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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찾아서

올드보이 _ 박찬욱

by 오직~ 2010. 11. 13.

성장이 멈춰버린 '순수한 영혼'은 악마가 되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생활의 사소한 꼬투리가 너에게 상처가 되고 그 미움이 삶의 힘이 되다..

감독의 상상력과 영화의 스토리 구성에 놀라울 뿐이다!!

충격과 침묵..

 

 

 

...

재앙의 원인은 네 안에 있다_박찬욱의 <올드보이>

 

‘오이디푸스’와 ‘오대수’, 어쩐지 어감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억지로 그렇게 읽다보면 꽤 유사하게 느껴지는 두 이름이다(아님 말구). 주인공 이름이야 어쨌든 간에, <올드보이>가 원작에 오이디푸스 신화를 덧붙임으로써 원작을 넘어선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비극으로 완성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원형적인 몰락의 드라마를 통해 자아 탐구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스핑크스를 물리침으로써 공동체의 명예를 대표하던 위치에서 공동체의 수치로 전락하는 몰락의 드라마. 하지만 그 몰락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내적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가 내 공동체에 이러한 재난을 몰고 왔는가, 하는 질문 속에 진실을 추구하는 오이디푸스. 어미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도, 맹인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도 그런 오이디푸스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만, 진실을 추구하려는 오이디푸스의 의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끝내 발견한 진실은 바로 자기 자신의 죄였다.

 

스핑크스의 질문은 당신은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에 대해 알았기에 인간의 왕이 될 수 있었지만, 모든 인간을 다 안다고 자신했던 그가 정작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몰락의 대가로 돌려받은 것은 바로 자신의 ‘죄-진실’이었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원하는 것 역시 단지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사실이 아니라 나를 감금한 이유(진실)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오대수는 타자에게서 진실을 찾았지만, 그 진실은 바로 자신에게 있었다.

 

근친상간적 설정이 오이디푸스 신화와 <올드보이>의 표면적 유사성이긴 하지만, 재앙의 원인이 타자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 있음을 발견하는 내러티브적 궤적은 이 두 이야기가 만나는 가장 중요한 접점일 것이다.

 

특히 자신의 삶을 몰락시킬 진실 앞에서 이 두 사람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벌은 너무도 닮아 있다. 오이디푸스가 모든 것을 안다(see)는 오만함에 빠져들도록 했던 눈을 찌름으로써 자신의 ‘죄-진실’에 책임을 졌던 것처럼, 오대수 역시 밝혀진 죄의 원인인 혀를 절단함으로써 스스로 단죄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신탁에 의해서 이뤄진 것처럼, 오대수가 사라진 공중전화 부스 앞을 포착하는 극부감의 카메라 역시 비 내리는 거리 위에 새겨진 진입금지 표지를 ‘신의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들어서면 안 되는 길에 들어선 자들에게 부여된 가혹한 운명, 그것이 바로 오대수의 삶인 것이다.

안시환 씨네21

 

 

 

 

 

감독 : 박찬욱 2003作

배우 :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윤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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