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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칼의 노래가 흐르는 항구의 불빛 / 통영

by 오직~ 2010. 3. 25.

 

통영 동피랑마을과 삼도수군통제영
숱한 예술인 배출한 조선시대 군사도시 통영에서 강구안-남망산-충렬사-강구안 6.5㎞

 

»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객사 세병관. 동백나무가 꽃그늘을 드리웠다.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나온 말이다. 조선시대 충청·전라·경상도의 수군을 총괄하던 ‘해군본부’가 삼도수군통제영이다. 임진왜란 뒤인 1604년(선조 37년) 통제영을 옮기며 건설한 군사도시가 통영이다. 통제영 안팎에서 전승돼 온 숱한 전통문화유산들이 오늘날 무수한 통영 예술인을 배출한 밑바탕을 이뤘다. 시인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등이 통영 출신이다. 강구안 문화마당(병선마당)에서 출발해 남망산·동피랑마을 지나 세병관·충렬사 거쳐 강구안으로 돌아온다.
 

철거 피하고 살아남은 동피랑 산동네

» 강구안 선착장의 거북선. 서울 한강에서 2005년 이사왔다.

강구안은 통영 도심에 둘러싸인 내해를 말한다. 동충(현 항남동) 일대와 남망산 자락이 천혜의 방파제 구실을 하면서, 통제영 시대에 주요 대형 병선 7척을 대놓던 곳이다. 이곳에 지금은 거대한 거북선① 한 척이 닻을 내리고 있다. 서울 한강에 있던 것을 서울시로부터 기증받아 옮겨왔다. 길이 34m, 너비 10m의 거북선 안에서 임란 때 썼던 총통들의 모형, 이순신 장군에게 내려진 각종 교지 등을 볼 수 있다. 문화마당 한쪽에 한산대첩 주제 홍보관②이 있다. 상주하는 해설사가 임진왜란과 이순신 관련 전시자료를 꼼꼼히 설명해 준다.

 

홍보관 뒤 화장실 옆에 자리를 편 톱장수 어르신을 만난다. 40여년간 만들고 고치며 톱날을 세워온 ‘톱의 달인’ 강갑중(74)씨다. “고마 조실부모하고, 묵고 살라꼬 마 궤짝 짊어지고 칼도 갈고 하다가 톱 씰는(톱 만들고 가는) 일만 인자 한 사십오년 한 기라.” 낡고 닳은 ‘문화재급’ 궤짝(연장통이자 작업대)이 그의 이력을 말해준다. 틈틈이 시도 짓고 노랫말을 만들어 노래도 부른다. ‘통영의 여인’이란 노래를 감상하고 일어선다.

 

시민문화회관 건물이 짓누르는 남망산 자락으로 오른다. 10개국 15명의 조각가들 작품이 전시된 조각공원③을 둘러보며 대숲·솔숲을 거니는 맛이 바로 봄맛이다. 목련꽃·동백꽃 그늘이 그윽하고, 봄볕에 반짝이는 통영항 바다 전망은 후련하다.

 

내려와 큰길 건너 김춘수 시인 생가를 보고, 벽화마을로 이름난 동피랑마을로 간다. 마을 들머리엔 옛 통제영 안에 있던 9개의 샘 중 하나인 통새미④가 있다. 해산물 담는 나무통을 만들던 공장이 옆 샘이어서 통새미라 불렀다. 통새미 앞 명호슈퍼와 이어진 낡은 이층집은 오래된 일본식 가옥이다. “한 백년은 됐을끼라. 우리가 한 오십년 살았은께네.” 주인 최이일(70)씨는 4월 중 ‘100년 된 집’을 헐어내고 새로 집을 지을 예정이다.


 


» 통영 관광명소가 된 동피랑 벽화마을.

동피랑마을⑤로 오른다. 동피랑은 동쪽 벼랑을 뜻한다. 비탈을 따라 50여채의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이 산동네는, 몇년 전 시에서 철거한 뒤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2007년 시민단체 ‘푸른통영21’이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가꾸기에 나서면서 마을이 살아남았다. 골목 담벽들은 멋진 그림들로 채워졌고, 관광객이 몰리면서 마을은 새 관광자원으로 떠올랐다. 지난 2월엔 방문객들에게 차와 간식을 파는 동피랑구판장도 문을 열었다.

 

길옆 난간을 따라 토박이 어르신들의 통영 사투리를 그림과 함께 적어놓은 팻말들이 눈길을 끈다. “기림을 온 베르빡에 기리노이 볼끼 쌔빗네.” 마을 꼭대기 언덕은 통영성의 3대 포루(일종의 경비초소) 중 하나인 동포루가 있던 곳이다. 허물어진 옛집터의 구들장을 밟고 서서 내려다보면 남망산과 강구안, 미륵도, 통영대교 쪽 경치가 볼만하다.

 

‘수항루 터’ 표석이 우습고 슬프구나

 

» 세병관 들머리의 돌장승(벅수).

동피랑마을을 내려와 통영성 동암문(동쪽 샛문) 터를 보고 중앙시장으로 들어간다. 중앙시장은 서호시장과 함께 통영의 양대 재래시장이다. 가장 북적이는 곳이 활어시장이다. 도다리가 제철. 1㎏ 3만원.

