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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원주 강원감영과 봉산천

by 오직~ 2010. 6. 3.

 

강원감영에서 출발해 원동성당 거쳐 풍물시장까지 6㎞

 

 

» 원주 원동성당. 7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조선초(13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강원(강릉·원주)도를 만들고, 원주에 감영(도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관청)을 설치했다. 1895년까지 500년간 512명의 도 관찰사가 이곳을 거쳐갔다. 감영에서 걷기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원주 옛 도심을 한 바퀴 돈다.
 

강원감영 뒷길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감영 뒷문으로 들어간다. 먼저 600여년 풍상을 거친 거대한 느티나무①가 맞아준다. 감영터의 상징물이다. 여러 전란을 거치며 불타고 무너지고 또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을 지켜보느라, 가지마다 울퉁불퉁 맺힌 것이 많아 보인다. 옛날, 아들이 없어 한 맺힌 아낙네들이 이 나무 둘레를 돌며, 나무의 특정 부위를 바라보며 득남을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둘로 갈라진 나무줄기 한쪽에 큼직하게 돌출된 부분이 볼수록 사납다. 남성의 그것을 닮았다.

 

감영엔 본디 40여채의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2층 누문인 포정문②과 중삼문·내삼문,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 내아 등이 복원돼 있다. 해설사가 상주한다. 관찰사 선정비 무리 앞에서, 제천에서 왔다는 대학생 둘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에, 이 선정비는 왜 파손됐겠습니까? 선정을 펴지 않던 관찰사가 억지로 비를 세우게 했지만, 그가 퇴임하자마자 주민들이 때려부순 것 아니겠습니까?”

 

정문을 나서면 원일로다. 어르신들은 원일로보다 ‘에이(A)도로’라 부르는 게 익숙하다. 차가 다니지 않는 ‘문화의 거리’ 중앙로가 비(B)도로, 봉산천(원주천) 쪽 평원로는 시(C)도로다. 해설사 정재구(71)씨는 “원래 논밭이었는데, 육이오 뒤에 철판을 깔아 군사 작전도로를 냈던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시인묵객들이 자주 올랐다는 추월대

 

 

» 봉산동 당간지주.

포정문을 앞에서 보고 원주문화원③ 쪽으로 걷는다. 남산 자락이다. 문화원 앞 명일수퍼와 칠성전 사이 골목으로 오르면 곧 추월대④에 이른다. 치악산에서 떠오르는 달이 아름다워, 시인 묵객들이 자주 올라 잔질하며 읊조렸다는 곳이다.

 

‘배수지길’ 골목을 내려오면 원동성당⑤이 기다린다.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된 건물이다. 천주교 원주교구 주교좌이자, 197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인권운동의 본산이다. 원주교구장을 지낸 인권운동가 고 지학순 주교의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성당은 1954년 재건된 석조건물이다.

 

원일로를 걸어 남부종합시장(치악맨션)을 만난다. 70년대에 지어진 7층짜리 상가·아파트 복합건물인데, 건축 당시엔 원주에서 가장 컸다고 한다. 옛 남문 주변이다. 50년 넘게 대를 이어 보신탕을 내온 진주식당을 지나 남원로로 나선다. 옛 연탄공장 자리(꽃집), 옛 성냥공장 자리(연세병원) 지나 향교⑥ 쪽으로 걷는다. 연세병원 자리가 애초 향교를 지으려던 터였다는 얘기가 있다. 정재구씨가 해설했다. “병원 자리에서 목수들이 향교 건축에 쓸 목재를 다듬는데, 어느 날 쌓여 있던 톱밥·대팻밥이 깨끗이 사라진 거야. 찾아보니 지금의 향교 자리에 그게 쌓여 있는 거라. 톱밥을 헤치니까 봉황새 세 마리가 나와 날아가더래. 그래, 아 여기가 향교 지을 터로구나 했다드만.”

 

향교 대성전엔 국내 18인과 중국 5인의 위패를 모셨다. 문 활짝 열어젖힌 명륜당에선 주부·어르신들이 <맹자> ‘고자(告子)편’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다. 향교 주변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수용소 자리였다. 향교를 나와 세차장 앞 미용실 옆 골목길로 들어가 50여년 두부를 만들어 팔았다는 가정집 두부공장을 지나 남원로로 나서 길을 건넌다.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왼쪽 언덕길을 넘어가면 원일로다. 공사장 일대 산동네 이름이 궁만이(구만이·굼안이)다. 물이 흐르며 우묵한 구멍이 파인 지형을 이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원일로 가로공원의 인열왕후탄생지비⑦를 만난다. 인열왕후는 조선 인조의 왕비(원주목사 한준겸의 딸)다. 본디 인동 원주교(쌍다리) 쪽에 비석과 비각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사라져 이곳에 다시 세웠다.

