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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전남 여수 연등동~진남관~돌산공원~어항단지 8km

by 오직~ 2011. 6. 26.

고운 물결 너머 장군들 숨결 넘실

여수 잉구부길과 옛도심

 

 

 

전남 여수(麗水)는 물 맑고 섬 경치 아름다운 ‘물의 고장’. 한려해상공원의 서쪽 끝이다.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주제로 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5~8월) 준비로 도시 전체가 분주하다. ‘살아 숨쉬는’ 연안의 맑은 물엔 왜적에 맞서 싸운 조선 수군들의 피땀도 녹아 있다. 전라좌수영(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 본영과 삼도수군통제영을 두었던 조선 수군의 핵심도시였다. 옛 도심은 여수반도 동남쪽 끝 ‘여수 구항’ 주변이다. 연등동 잉구부길에서 시작해 진남관과 돌산공원·돌산대교 거쳐 어항단지 수협공판장까지 걷는다.

 

여수 옛 도심으로 드는 옛 77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이름도 정겨운, 이른바 ‘잉구부(인구부·왼구부)길’이다. 비좁은 2차선 포장길 한쪽에서, 자루에 보리 이삭을 넣고 방망이로 두드리던 할머니가 종고산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쩌그서 일로다 꿉었응게 왼구부랑게. 왼구부 화장터라개야 잘 알아묵제.”

 

연등천을 따라 이어지는 잉구부길은 과거 순천 쪽에서 옛 여수 도심으로 들던 유일한 통로였다. “임진왜란 때도 그라고 여순사건 때도 그라고, 요 길 아니믄 전쟁을 못해.”(주민 김덕일씨·72) 1948년 여순사건 때 14연대 반란군이 이 길 주변에 잠복하고 있다가 진압군을 공격해 큰 타격을 입혔다고 한다.

 

1800년대 초반 여수절도사를 지내며 거북선을 복원하고, 가뭄으로 고통받는 주민을 구제했다는 안숙의 공적을 기려 세운 ‘여수절도사 안숙 사적비’를 보고, 옛 화장터 자리라는 낡은 싱크대 공장 밑으로 간다. 길목에 여순사건 당시 ‘잉구부 전투’ 상황을 설명한 안내판이 있다.

 

» 연등동벅수(돌장승) 한쌍 중 남벅수.

임진왜란도 여순사건도 잉구부길 거쳐 한 쌍의 돌장승(돌벅수)을 만난다. 전라좌수영성으로 드는 서문 밖 길목에 세워져, 마을 수호신 구실을 해온 ‘연등동 벅수’다. 정조 때 세운 것으로, 남벅수엔 ‘남정중’(南正重), 여벅수엔 ‘화정려’(火正黎)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여수 문화관광해설사 전장길(68)씨는 “남정·화정(북정)은 각각 중국 상고시대에 하늘을 담당하던 신과 땅을 맡던 신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영조 때의 전라좌수사 김영수를 기리는 ‘호좌수영수성창설 사적비’를 보고 내려와 충무동로터리 거쳐 큰샘골로 오른다. “이순신 장군도 군사도 백성들도 마셨다”는 ‘큰샘’이 있는 마을이다. 샘에서 채소를 씻고 다듬던 큰샘골주막 주모가 말했다. “겨울엔 따땃하고 여름엔 겁나 차부러.”

 

큰샘 옆의 낡은 3층 건물(옛 임약국)과 굴다리 지나 작은샘터(소화전66호)를 보고 내려와 큰샘골 전당포 거쳐 여수향교로 오른다. 비탈에 세워져 옹색하게 변형된 형식이지만, 문루(풍화루)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 등 갖출 건 다 갖췄다.

 

군자동 골목길 따라 ‘일화문’ 현판이 보이는 ‘군자경로당’(남)과 대문 위로 철조망이 쳐진 ‘군자동 여자노인당’ 지나 진남관을 만난다. 망해루와 통제문을 통과하면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진남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지휘하던 진해루 터에 세운(1599년) 전라좌수영 객사다. 둘레 2m를 넘는 기둥 68개가 떠받친, 국내 최대 단층 목조건물이다. 성안의 다른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일제가 성곽과 건물을 헐어 바다 매립공사에 썼기 때문”이다.

 

 

 

 

공적비·선정비 무리 보고 옷가게와 더불어 차량도 즐비한 ‘차 없는 거리’ 지나 일제강점기 2층 벽돌건물(현 제일은행)을 만난다. 일제가 경제 수탈의 도구로 활용한 조선식산은행 건물이다. 정문 위에 조선식산은행이라 음각된 글씨가 있다.

 

» 여수 군자동 큰샘골의 큰샘. 이순신 장군도 드셨다는 샘이다.

장군도·장군정의 장군은 이량 장군 이순신광장과 ‘선어시장’을 구경하고 고소동 골목길로 오른다. 계단과 담벽을 따라 꽃과 동물, 거북선 등을 그린 ‘색이 있는 고소 골목’이다. 끝까지 올라 왼쪽으로 돌면 이순신 장군이 군령을 내리던 ‘고소대’ 정문이다. 270여년 된 느티나무 그늘 옆 비각 안에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를 기려 세운 ‘통제이공수군대첩비’, 대첩비 건립 경위를 적은 ‘동령소갈비’, 이순신 전사 뒤 ‘장군의 전적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군사들이 세운 타루비가 있다.

