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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전주 옛 도심과 한옥마을

by 오직~ 2010. 5. 6.

 

‘기와 바다’ 골목 술익는 내음 알싸

전주 경기전에서 한벽당·객사 거쳐 전동성당까지 도심 한바퀴 8㎞

 

» 전주천 물가 바위언덕에 선 한벽당.

전주는 조선 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이 있던 곳. 전주 이씨 조선왕실의 본향으로, 조선 역대 임금들이 몸과 마음의 뿌리로 여긴 고장이다. 숱한 전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주부성과 감영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경기전과 그 주변 수백채의 옛 한옥 등이 살아남아 전주를 전통문화의 본고장으로 이끌었다. 경기전에서 출발해 한옥마을 골목과 풍남문·객사를 거쳐 다시 경기전 앞 전동성당까지 걷는다.
 

경기전으로 들기 전에 정문 앞에서 멋진 하마비①부터 감상한다. 1614년 세운, 사자(또는 거북)를 닮은 두 마리의 동물 석상이 받치고 있는 아름다운 빗돌이다. 기단석 양쪽에 사각형 홈이 파여 있어, 작은 보호각이 설치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600살 은행나무 발치에 대 이을 5살 아기나무 방긋

 

» 전주향교 동재 문틈으로 전통예절을 배우는 어린이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경기전②은 숲 좋고 볼 것 많고 쉴 자리 많은 도심 속 ‘경사스런 터’다. 어르신들도 젊은 남녀도 거닐고, 또 앉아 쉬며 싱그러운 봄바람을 즐긴다. 경기전 본전에 태조 이성계의 전신 어진(진품은 전주박물관)이 있다. 태종 때 6곳에 모셨던 어진 중 유일하게 남은 초상화다. 이민숙 해설사는 “비단에 그려진 옛 어진(1410년)이 빛바래고 낡아, 1872년 모사해 새로 그린 뒤 옛것은 태워 백자항아리에 담아 경기전 뒤뜰에 묻었다”고 말했다. 본전 배례청 풍판의 두 마리 거북상도 눈길을 끈다.

 

복원한 전주사고 건물, 예종대왕 태실과 태실비③, 전주 이씨 시조 이한 부부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1771년 건립)를 거쳐 경기전 동문을 나가 한옥마을 골목 탐방을 시작한다. 한옥이 700여채에 이른다지만, 원형이 바뀌거나 새로 지어진 집들이 많다. 깔끔하게 단장된 골목마다 카페·공예품점이 즐비하다. 최명희 문학관과 생가를 보고 대리석 실개천을 건너 ‘전주최씨종대’(종대: 대를 이어 살아온 터) 앞 600년 된 은행나무④ 그늘로 간다. 5년 전 나무 밑동에서 어린 새 은행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해 눈길을 끌었던 나무다. 길 건너엔 동학혁명기념관이 있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⑤, 전통술박물관⑥ 거쳐 새단장된 흙담벽 이어지는 골목길을 걷는다. 전주 전통문화의 맥과 향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엿보이는 골목들이다. 황손 이석씨가 머무는 승광재⑦ 등을 들여다보고 큰길로 나선다. 문연 지 30년 됐다는 굴다리슈퍼에서 캔커피를 사들고 주인 할머니 말씀을 들었다. “저 기린로가 철길이었을 때 요 앞에로다가 굴다리가 있었응게, 그래갖고 인자 여가 굴다리슈퍼제.”

 
 
 

» 전주향교 명륜당 앞에서 어린이들이 400살 할아버지 은행나무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목대⑧로 오른다. 고려 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으로 가는 길에 들러 종친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던 곳이다. ‘태조고황제주필유지비’(고종황제 친필·1900년)가 있다. 오목대 뒤 육교를 건너가면 이성계의 4대조 목조(이안사)의 유허지 이목대⑨가 있다. 산줄기가 오목대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철길을 내며 끊었다. 탱자나무꽃 환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 양사재⑩로 간다. 서당공부를 마친 유생이 본격적으로 진사시험 등을 준비하던 곳이다.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가 머물기도 했다(왼쪽 끝방). 공원 밑 담벽을 따라 전주향교 쪽으로 걷는다. 동헌(이전 복원해 놓은 건물) 왼쪽 길로 들어가 골목길을 오르면 남안재⑪ 팻말이 나온다. 한말 유학자 간재 전우의 제자인 고재 이병은이 향교를 지키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정자 앞집이다. 언덕 위에 고재 사당이 있다.