 

아파트 공사장 옆 골목 안엔 일명 ‘도깨비 비’로 불리는 ‘김후선정지비’⑧가 있다. 본디 골목 오른쪽 담벽 부근(옛 구만이마을 입구)에 있었으나, 임시로 공사장 사무실 옆으로 옮겼다. 이 비석에 이야기가 전한다. 구만이에 살던 정기원이란 이가 병사 직위에 오르기 전에, 장승처럼 생긴 ‘김공’이라는 도깨비가 나타나 ‘정 병사님, 향차하십니까’ 하며 병사로 호칭했는데, 나중에 그가 실제로 병사 직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에 정기원이 도깨비 ‘김공’을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는 얘기다.

 

40여년째 추어탕을 해온 원주복추어탕집에서 점심을 먹고, 남부시장 사거리 거쳐 봉산뫼를 바라보며 개봉교를 건넌다. 여주상회 옆에 봉산동 당간지주(고려 초기)⑨가 있다. 자연석을 받침돌로 써서 지주를 세운 점이 특이하다. 지주 한쪽은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인데, 남은 한쪽도 육이오 때 세 토막으로 부러져 복원한 것이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원주초등학교 쪽으로 걷는다. 원주초교 주변은 조선 후기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1721~1793)이 시집와 살았던 곳이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뒤 학문에 매진해 많은 성리학 논설과 서평·인물평을 남긴 분이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34년산 은행건물  

» 강원감영의 600살 난 느티나무. 거대한 송이버섯을 닮은 돌출부가 눈길을 끈다.

각종 옻칠공예품과 옻 진액 등을 전시·판매하는 원주옻문화센터⑩를 들여다보고 봉산천 쌍다리(원주교)⑪로 간다. 왼쪽에 인도교로 쓰는 작은 다리가 일제강점기에 놓은 것이고 오른쪽 차량전용 다리는 육이오 뒤에 놓은 다리다. 다리 주변은 배말이라 불리는데, 일제강점기엔 인천에서 온 소금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다리 옆 둔치 주차장은 새벽 농산물시장이다. 매일 오전 4~8시 반짝시장이 열린다. 원주교 오거리는 감영으로 드는 동문과 인열왕후탄생지비각이 있던 곳이다.

 

풍물시장은 마침 장날(2, 7일)을 맞았다. 시장 안 골목마다 인파로 넘친다. 시장을 빠져나가 평원로(C도로)를 건넌다. 평원로는 옛날 진골목으로 불렸다. 우마차를 타지 않으면 다닐 수 없었던 진흙탕길이었다. ‘문화의 거리’ 중앙로는 젊은이들이 활보하는 널찍한 보행 공간. 이곳에 일제강점기 자본 수탈의 전초기지였던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건물(현 제일은행)⑫이 있다. 1934년 지은 원주의 첫 은행건물(2층)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금강제화 앞으로 길 건너 감영 옆 우체국⑬ 골목으로 들어간다. 우체국 자리엔 본디 연못이 있었다. 안에 축대를 쌓아 섬을 만들 정도로 널찍한 사각형 못이었다. 1830년 무렵 나온 <관동지>에 실린 강원감영도를 보면 사각형 못 안에 2개의 정자가 나타나 있다. 봉래각·관풍각·환선정 세 정자가 못 안팎에 있었다고 한다. 원주시는 곧 우체국을 옮기고 못과 정자들을 복원할 예정이다.

 

감영으로 돌아와 600살 느티나무 그늘 의자에 앉으니, 짐작이 간다. 이 거목은 옛 못가에 서 있던 수십 그루 나무 중 하나였을 것이다. 소책자 ‘원주의 향토유적’ 표지에 실린 흑백사진(1910년 촬영 추정)에서 감영의 선화당 뒤로, 못을 둘러싸고 우거져 있는 숲을 볼 수 있다. 6㎞쯤 걸었다.

 

 

 

 

워킹 쪽지

모텔 잡고 뽕순이밥 먹을까

◎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남원주에서 나가 19번 국도 따라 시내로 들어가 일산동 강원감영으로 간다. 감영 뒷길에 공영주차장이 있다. 1시간 1100원. 감영 입장료는 없다.

◎ 먹을 곳·묵을 곳 | 원주복추어탕(추어탕) (033)762-7989, 뽕순이밥(뽕잎돌솥밥) (033)747-9666, 진주식당(보신탕) (033)764-5498, 장수칼국수(장칼국수) (033)746-9179. 단계동 쪽에 모텔이 많다.

◎ 여행문의 | 원주시청 문화관광과 (033)737-2832, 원주문화원 (033)764-3794, 강원감영 (033)737- 4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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