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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의성 남대천과 옛 풍물

by 오직~ 2011. 4. 19.

경북 의성, 구봉산 끼고 남대천 거쳐 읍내 골목길 8km

 

“의성읍 서쪽을 보하는 비보산이 구봉산이라. 아홉번 ‘승기’가 있다꼬, 육상선수·씨름선수 벨벨 운동선수들이 다 와가 뛰고 합숙훈련하는 산인기라.”(의성 향토사연구가 김종우씨·71)

경북 의성읍. 남대천 물길 따라 남북으로 길게 구봉산이 뻗어 있다. 아담한 언덕 같은 봉우리 아홉개가 이어진다. 구봉산 북쪽 끝에 앉은 누각이 문소루다. 문소(聞韶)란 의성의 신라 때 이름이다. 이전엔 부족국가 조문국이 있었다. 고려 태조 12년, 후백제 견훤의 공격을 막다 전사한 홍술 장군의 충절을 기려 지명을 ‘의성’(의로운 성)으로 바꿨다고 한다. 볼거리 많고 이야깃거리 푸짐한 의성읍내 골목길을 걷는다. 문소루에서 출발해, 남대천과 아사천을 거치며 읍내 거리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걷는다.

벚나무길을 잠시 걸어오르면 전망 좋은 터에 자리잡은 문소루에 이른다. 문소루는 본디 옛 현청(현 경찰서 옆) 자리에 있던 관아 문루였다. 한국전쟁 때 불타 지금의 자리에 복원(1983년)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안동 영호루와 함께 ‘영남 4대 누’로 일컬어지던 누각이다. 포은 정몽주도, 학봉 김성일도 지역을 오갈 때면 의성에 들러, 문소루에 올라 자주 읊조렸다고 한다. 이들이 읊은 시를 새긴 편액(재현)이 누각에 걸려 있다. 정몽주의 편액은, 그가 쇠락해가는 나라(고려)를 생각하며 읊은 시를 새긴 것이다. 누에 오르면 남대천 물줄기를 따라 발달한 의성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육상·씨름 선수가 아니더라도, 문소루 주변과 구봉산 능선길을 따라 걷고 뛰는 주민들이 줄을 잇는다.

 

» 도서동 회화나무 부근에 있는 한 보살집.

영남 4대누각 문소루, 나라 걱정 어려 있고

 

누각 부근에 의성 현령들의 행적을 기린 선정비·거사비 13기를 모아놓았다. 김종우씨가 한 빗돌(현령 김후진화 휼민선정 거사비)을 가리켰다. “이 거사비가 서포 김만중의 아들 김진화의 비요. 현령으로 재직할 당시 부친의 문집 <서포집>을 여기서 간행했지요.”

 

산을 내려가 의성교 건너 남대천 물길을 따라 걷는다. 막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구봉산 봉우리들이 굽이치며 매혹적인 곡선미를 드러낸다. 고물상 지나 연탄공장을 만난다. 의성에 있던 연탄공장 3곳 중 살아남은 1곳이다. 물오른 수양버들 우거진 폐공장 앞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말했다. “다 부도나 가 문 닫아뿔고 이기 한나만 죽다 말고 살아난 기지.” 서민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덕에 겨우 살아난 연탄공장 뒤쪽엔 장애인연합회 건물이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겨우 버티고 서 있다.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장터(구장터)였다는 성문마을 거쳐, 낡은 상점 건물(옛 8·15기름방) 보고 굴다리 지나 시내로 들어간다. “안 되는 구멍가게를 10년째 붙들고 있다”는 ‘사거리 가게’에 들러 캔커피를 사들고, 지적공사 지나서 옛 건물 하나를 만났다. 일제강점기 재판소(법원) 건물로, 지금은 향토민속사료관으로 쓰인다. 남대천 지류인 아사천 물길을 건넌다. 조선시대 의성 관아 건물들은 이 하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배치돼 있었다고 한다. 아사천 물은 구봉산 밑에서 남대천과 만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무너지다 만 듯한 낡은 한옥 옆쪽에서 600년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기다린다. 둘레 15m가 넘는 밑동 대부분이 수목 보완재로 메워진 할아버지 나무다. 600번째 맞이한 봄이 밀어올린 풀꽃들이 발치에 수북하다. 마늘시장(6월 말~8월 말)으로 간다. 의성은 이름난 마늘 고장. 지금도 일부 상인들이 냉동마늘을 꺼내 손질하고 있다. 의성명품마늘영농조합법인 대표 김욱진씨가 말했다. “생마늘만 해갖곤 우찌 삽니까. 건조마늘·분말마늘도 상품화했고 약초를 곁들인 마늘비누도 내놨지예.”

의성전통시장 골목으로 들어간다. 2·7일에 열리는 재래시장이다. 금성방앗간 앞 골목길엔 소금포대·쌀포대로 감싸인 낡은 의자 9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장날 참기름 짜고, 고춧가루 빻고, 미숫가루 장만하러 오는 어르신들이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소다. 장날이면 기름집·뻥튀기집도 붐비고, 닭발구이집도 북적인다. 아무리 붐벼도 벌이가 예전 같지는 않은 건 재래시장의 공통점이다. “인자 먹을기 많아노니 강냉일 누가 찾나?”(뻥튀기집 권오중씨·71) 시장 명물이었던 닭발구이집도 몇년 새 8곳에서 3곳으로 줄었다. 지붕을 해 덮었어도, 기름집·대장간·문짝집·솜트는집 등 시장 뒷골목 분위기는 수십년 전 옛 장터를 닮았다. 장날이면 남선옥에서, 32년째 대를 이어 장작불에 끓여내는 소머리곰탕을 맛볼 수 있다.