 

고소대 입구 왼쪽 길옆으로 연녹색의 허름한 단층 건물이 보인다. 1960~70년대 국내 프로권투의 한 축을 담당한 ‘여수복싱도장’이다. 국내 첫 세계챔피언 김기수(66년·주니어미들급) 선수와 75년 세계챔피언에 오른 유제두(˝) 선수 등을 길러낸 권투도장이다.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다.

 

‘대첩비 뒷길’을 따라 걷는다. 담벽에 흰 페인트를 칠해 놓아 낡은 골목길이 흰 도화지처럼 눈부시다. “(벽화를) 여긴 안 기린다요?”(해설사 전씨) “곧 다 기리요.”(주민) 장군도·돌산대교 내려다보이는 소방도로변의 비파나무가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를 무성하게 달았다. 전씨가 열매를 따 왼손으론 입에 넣고, 오른손으론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아따, 비파 오랜만이네.” ‘마음을 진정시켜준다’는 열매를 따 맛보니, 새콤한 맛과 향이 입안에 퍼진다.

 

중앙5길 팻말을 따라 내려와 최근 만들어진 또하나의 벽화골목을 만난다. 최근 그렸다는 ‘중앙동 천사(1004m)의 길’이다. 바닷가 이순신공원(여수 종포 해양공원)을 따라 걷는다. 화장실 뒤쪽에 돌산도를 오가는 철부선 선착장이 있다. 배를 타고, 이량 장군이 왜적을 막기 위해 돌산도까지 수중석성을 쌓았던 장군도를 거쳐 돌산도 선착장(매립공사중)으로 간다. 10분 거리. 편도 1300원.

 

공사중인 돌산도 쪽 선착장(실은 바지선) 옆에서 긴 줄에 참장어(하모) 낚싯바늘을 매던 어부에게 들었다. “한 줄에 바늘을 100여개쯤 달아요. 지금부터 9~10월까지가 하모 철이죠. 미끼는 전어 토막이 최고요.”

 

영광수퍼 옆길로 올라 돌산공원(16)으로 오른다. 돌산대교준공기념탑 앞에서 내려다보면 일직선으로 뻗은 돌산대교(17)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984년 완공된 450m 길이의 사장교다. 차량 통행이 많은 17번 국도 건너(차량 조심!) 돌산대교로 간다. 대교 건너 대교매점에서 잠시 쉰다. 대교매점을 24년째 운영한다는 주인 김영희(74)씨가 답답해하며 말했다. “요기 장군정도 그렇고 쩌그 장군도도 그렇고, ‘장군’이 이순신 장군인 줄로 아는디, 고것이 아니요. 수중석성을 쌓은 이량 장군을 말하는 것이란게.”

 

다리 밑 당머리 포구(18)로 내려간다. 고깃배 10척이면 꽉 차는 자그마한 포구다. 참장어를 내는 식당 서너집이 모여 있다. “우린 5월부터 9월까지만 장사해요. 하모철에만.” 선창가횟집 이수동(57)씨가 말했다. “잔뻬가 많아 궈먹으믄 맛이 나겄소. 뻬를 칼로 송쳐(다져) 유비키(샤브샤브)로 많이 먹지라.”

 

포구 옆엔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해마다 제를 올리는 영당(19)이 있다. 최영·이순신·용왕신·산신 등의 여섯 영정을 모시는데, 일제강점기에 영정을 강제로 철거한 뒤 쇠락했던 것을 1982년 복원했다. 영당 옆은 어항단지 수협공판장(20)이다. 매일 새벽 5시부터 위판이 이뤄진다. 뱃길 빼고 8㎞를 걸었다.

 

Θ 가는 길 | 중부지역에서 호남고속도로 타고 가다 익산에서 완주~순천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남원 거쳐 순천으로 간다. 동순천나들목에서 나가 여수 방향 17번 국도 타고 돌산대교 쪽으로 직진한 뒤 여수시외버스터미널 지나면 곧 왼쪽에 주유소와 연등동소방서가 보인다. 소방서 뒷골목에 차를 댈 수 있다.

Θ 먹을 곳 | 중앙동 삼학집(061-662-0261) 서대회무침(1만2000원)·갈치구이(1만2000원), 교동 구백식당(061-662-0900) 서대회무침(사진·1만원, 공깃밥 별도)·금풍생이구이(1만원), 봉산동 게장거리의 황소식당(061-642-8007) 돌게장백반(7000원), 등가게장(061-643-0332) 돌게장백반(7000원), 당머리 선창가횟집(061-642-0811) 참장어(하모) 샤브샤브(3인분) 6만원, 회 3인분 5만원, 중앙동 함남면옥(061-662-2581) 비빔냉면. 여수연안 경호도(경도)는 참장어 어업의 본거지다. 대부분 횟집에서 참장어 요리를 낸다.

Θ 묵을 곳 | 여수시청 주변, 봉산동 일대에 모텔이 모여 있다.

Θ 여행문의 | 여수시청 문화관광과 (061)690-2036.

 

 

 

20110624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