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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남원성과 광한루

by 오직~ 2010. 4. 22.

 

남원성과 광한루
광한루에서 용성관터·만복사지 거쳐 고샘골목 구경 7㎞

 

» 고샘골목과 광한루원 서문 사이 거리 모습.

남원 하면 광한루, 광한루 하면 춘향전이다. 이몽룡·성춘향이 드리운 사랑의 그늘 아래 남원성이 희미하다. 정유재란 때 왜적에 맞서 싸우다 몰사한 7000여 주민·관군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일제강점기와 모진 육이오를 겪고, 개발론자들이 싸우면서 건설하는 동안 숱한 유적들이 사라져 갔다. 그래도 구석구석엔 무너지고 깨진 것이나마 선인들이 매만지며 남긴 손때·발때가 반짝인다. 광한루원에서 출발해 객사였던 용성관 자리 거쳐 만복사 터를 보고 다시 누원으로 돌아온다.
 

남원의 젖줄인 요천변이다. 광한루원 주차장(하루 2000원) 옆 관광안내소에서 관광약도와 소책자를 챙겨 광한루원 정문으로 들어선다. 450년간 드리운 팽나무 그늘을 지나 옛 정원을 걷는다. 조선시대 대표적 관아 정원으로 꼽히는 광한루원. 세종 때 유배돼 온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지은 게 시초다.

 

춘향사당①과 선정비·불망비 무리를 보고 광한루②로 오른다. 누각 뒤에 설치된 계단식 현관 시설은 1877년 추씨 대목장이 뒤쪽으로 기우는 광한루를 지탱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 연못과 삼신산, 구름다리·오작교가 액자 그림처럼 내다보이는 2층 내부엔 김종직·정철·백광훈 등 조선시대 명사들의 편액들이 걸려 있다. 애초 200여개를 헤아렸다고 하나, 80여개만 남아 있다. 기생들이 쓴 편액도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선열들 고통 서린 광한루

 

» 남원 만복사 터에 놓인 연꽃무늬 모양의 석등 받침대. 뒤쪽에 보물 오층석탑이 보인다.

광한루 밑에 일제강점기 선열들의 고통이 서려 있다. 1910년부터 18년간 2층 누마루는 재판소, 아래층은 감옥으로 썼다고 한다. 1919년 4월3~4일 울려퍼졌던 남원의 독립만세운동 외침도 이곳에 갇혀 피를 토했으리라. 1층 돌기둥마다 칸막이를 위해 파낸 홈들이 남아 있다.

 

북문을 나서, 조선 말 관리 자제들을 가르치던 학당(관서당) 남성재③를 만난다. 닫힌 민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1875년 지은 정면 4칸의 건물이 나타난다. 기둥마다 교훈적인 내용을 적은 주련이 내걸렸다. 효자각④ 거쳐 쇠락해가는 옛 양씨 부잣집⑤(청월장 오른쪽 골목)과 오씨 부잣집⑥을 들여다보고, 간판 없는 구멍가게에 들러 캔커피를 사 마신다. 50년째 상호도 없이 장사하고 있다는 전순임(79)씨가 말했다. “논이구 밭이구 다 그 양부잣집, 오부잣집 땅이여. 옛날엔.” 부잣집 앞골목도 뒷골목도 낡고 헐리고 무너져, 옛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옛 명지각 여관(현 한식당 종가) 한옥⑦을 보고 남문 터를 향해 걷는다.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본정통’이다. 드문드문 일본식 가옥 흔적들이 남아 있다. 남문네거리 모퉁이의 남문터 표석⑧(석인상)을 보고 옛 남원성 안쪽으로 든다. 남원성은 평지에 정사각형으로 쌓은, 둘레 2.5㎞가량의 석성이었다. 동학혁명,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철로·도로 개설로 4대문과 대부분의 성곽이 사라졌고, 북서쪽 일부 구간만 남아 있다. ‘구소방서’ 건물엔 시립도서관과 소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극단 둥지가 4월 말까지 <똥 밟은 날>을 공연(저녁 8시·월 제외)한다.

