지어진 일본식 가옥 손효성 가옥(등록문화재)을 보고 나와 김제역을 바라보며 우회전한다. 또 한 채의 일본식 가옥(유인호 가옥·등록문화재)이 나온다. 들어가 살펴보니 4중창문과 긴 마루 복도, 복잡하게 구획된 방들, 나무계단과 2층 다다미방, 옛 일본어 붓글씨가 빼곡한 벽지 따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쌀을 수탈해간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이자 관리인 숙소였다. 1958년 집을 사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유인호(84)씨가, 철길 건너 두월천 옆 도정공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쩌그 저 공장 안 있소? 거기 왜정 때두 매갈이깐(정미소)이 있었단게. 일본으루 쌀 실어가는 일본눔들 배가 거까지 들어왔응게.”

 

1912년 일제가 개통한 김제역에서 걷기를 마무리한다. 삼한시대 벽비리국, 백제시대 벽골군…, 역사 앞에 세운 안내판에서 ‘김제 지명유래’를 읽어보고 대합실로 들어선다. 개찰구에 서서 철길 건너쪽을 바라보니, 일제가 쌀을 실어내갔던 두월천 ‘매갈이깐’ 자리도 보이고, 얼마 전까지 미군 기지가 있었다는 황산도 보였다.

 

 

 점심은 바지락죽·칼국수로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서김제나들목에서 나가 29번 국도 따라 김제시내로간다. 또는 경부~천안·논산~호남고속도로 타고 서전주나들목에서 나가 716번 지방도 따라 시내로 간다.

 

먹을 곳 | 요촌동 지평선바지락죽(063-546-3939)의 바지락죽·회무침, 시청앞 섬마을바지락칼국수(063-543-5000), 요촌동 명품관(063-543-9595) 한우국밥·불고기버섯전골·육회돌솥비빔밥.

 

묵을 곳 | 김제시 검산동과 요촌동, 모악산 금산사 주변에 모텔이 많다.

 

여행문의 | 김제시 문화홍보축제실 (063)540-3374, 김제향토사연구회 (063)545-4006.

 

» 김제 성산공원 사거리 부근의 일제강점기 일본인 가옥.

 

20111201한겨레 이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