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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울산 중구 울산읍성·학성·병영성

by 오직~ 2010. 6. 17.

 

‘고복수 노래비’부터 울산읍성 성곽터·외솔 기념관 거쳐 산전샘까지 9㎞

 

울산시는 현대화된 지 오래다. 구석구석 공단이 들어서고, 개발되고 재개발돼 선인들 자취는 많이 흔적을 감췄다. 고색창연한 모습은 드물지만 태화강 북부 중구 옛 도심 속에 둘러볼 만한 것들이 흩어져 있다. 옛 울산도호부(학성도호부) 동헌 앞에서 시작해 임진왜란 때 격전지 학성공원 거쳐 병영성 밑 산전샘까지 걷는다.
 

동헌 앞에서 ‘고복수 노래비’①부터 만난다. ‘타향살이’(1933년)의 가수 고복수(1912~1972)는 울산 중구 병영동 출신이다. 노래를 흥얼거려 보니 가슴이 쩌릿해진다. 일제하 나라 잃고 고향 떠나 사는 서민들의 설움이 담겼다. ‘학성도호부아문’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선다. 동헌② 건물은 보수공사 중이다. ‘학성’은 울산의 고려적 별칭이다. 동헌은 옛 울산읍성(둘레 1.7㎞)의 중심 건물로, 조선시대 수령이 공무를 보던 곳. 동헌 주위를 한바퀴 돌며 효자 송도 정려비③, 선정비④ 무리를 살펴본다. 31개나 되는 선정비 무리가 볼만하다. 비의 머릿돌에 새겨진 용무늬·꽃무늬·물결무늬가 다채롭고도 아름답다.

 

용무늬·꽃무늬·구름무늬…선정비 머릿돌 각양각색

고복수 노래비 뒤 북정공원으로 간다. 아전들의 집무실인 작청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들어섰던 경찰서를 옮기고 공원으로 꾸몄다. 공원은 동헌과 함께 어르신들이 장기 두고 막걸리잔도 기울이는 쉼터다. 한쪽에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 동상⑤이 있다. 길 건너 울산초등학교는 객사인 학성관이 있던 곳이다. 옛 흔적이라곤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뿐이다. 객사로 드는 2층 누문 이휴정이 있던 학교 정문 계단을 내려와 남문길로 간다.

 

뒤뜰 자그마한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 ‘쿨앤핫’⑥(옛 마로니에커피공원)에 들러 돌의자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신다. 500년 된 회나무 그늘이 짙다. 원두커피 4천원. 1970~80년대까지 울산에서 가장 번화했다는 시계탑 네거리 지나 ‘젊음의 거리’를 걸어 본다. 상권이 강남 삼산동으로 빠져나가면서 쇠퇴하다가, 최근 활기를 되찾고 있는 곳이다. 중앙시장 곰장어 골목 거쳐, 남녀 차별을 원칙으로 한다는 할매칼국수집으로 간다. 문이 닫혀 있어 아쉽다. 80대 할머니가 40여년째 칼국수를 끓여 오는데, 남녀가 줄을 서면 여자는 쏙 빼고 남자들부터 “퍼뜩 묵고 가 돈 벌그라” 하며 칼국수를 듬뿍 퍼준다고 한다.

 

» 울산 동헌 뒤뜰에 모아놓은 선정비 무리.

학성로 건너 칠성슈퍼·성인나이트 앞에서 우회전해 왼쪽 골목길로 들어간다. 울산읍성 성곽 터로, 수십년 전부터 춤바람을 주도해 왔다는 미나리카바레 뒷골목이다. 30년 됐다는 88곰장어집 앞 네거리가 옛 동문터 추정지다. 왼쪽 골목 안 주차장 옆에 오래된 샘 옥골샘 터⑦가 있다. 동네 이름이 옥골인데, 조선시대 감옥이 있었던 곳이다. 뚜껑 덮인 네모난 시멘트 구조물이 옥골샘이다. ‘3년간 이 샘물을 마시면 벙어리도 말을 한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70~80년대까지 홍등가였던 옛 7번 국도변엔 연인·둘리·약속 등 문 닫히고 간판만 남은 술집들이 즐비하다. 겹처마 지붕의 일제강점기 가옥과 한옥 식당 외가집을 보고 번영로 건너 ‘구역전시장’⑧으로 든다. 번영로 길가에선 매일 새벽 농산물시장이 열린다. 신중앙시장에서 이마트(옛 울산역)에 이르는 골목엔 지금도 여인숙이 수두룩하다. 한 여인숙 주인은 “저녁 숙박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지역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새벽시장을 본 뒤 잠자고 가는 곳이다.



» 울산 동헌 앞에 세워진 ‘고복수 노래비’.

학성시장 거쳐 구교로로 나선다. 재개발이 추진되다 경기 침체로 중단된 흔적들이 을씨년스럽다. 학성고물상 앞에서 성호고물상 쪽으로 길 건너 학성공원 입구로 걷는다. 해발 50m 높이의 학성공원(도산)은 수천년 전엔 섬이었다. 임진왜란 막바지 정유재란 때엔 이곳에서 왜군과 조선·명 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왜적장 가토 기요마사는 왜병 1만6천명을 동원해, 울산읍성과 병영성을 헐어낸 성돌로 40여일 만에, 세 겹의 왜식 성을 쌓았다. 곳곳에 경사지게 쌓은 왜성 흔적이 남아 있다. 공원엔 동요시인 서덕출(1906~1940)의 ‘봄편지 노래비’⑨, 박상진 의사 추모비, 학성공원 땅을 기증했다는 친일파 김홍조(1868~1922) 공덕비, 낙산대 빗돌이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⑩(보물 441호)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돌종 모양 부도이자, 십이지상이 새겨진 유일한 부도라고 한다.