 

편벽고루하다고 여겼던 향교. 전주향교⑫ 대성전 뒤의 명륜당과 300~400년 된 은행나무들이 아름다워, 생각을 고치게 해준다. 명륜당은 세칸 건물 좌우에 눈썹처마를 덧대어 실내공간을 넓힌 모습이다. 동재 댓돌에 앙증맞은 색색의 운동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녹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져요! 감기에 안 걸려요!” 방문 틈으로 낭랑한 어린이들의 합창이 흘러나와, 400년째 봄을 맞은 은행나무 그늘을 싱그럽게 해준다.

 

 

효자 군수의 부친, 아들 위해 남긴 시 한수 뭉클

 

» 1908년부터 본당은 7년, 전체 완공은 23년이 걸렸다는 전주 전동성당.

향교 정문 밖 왼쪽 담 앞엔 아주 오래된 효자비⑬가 있다. 비각 안에 1398년 세워진 ‘효자군수 박진지려’ 빗돌이 있다. 박진은 정몽주의 외손자다. 영암군수 때 부친이 위독하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병수발을 들었다. 그 부친도 훌륭한 분이다. 병이 깊어지자 아들에게 시를 남겼다. “나이 80에 평상에 누워 있으니, 60살 늙은 아들이 약을 먼저 맛보네. 죽고 사는 것은 피하기 어려우니, 네 어미 무덤 가까이 내 무덤이나 준비하거라.”

 

맑고 푸른 전주천 둑길을 걸어 오모가리탕을 내는 식당들 지나 컴컴한 굴다리 밑을 걷는다. 시멘트다리 옆 바위에 겨우 버텨 선 한벽당⑭이 보인다. 반토막 경관이지만, 물길 상류 쪽 전망이 빼어나다. 옆의 요월대는 일제 때 지은 정자다. 다시 전주천 둑길을 걷는다. 향교 들머리 홍살문 옆엔 키 큰 하마비가 서 있다. 고리타분하고도 정겨운 좁은 골목을 통과해, 40년 된 고리타분한 간판을 달고 있는 현대수퍼를 만난다. “그라제, 오래되았제. 전화번호 국번이 홀수인 간판이 전주서 이거 하나랴. 뜯도 못허게 혀.”(주인 소순구씨·73) 옛날 이발소 분위기가 물씬한 청수이용원, 50~80년대 생활용품·학용품·장난감·잡동사니들을 가득 전시한 추억의 박물관⑮ 거쳐, 50년 된 중국집 교동집을 지난다.

 

이 거리에 볼만한 건물이 있다. 전통 한옥을 기본으로 양옥·왜식가옥 형식이 덧붙여진 학인당(16)이다. 고종 때 인물인 인재 백낙중이 부친을 위해 지은 집이다. 본채는 2층 다락방과 3층 다락방까지 있는 독특한 구조다. 돌계단을 통해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게 한 우물도 특이하다. 백범 김구 선생이 묵어간 집이다.

 

팔달로 건너 풍남문 쪽으로 걷는다. 문 못 미쳐 왼쪽 남부시장으로 들어선다. 피순대식당·콩나물국밥집이 즐비하다. 시장을 나와 풍남문(17) 옆모습을 보며 성 안길로 든다. 풍남문 안쪽 현판엔 ‘호남제일성’이라 적혀 있다. 60년째 모자를 파는 전주모자점을 보고 전주감영 터를 향해 걷는다. 옛 전북도청 자리다. 현관을 통해 안으로 들면 주차장이다. 경비 아저씨가 말했다. “암것두 읍서. 저 나무밖에.” 170여년 된, 감영의 정청인 선화당 마당에 있던 회화나무(18)다. 선화당은 51년 경찰 무기고 폭발 화재로 소실됐다. 회화나무만 남아 시멘트건물에 둘러싸여 신음중이다.

