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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홍주성 돌고돌아 천년의 시간여행

by 오직~ 2011. 10. 10.

홍성 홍주성과 읍내골목
충남 홍성군 군청~홍성천변~전통시장…옛 성곽 따라 걷는 8.5km

 

 

홍성의 진산인 백월산 동쪽, 삽교천 상류 홍성천과 월계천이 감싸고 도는 자리에 홍주성이 있다. 홍주목 관아 건물과 성곽 문루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파괴됐다. 옛 모습이 남은 성곽이 반쯤 살아 있어 도시의 중심을 잡아준다. 홍성군청을 출발해 성곽 안팎과 홍성천변의 유적들, 시내 골목을 시계방향으로 걸어 둘러본 뒤 군청으로 돌아온다.

 

홍성은 일제강점기 홍주군과 결성군을 통합하며 붙인 이름이다. 홍성군청 건물 뒤에 바짝 붙어 동헌(목사 집무실)인 안회당이 있다. 주변 건물 위세에 눌린 모습이지만, 22칸의 아름다운 건물이 기품을 잃지 않고 앉아 있다. 문화유산해설사 한건택씨는 “일제가 안회당으로 드는 내삼문을 헐고 그 자리에 청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홍성은 18~19세기 천주교 박해로 수백명이 순교한 성지이기도 하다. 안회당을 비롯한 홍주성 안팎이 모두 순교의 현장이다.

 

안회당 뒤쪽엔 널찍한 잔디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 공원을 돋보이게 하는 게 아담한 연못가의 정자 여하정과 연못에 드리운 거대한 왕버드나무다. 여하정은 관리들이 정사를 돌보다 쉬던 곳이라고 한다. 홍주성역사관 쪽으로 길게 이어진 흙둔덕이 보인다. 석성 축성 이전의 옛 토성의 흔적이다. 홍주성역사관에 들르면 주변에서 발굴된 유물, 최영·성삼문·한용운·김좌진 등 홍성 출신 위인들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다.

 

 

 

 

미륵사 터 석재로 성돌 쌓은 듯…‘대흥’ 각석 글씨 또렷

관아로 드는 외삼문인 홍주아문은 주변의 고목들과 어우러져 자태가 눈부시다. 문 안쪽에선 거대한 느티나무 한쌍이 기다린다. 수령 650년이 넘은 노거수들이다. 남·서쪽 성벽을 따라 돌며 흥미로운 성돌들을 만나게 된다. 한건택씨가 성돌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 새겨진 문손잡이 무늬를 보세요. 명백히 석탑재입니다.” 성벽을 따라 도는 동안 주로 성벽 아래쪽으로,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석탑의 몸돌·기단석과 장대석 등 반듯하게 다듬어진 석재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한씨는 “오관리 당간지주 쪽에 있던 고려 때 절 미륵사(광경사) 터에서 나온 석재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부 석재엔 새겨진 글씨도 보인다. 가장 뚜렷한 것이 서쪽 최영 장군 흉상 뒤 성벽 하단의 ‘대흥’(大興) 각석이다. ‘대흥(현재 예산군 대흥면) 사람들이 쌓았다’는 표시다.

 

남문 터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가, 홍주성 수성기적비와 선정비 무리, 병오년 항일의병 기념비, 일제 신사 터를 만난다. 항일의병 기념비 자리엔 일제 때 전사한 일본군을 애도해 이완용이 세운 비가 있었다고 한다. 광복 뒤 이를 무너뜨려 땅에 묻고 그곳에 항일의병 기념비를 세웠다. 홍성 출신 시인인 손곡 이달의 시비를 보고, 성내를 관통했던 수로의 수문 터를 거쳐 성의 서문 터를 지난다. 이제 성벽은 안 보이고, ‘소주 한병 고기포차’와 북서리방앗간 사이, 북문 터로 향한 골목 주택 담벽 등에서만 성벽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엔리치타워아파트 앞에 홍성 동학농민운동 기념비와 목빙고가 있다. 아파트 자리의 옛 이름이 빙고치인데, 조선시대 빙고가 있던 고개다. 목빙고(나무로 만든 얼음 저장고)는 석빙고의 원형으로, 이 목빙고는 17세기 전반 진상품 보관을 위해 만든 것이다. 2005년 아파트 공사를 하다 발굴됐으나, 원형을 보전하지 못하고 옮겨 복원했다.


감나무 울타리가 환한 변두리 주택가 골목과 황금빛 들길을 걸어 홍성여중 교문 옆의 고려시대 삼층석탑을 보러 간다. 목백일홍이 붉은 꽃들을 무수히 피워 올리고 선 그늘에 아담한 ‘광경사지 삼층석탑’이 서 있다. 본디 5층석탑이었으나 3층만 남았다. 정문 안 빗돌에 쓰여진 ‘사제동행’의 뜻을 새겨보며 학교를 내려와 홍주향교를 향해 언덕 골목길을 오른다. 홍살문 안 작은 비각 안에는 동학군에 희생된 일곱 유생을 기리는 비가 있다. 홍주향교는 1408년 처음 세워져 홍성의 유생들을 가르치던 교육기관. 규모는 작으나 제사 뒤 축문을 태우는 망료대, 손 씻는 관수대 등 석물들이 눈길을 끈다.