 

» 광한루원 연못 물에 삼신산의 새잎 내민 개버드나무들이 잠겨 있다.

우체국 옆 길모퉁이에 대나무 우거진 돌무더기가 보인다. 남원 석돈(石墩)⑨이다. 남원성을 지키는 당산신을 모시는 제단(성황단)이다. 세종 때 남원부사 김희를 모신 유애묘⑩를 보러 간다. 원불교 골목에 선 이정표는 잘못됐다. 남원교육문화회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건물 머릿돌 위쪽의 ‘감사의 글’이 눈길을 끈다. ‘건물주가 다문화가족들을 위해 건물을 내준 데 대한 감사의 글’이다.

 

길 건너 용성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색색으로 예쁘게 단장한 본관 건물 자리가 객사 용성관⑪이 있던 곳이다. 육이오 때 유엔군 폭격으로 전소돼 기단석 일부와 돌계단 두칸만 남았다. 계단의 월대에 새겨진 ‘귀면상’(치우천황상)이 또렷하다. 노상준(76) 전 남원문화원장은 “운동장 밑에 옛 건물 흔적들이 깔려 있는데 일부 발굴조사 뒤 그대로 덮어뒀다”고 전했다. 이순신 장군상과 국민교육헌장탑 사이, 530년 된 느티나무가 운동장 가득 재잘대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학교 정문 왼쪽에서 한데 모아둔 큼직한 옛 석재들을 만날 수 있다.

 

서문네거리를 향해 걷는다.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남아 있던 서문 자리다. 길모퉁이 꽃집 앞에 서문터 표석⑫(석인상)을 세웠다. 공설시장과 함께 남원의 양대 시장을 이루는 용남시장 거쳐 관왕묘⑬로 간다. 흥부농약사 골목이다. 정문은 닫혔고, 왼쪽 담 옆 민가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관운장을 모신 사당으로, 규모가 크고 잘 보전된 몇 안 되는 관왕묘다. 관왕묘 앞 공설시장 부근은 30여년 전까지 미나리꽝이었다고 한다. “관왕묘 미나리, 모래꽝 미나리는 향이 좋아 옛날 진상품 중 하나”였다.

 

묻혀 있던 ‘석인상’ 발굴 온전히 세워

서남쪽을 향해 걷고 또 걸어 축천 물길에 걸린 왕정교 건너 각시머리방 지나면, 널찍한 빈터에 석물 흩어진 만복사 터⑭를 만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에서 주인공 양생이 처녀의 혼을 만나 행랑채 골방에서 ‘운우의 정’을 나눈 그 만복사다. 고려 때 만복사는 탁발 뒤 돌아오는 승려 행렬이 장관을 이뤄 ‘만복사 귀승’이 남원8경 중 하나로 꼽했다. 정유재란 때 불탔다. 해설사 박연임씨가 해설했다. “왜적들은 당시 조선 군사의 사기 저하를 위해, 석불대좌에 있던 5척 크기 불상을 쓰러뜨려 끌고 돌아다녔다고 전해옵니다.” 당간지주·석불대좌·오층석탑·석불입상 등이 보물이다.

 

» 석인상.