 

젊은이들 넘치는 도심 한복판의 객사(19)로 간다. 좌우 익랑을 거느린 웅장한 건물 마루에 청소년 데이트족들이 빼곡하다. 그 위로 ‘풍패지관’이라 쓰인 대형 현판이 걸렸다. 사대주의 산물이다. ‘풍패’란 한나라 태조 유방의 고향이다. 유방이 한나라를 일으켰듯이, 이성계가 조선을 일으킨 곳이란 뜻을 담고 있다. 현판을 쓴 이도 명나라 재상을 지낸 주지번이다. 풍남문이란 ‘풍패’의 남쪽 문을 가리킨다. 서문도 패서문이었다. 객사 옆 골목이 객사길이다. 이름은 고풍스럽지만, 젊음이 물결 치는 유행의 거리다. 패션점·카페·휴대폰점·패스트푸드점·노점들이 즐비한 거리를 20대 전후 봄나무들이 음악에 휘감겨 쓸고 다닌다. 기업은행 자리에 옛 동헌이 있었다. 전주 도로원표가 이곳에 있다.

 

 

 

처녀 여러분, 총각 귀신 붙은 참죽나무 조심

 

전북은행 쪽으로 길 건너 헌책방 거리를 걷는다. 왱이집·풍전 등 알려진 콩나물국밥집이 이곳에 있다. 경기전 북쪽 담길로 간다. 담 옆에서 250년 된 거대한 참죽나무(20)를 만난다. 여기 총각 귀신이 붙어 있어, 처녀들이 밤엔 이 길을 피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전동성당(21) 본당은 1908년부터 7년 공사 끝에 지었다는 건물이다. 주춧돌 등은 전주부성에서 나온 성돌을 썼다. 애초 성당은 이태조 유허지인 오목대 자리에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전라감사가 반대 상소를 올려 무산됐다. 이 전라감사가 뒤에 일제 앞잡이가 된 이완용이다. 옛 도심 한바퀴 8㎞를 걸었다.

 

전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워킹 쪽지

한옥 방 잡고 막걸리 골목으로

 

◎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을 나가 1·21번 국도 타고 전주시내로 들어간 뒤 경기전 팻말 보고 간다. 경기전 주변에 공영주차장들이 있으나 붐빈다. 경기전 뒷길 등 길가에 차를 댈 수 있다.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에서 한옥마을 지도와 둘레길 코스 지도를 얻을 수 있다. 지도에 공용화장실 위치가 표시돼 있다.

◎ 경기전과 걷기 코스 주변의 먹을 만한 식당들 | 가족회관(063-284-2884), 한국집(063-284-2224) 전주비빔밥 1만원. 왱이집(063-287-6979), 풍전(063-231-0730) 콩나물국밥 5000원. 남부시장 안 콩나물국밥집 현대옥은 전화가 없고, 6~14시까지 영업한다. 어르신들이 개업한 한옥마을 주막 천년누리봄(063-288-8813) 술상 한 상(막걸리 1주전자)에 1만5000원부터. 삼천동 등 이름난 막걸리 골목도 찾아볼 만하다. 동문 쪽에 한울집·영산포 등 허름한 막걸리집이 있고, 영산포 옆 2층 새벽강에도 술꾼들이 모여든다. 갑오징어·황태구이 등을 안주로 병맥주를 파는 전일슈퍼·신신슈퍼·경원슈퍼 등 ‘가맥집’(가게 맥줏집 또는 길거리 맥줏집)도 유명하다.

◎ 한옥마을의 숙박체험시설이나 골목 안의 민박(게스트룸 등)은 1박에 대개 6만~10만원 선이다. 한옥생활체험관 (063)287-6300. 한옥마을 안내소 (063)282-1330, 경기전 안내소 (063)287-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