 

명문 홍성고등학교 안에 일제강점기 건물이 하나 있다. 1943년 세워진 강당(등록문화재)이다. 학교를 나와 걷고 또 걸어 홍주의사총으로 들어선다. 의사총은 1905년 을사강제조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분연히 들고일어나 싸우다 순국한 홍주 의병들을 모신 곳이다.

 

의사교 건너 홍성전통시장(1·6일장) 골목을 향해 걷는다. 시장 들머리, 얼큰한 칼국수(6000원)를 내는 ‘구광장분식’ 앞에 볼거리가 있다.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제를 올리는 대교리 석불입상이다. 서툰 솜씨의 돋을새김과 선새김으로 다듬은, 서민적인 얼굴 표정이 인상적이다. 시장 구석엔 60~70년대 풍경이 남아 있다. 낡은 목조 장옥시설과 55년간 줄기차게 풀무질을 해온 대장간, 옛 부보상 모임의 맥을 이어가는 상무사도 있다. 홍성대장간(16) 모무회(65)씨가 말했다. “돈을 벌간디? 다 노인들인디 워치게 제값을 받는디야. 그래두 재미 하나는 있네그랴. 재미 없이 이 일을 워치게 하간?”

 

 

* 홍주성 성벽에선 석탑의 기단석, 몸돌 등 절터에서 나온 여러 석재들을 확인할 수 있다.

 

만해 선생 반기는 명동거리엔 젊은 남녀 떼지어 흐르네

김좌진 장군 동상이 서 있는 장군상 오거리 거쳐, 일곱번이나 1등 당첨 복권을 팔았다는 로또판매점 지나 다시 시장골목으로 든다. 대승상회 철물점 골목의 낡은 장옥시설이 이채롭다. 공사중인 대규모 상가건물이 완성되면, 뚱땡이집·홍성집·안성집 등 10여곳의 국밥집도 생선가게도 한복집도 상가로 입주해, 정감있는 장터 분위기는 많이 사라질 전망이다. 47년 됐다는 보신탕집 홍흥집 지나 홍성천변 벽에 그려진 벽화(17)를 보며 걷는다. 홍성의 역사·문화를 이야기 식으로 풀어 그린 벽화다. 임시 철다리를 건너면 고려시대 당간지주(18)가 기다린다. 광경사(미륵사) 터에 남은 멋진 당간지주다.

 

이제 번화가로 발길을 옮긴다. 홍성의 명동거리다. ‘만해 한용운 선생 상’(19)이 큰 손 들어 반겨주는 명동거리엔 젊은 남녀들이 떼 지어 흐른다. 인파가 몰린 골목 한 귀퉁이를 들여다보니, 호떡집이다. 송하균(61)·이종일(56)씨 부부가 운영하는 명동의 명물 호떡 노점이다. 27년간 이 자리에서 손수레로 야채호떡·꿀호떡을 팔아왔다. 길게 줄 선 분들 면면을 보니 초등학생부터 칠순 할머니까지 남녀노소가 고루 섞였다. 꿀 500원, 야채 600원. 오래 기다려, 입에 착 붙는 꿀호떡 한입 베어 물고, 50년 됐다는 중국식당 동해루 지나 조양문을 만나러 간다.

 

* 주민들이 신성시하며 해마다 제를 올리는 대교리 석불입상

 

 

조양문(20)은 홍주성의 동문으로,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은 문루다. 60년대 말까지 차도 손수레도 사람도 조양문을 통과해 오갔다고 한다. 먹자골목 거쳐 돌아가면 일제강점기 가옥(21)이 보인다. 나무 우거진 담장 안을 넘겨다보니 탑재 등 갖가지 석재들이 깔려 있다. 이 집 주변과, 느티나무 고목 늘어선 예비군 중대 마당 일대가 옛 객사 건물이 있던 자리로 알려진다.

 

홍성군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70년대까지 번성했다는 이른바 ‘작부집 골목’을 지난다. 노랫가락 사이로 짙은 분 냄새가 번져나올 듯한 비좁은 골목이다. 골목 나와 홍주아문 바라보며 쌍왕버드나무 앞에 이른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항일 독립투사들을 붙잡아 두 그루 나무에 묶고 매달며 고문했다고 한다. 마음 가다듬고 나무 밑으로 들어서자, 맥문동 보랏빛 꽃들이 무수히 피어 그늘이 한결 서늘했다. 8.5㎞를 걸었다.

 

워킹 쪽지
홍성 간 김에 한우 맛도 보고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에서 나가 29번 국도 타고 홍성읍내로 간다. 홍주성 안에 주차장이 있다.

먹을 곳 | 홍성읍의 어울림(041-633-0808) 홍성한우고기, 화교가 대를 이어 하는 동해루(041-632-2172) 중국음식, 보신탕집 홍흥집(041-633-8488), 삼계탕·보신탕집 태평식당(041-633-1960), 구광장분식(041-634-9494) 얼큰칼국수.

묵을 곳 | 홍성읍내에 홍성온천모텔 등 모텔이 여러 곳 있다. 읍내에서 10분 거리의 용봉산 자락엔 용봉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숲속의 집 4인실 평일 3만5000원, 주말 5만원.

여행문의 | 홍성군청 문화관광과 (041)630-1362, 홍주성역사관 (041)630-9231.

 

 

20111006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