지난해 10월 절터에 새 유물이 선보였다. 당간지주 옆 찻길에 간신히 머리만 드러내고 있던 ‘석인상’⑮(사진)을 발굴해 세운 것이다. 높이 370㎝에 이르는 전신 석상인데 고개를 돌려 눈 부릅뜬 채 뒤쪽 하늘을 보고 있다. 마주 보던 또 하나의 석상이 있으나, 몸통은 찻길 속에 묻혀 있고 떨어진 머리 부분은 남원민속관에 전시돼 있다. 만복사 터 옆엔 과거 1차 합격자들이 따로 나와 공부하던 양사재가 있다. 다시 왕정교 건너 번화가 쪽으로 들어선다. 서문시장 네거리 못미처 ‘강정이 기가막혀’ 집 앞에서 우회전해 농협공판장으로 간다. 과일·채소를 수매하는 곳이다. 참외 작은 것 5개가 1만원, 지난해 두배 값이라고 한다. ‘머리를 자른다’ 미용실 지나 공설시장(16)으로 간다. 본디 광한루 정문 쪽에 있던 시장(4, 9일장)을, 40여년 전 광한루원 확장공사 때 옮겨왔다.

 

시장을 통과해 나가자 살구나무·앵두나무 등 파릇파릇한 묘목을 파는 아저씨가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팔리기는 무슨. 묘목은 끝물이여. 인자 꽃이나 팔고 과일도 팔아야제.”

 

길 건너 고샘골목으로 든다. 보살집이 즐비하다. 고샘(17)은 남원시내에 몇 안 남은 오래된 샘이다. 물이 말라 한때 메워졌다가, 최근엔 모터장치를 달아 물이 흐르도록 하고 있다. 이 샘 별칭이 ‘젖 타는 샘’이다. 아이 낳은 여성이 젖이 잘 안 나올 때, 병에 물을 담아 양 젖꼭지에 매달면 젖이 잘 나왔다고 한다. 노상준씨는 “밤에 몰래 젊은 부인들이 나와 물병을 달고 돌아갔다”고 전했다. 고샘골목은 ‘막걸리 타는 골목’이라 할 수 있다. 본디 이름난 막걸리 골목이었다. 막걸리 두 주전자에 소리꾼 작부는 구성진 노랫가락을 뽑아올렸다고 한다. 타일을 붙인 부뚜막이 정겨운 동삼집(18) 등 몇 집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이제 막바지, 다시 광한루원 서문 쪽으로 가는 길이다. 술집 ‘종로 사나이’ 지나면 광한루 담 옆으로 향단·춘향·몽룡 등의 이름이 붙은 상가가 이어진다. 한우와 식칼, 공예품·기념품을 파는 상가다. 칼을 직접 만들어 파는 부흥식칼이 유명하다. 상가 끝부분이 처음 출발했던 관광안내소다. 요천 강둑을 따라 만개한 벚꽃 잎들이 주차장까지 날아와 흩날린다. 약 7㎞를 걸었다.

 

 

 

워킹 쪽지

점심은 추어탕 저녁은 한정식

◎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타고 가다 전주나들목에서 나가 17번 국도 타고 남원으로 간다. 대전에서 대전·통영고속도로 타고 가다 함양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가도 된다.

◎ 남원은 추어탕과 한정식의 고장. 추어탕을 내는 식당이 즐비하다. 새집추어탕이 유명하지만 내는 방식과 맛은 비슷하다. 시청 뒤 첫눈식당(063-625-3555)은 추어탕(6000원)보다도 차림표에 없는 시래기된장국(4000원)이 더 알려진 집. 구수하고 시원해 해장용으로도 많이 찾는다. 광한루 북문 부근의 종가(063-626-9988)는 이름난 한정식집. 옛 여관 명지각의 한옥을 이어받아 차렸다. 1인 2만5000원(4인상부터).

◎ 4월23~26일 제80회 남원 춘향제가 광한루원 일대에서 벌어진다. 전통혼례·신관사또부임행차·춘향국악대전·전통서당강경대회·전국시조경창대회 등 전통문화행사와 숙종시대 역사체험, 미꾸라지 잡기 등 생태체험 행사 등이 진행된다. 남원 시내에서 정유재란 때 희생된 이들을 모신 만인의총, 시내 한복판의 고찰 선원사, 남원향교 등도 둘러볼 만하다. 남원시청 문화관광과 (063)620-6181.

남원=글·사진 이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