 

왜군 1만6천명 읍성·병영성 헐어 40일만에 왜성 쌓아

학성공원에서 내려와 반구사거리 거쳐 구철길 사거리로 간다. 길메리병원 앞쪽 길가엔 반구2동 주민들이 정월 보름 동제를 지내는 사당이 있고, 그 옆엔 움푹 파인 바위벽이 있다. 울산향토사연구회 한석근 회장은 “이 해식애가, 이 일대가 바닷가였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구교로를 따라 병영오거리 쪽으로 다소 지루한 찻길을 걷는다. 구교란 옛 향교가 있던 동네를 말한다. 구교 소공원에 이를 알리는 마을유래비가 있다. 번듯한 케이티 건물과 초라한 해장국집 ‘전화국 옆집’ 앞을 지난다. 전화국 옆집 간판의 바탕을 자세히 보면, 이전엔 ‘쉼터실내마차’였고, 더 이전엔 ‘불티포장마차’였음을 알아챌 수 있다. 지금은 따로 시골집이란 간판을 매달았다. 쇠퇴해가는 상권에서 돌고 돌며 간판을 바꿔 달아온 한 가게의 내력을 더듬으며 걷는다.

 

» 외솔 최현배 선생이 1932년 쓴 휘호.

번영로 큰길 건너 병영 막창 골목⑪으로 들어간다. 막창(소의 위장)을 굽는 식당은 10여년 전까지도 몇집 안됐다. 손님이 늘면서, 삼겹살집도 조개구이집도 노래방도, 앞다퉈 막창집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이젠 ‘막창 드라마’ ‘압구정 막창’ ‘대구막창 1번지’ 등 20여집이 성업중이다. 언덕길 올라 병영천주교회 뒷길로 간다. 여기서 병영성 성곽의 흔적⑫을 볼 수 있다. 이 주변 마을 옛 이름이 곽남, 성곽 남쪽이란 뜻이다. 개똥밭 옆에서 무너져가는 성돌 무더기를 사진 찍자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저걸 없애뻐려얄 틴데 몬하게 하는 기라. 돌떼이가 뭐 그래 중하다꼬. 그래노이 마을이 발전을 몬하는 기라.” 일상생활과 ‘개발’ 앞에서 문화유적은 늘 걸림돌이 된다.

 

병영초교 앞으로 간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가수 고복수가 이 학교(옛 일신학교)를 다녔다. 학교는 병영성의 객사 터였다. 정문 계단 오른쪽에 서 있는 하마비⑬가 그 흔적이다. 병영성은 조선 태종 때 이곳에 설치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을 말한다. 학교 앞으로 내리뻗은 골목길이 ‘고복수길’이다. 고복수 생가가 골목 안쪽에 있었다고 한다. 외솔 최현배(1894~1970) 기념관⑭으로 걷는다. 외솔은 일생을 한글 연구에 바친 대학자다. 지난 3월 외솔회로부터 원고·저서·타자기 등 유품을 기증받아 기념관을 개관했다. 밀랍인형 디오라마, 외솔의 일생과 한글 관련 영상물도 있다. 복원한 생가가 기념관 뒤에 있다.

 

1919년 병영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때 희생된 분들을 모신 삼일사⑮를 보고, 병영성 북문터로 오른다. 병영지하차도 앞에서 오른쪽 길이다. 북문터(16) 옆에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성곽 위에 서면 동천과 그 너머로 펼쳐진 울산비행장, 멀리 경주 쪽 기박산까지 바라다보인다. 한눈에도 이곳이 군사 요지임을 알 수 있다. 병영성곽 흔적 따라 걸어 홍일아파트 옆길로 내려와 옛 7번국도와 동천 물길을 만난다. 낡고 오래돼 보행 전용으로 쓰이는 산전교의 가늘고 긴 다릿발이 이채롭다. 수십년 전엔 이 다리를 건너야 방어진 쪽으로 갈 수 있었다.

 

길 따라 내려오면 400년 유래를 가진 산전샘(산전새미)(17)에 이른다. 병영성곽 밑에서 솟아 주민들은 물론 병영의 군사들이 식수로 썼던 샘이다. 수량이 풍부한데다 여름엔 차고 겨울엔 따뜻해 아낙네들이 물을 데우지 않고도 빨래를 했다고 한다. 40여년 전 주변에 상수도용 파이프를 박은 뒤 물이 고갈돼 한때 폐쇄됐으나, 최근 샘터를 복원했다. 샘 뒤쪽에 따로 수도꼭지를 설치했다. 한잔 마시고 쉰다. 9㎞ 남짓 걸었다.

 

 

워킹 쪽지

복탕에서 짚불곰장어까지

◎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에서 울산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끝까지 간 뒤 북부순환도로(7번국도)를 만나 좌회전해 삼호교 건너 직진, 경찰청입구 오거리에서(고가 타지 말고) 오른쪽으로 빠져 우회전해 북정공원(동헌)·울산초등학교 쪽으로 간다. 동헌 옆에 북정공원 공영주차장(지하)이 있다. 1시간 1천원. 도착점 병영 산전에서 출발점인 동헌까지 택시(기본요금 2200원)로 4천원 안팎.

◎ 먹을 곳 | 옥교동 향촌식당(복탕·대구탕·명태탕) (052) 246-3414, 성남동 쿨앤핫(솔잎약초삼겹살) 211-4446, 옥교동 88곰장어(곰장어) 246-6765, 학산동 외가집(한정식) 246-2352, 병영 산전 산곰장어·고디탕(짚불구이곰장어·다슬기탕) 292-7225.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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