 

의성향교를 향해 걷는다. 낡아가고 무너져가는 옛 한옥들이 눈에 띈다. 향교로 들기 전에 성냥공장으로 들어간다. ‘성냥공장’ 하면 ‘인천 성냥공장’이 떠오르지만, 의성 성광성냥 공장은 “전국에 남은 유일한 ‘풀 세트’ 성냥공장”이다. “뭐냐카모 아름드리 뽀뿌라 나무를 잘라 성냥까치를 맨들고, 유황 묻히고, 성냥곽까지 인쇄해가 포장까지 다 해뿌는 공장은 여뿐이라요.”(성광성냥 대표 손진국씨·75) 손씨는 1954년 창업 당시 18살에 사원으로 들어와 일을 배운 뒤, 30년 전 대표 자리에 오른 외길 ‘성냥공장 아저씨’다. 거대한 기계가 천천히 돌아가며 보여주는, 꼿꼿한 자세로 행진하는 붉은 투구·흰 투구 병정들의 행렬 모습이 이채롭다. 토·일은 쉼.

 

» 구봉산 끝자락의 문소루.

70년 된 양조장, 생막걸리 맛 진하더라

의성향교에선 대성전과 명륜당, 명륜당으로 드는 문인 광풍루, 동재·서재 등 조선 중기 양식의 건물을 볼 수 있다. 향교 뒤 동산(東山) 자락에선 벌떼 소리가 요란하다. 향교 주변 토박이 김수호(59·양봉업)씨는 “향교 대성전 아래 산수유나무 옆으로 전사청 건물이 있었다”며 “멀쩡한 건물을 철거해버려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100년 역사를 지녔다는 의성교회 밑엔 해주 오씨 입향시조를 기리는 금운정이 있다. 옛 약전골목에 남은, 40년 된 안동이발관 옆의 일제 때 2층 가옥을 살펴보고, 아사천 옆 의성탁주 합동제조장으로 간다. 70년 된 양조장이다. 지금은 “주류의 지역제한이 풀리 가 사업이 옳게 안 되이께네” 근근이 버티는 수준이다. “함 드시소. 안주는 소금뿌이라예. 다 이래 묵으요.” 대표 장지환씨가 따라주는 진한 ‘구봉산 생막걸리’를 한잔 맛보고 일어나, 의성노인회 건물 뒤 아사천 물가에 세워진 ‘양태훈 선생 공덕비’를 만난다. 고 양태훈 선생은 앞서 들렀던 성광성냥을 창업한 분. 수시로 발전기금을 내놓고 노인회관도 세워 지역 발전에 힘썼다고 한다.

 

봄 햇살 따사로운 밭둑길 골목길을 지나 충효사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당시 상황을 기록한 <정만록>(보물 880호)을 지은 이탁영이 뒷날 모친을 봉양하며 살던 곳이다. ‘13대손 종해 10세 서’라 쓰인 ‘충효당’ 현판이 눈길을 끈다. 두충나무숲 옆으로 들어 태평양지아파트 앞으로 내려간다. 규모 있는 옛 한옥 ‘의성 김씨 종친회관’을 들여다보고 의성고교·의성교회 지나 대도빌라 옆에서 2층짜리 일제가옥을 만난다. 아래층은 소주방이 됐지만 2층 목재 가옥은 옛날 모습 그대로다.

 

의성군청 앞을 지나면 100여년 역사의 의성초등학교다. 교문과 안내소 사이 비좁은 공간에 빗돌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공양탑’이라 쓰인 이 빗돌은 “의성초교 설립(1906년) 당시 비용을 십시일반으로 모은 것을 기리는 탑”이다. 김종우씨는 공양탑이 설명판 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축협 옆엔 일제강점기 건물인 엽연초조합 건물이 있고, 의성역 옆 명품모텔 앞엔 의성역 역무원들이 머물던 일제강점기 사택이 남아 있다. 두 건물 모두 안팎이 옛 모습 그대로다. 사택엔 50~60년대 역장을 지낸 분의 부인(정성순씨·84)이 살고 있다.

 

시외버스터미널 앞을 지나 북원사거리 만나 다시 의성교로 향한다. ‘북원’이란 조선시대 관리들이 묵어가던 원이 있던 데서 나온 이름이다. 김종우씨는 “50년대까지도 주유소 부근에 누각 형태의 건물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북원사거리는 본디 삼거리였다. 삼거리 주유소, 삼거리식당 등 삼거리 상호를 단 집들이 많다. 약 8㎞를 걸어 다시 구봉산 끝머리로 돌아왔다.

 

워킹쪽지

성광성냥 견학 가능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대구 쪽으로 내려간다. 북안동나들목에서 나가 5번 국도 따라 의성읍내로 간다. 의성나들목에서 나가 5번 국도 타고 가도 된다.

| 복 전문식당 일산복집 (054)834-4948, 갈치찜·해물찜을 내는 해성식당 (054)832-7080.

⊙ 여행 정보 |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 성광성냥공장에선 방문객들에게 공장시설을 안내하며 성냥 제조과정을 설명해준다.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054)830-6096, 의성문화원 (054)834-5048, 성광성냥공장 (054)834-2440, 문흥 작은도서관(향토사료관·조문국 연구원) 011-820-4010.

 

 

 

 

 

의성=글·사진 이병학 기자

20110414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