 

세병관을 향해 걷는다. 높이 2m에 이르는 커다란 돌장승⑥(벅수)이 기다린다. 1906년 액운과 전염병 등을 물리치기 위해 세운 채색 장승이다. 눈은 부릅떴으나, 입은 큼직한 송곳니 두개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세병관 일대는, 160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 삼도(충청·전라·경상)의 수군을 총지휘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 자리다. 본디 100여동에 이르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세병관(국보 305호)⑦ 하나뿐이다. 세병관 주변에선 현재 발굴 및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50개의 아름드리 기둥으로 이뤄진 거대한 객사 세병관(洗兵館)은 통제영을 설치한 이듬해(1605년) 지은 건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세병관을 나와 복원해 놓은 수항루를 본다. 왜장에게서 항복받는 과정을 재현하는 행사를 치렀던 곳이다. 본디 남문 밖에 있던 것을 망일루 옆에 복원하고 옛터엔 ‘수항루 터’ 표석을 세웠다. 그러나 도로 확장 공사로 이 표석마저 이전복원한 수항루 앞으로 옮겨졌다. 본디 것은 사라지고 없는데, 엉뚱한 곳에 복원된 누각과 옛 누각 터를 알리던 표석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이 우습고 또 슬프다. 수항루 맞은편 통영시향토역사관⑧엔 통영의 역사와 유물,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 관련 유물·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복원공사가 한창인 세병관 옆 골목길을 돌아 서문 터를 향해 걷는다. 수십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이다. 동네 이름이 간창골이다. 관청이 있던 고을을 이르는 관청골에서 변한 말이다. 서문 터를 건너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을 모신 충렬사⑨로 간다. 입장료 1000원. 1606년 지은 사당 건물 좌우엔 늦가을 향기로운 꽃을 피워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는 금목서 두 그루가 서 있다. 팔사품전시관에선 명나라 신종이 이순신 장군을 기려 보내온 의장용 칼 등의 모조품과 함께 통제영 병선 548척이 참가해 훈련하는 모습을 그린 수조도를 볼 수 있다.

 

» 통영 충렬사 앞 정당샘(명정). 오른쪽이 충렬사에서 썼던 일정, 왼쪽이 민가에서 사용하던 월정이다.

강한루 앞엔 돌계단이 있다. 일제강점기, 통영을 찾아온 시인 백석이 한 처녀를 생각하며 우두커니 앉아 있던 계단이다. “란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 /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 /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백석 시 <통영> 일부·1936년) 충렬사 앞길 건너에 백석 시비⑩가 있고, 그 맞은편엔 명정샘(정당샘)⑪이 있다. 1670년 충렬사에서 쓰기 위해 판 샘이다. 일정·월정 두 개의 우물이 나란히 있는데 일정은 충렬사에서, 월정은 민가에서 사용했다.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도 명정골 우물 이야기가 나온다. 백석 시비 뒤쪽엔 열녀 ‘함안 조씨’를 기리는 정려가 있으나 무너져가고 있다.

 

유치환 거리 지나 김상옥 거리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서문고개를 올라 박경리씨의 생가 터를 보고 내려가 통영청년단 건물⑫(현 통영문화원)을 만난다. 일제의 방해를 무릅쓰고 1923년 민간자금으로 지은 건물이다. 문화원 앞엔 ‘간창골 샘’이 있다. 충무교회 지나 주차장 부근은 옛 통영성의 남문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중앙동우체국 앞으로 청마 유치환 거리⑬가 있다. 중앙동우체국은 유치환이 찾아와 사랑하던 여인 이영도(시조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또 쓰던 곳이다. 그가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는 20년간 5000통에 이른다. 우체국 앞 우체통 옆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그의 시 <행복>을 적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

 

초정 김상옥 거리⑭가 이어진다. 20년 전까지 통영의 명동으로 불릴 만큼 번화했던 거리다. 상권이 정량동·무전동 등 새시가지 쪽으로 넘어간 뒤 수십년 역사의 레코드가게·책방들만 옛 명성을 지키고 있다. 동진여인숙 골목 모퉁이의 김상옥 생가(부친이 갓을 팔던 갓점이었다) 표석을 보고 항남오거리 지나 이중섭이 피란시절 머물렀다는 일본식 건물(현 21C DVD방)⑮로 간다. 한국전쟁 때 이중섭이 피란 와 1년 반 동안 지내며 작품활동을 한 곳이다.

 

저물어가는 강구안 병선마당으로 다시 나오니 배들도, 남망산 시민문화회관도 막 환한 불을 밝히고 있다. 6.5㎞를 걸었다.

 

 

 

워킹 쪽지

어디서든 도다리쑥국

◎ 가는 길 | 대전~통영 고속도로 타고 통영나들목에서 나간다. 통영시청 지나 북신사거리에서 좌회전, 중앙로 따라가다 시민문화회관 또는 중앙시장 팻말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면 강구안 문화마당(병선마당)이다. 선착장 쪽에 주차장이 있다. 1시간 1000원. 주말엔 매우 혼잡하다.

» 도다리쑥국

◎ 먹을거리 | 충무김밥(중앙시장·서호시장 부근에 즐비) 말고도 도다리쑥국(사진), 졸복국·해물탕이 있다. 도다리쑥국(4월 초까지 제철)과 졸복국은 통영항 대부분의 횟집에서 먹을 수 있다. 1만원 안팎. 서호시장의 분소식당(055-644-0495), 부일복국(055-645-0842), 만성복국(055-645-2140). 문화마당 뒷골목의 새집식당(해물탕·055-645-5608), 중앙시장 분이분식(삼색칼국수·055-648-1668), 남망산 입구 소라식당(백반·055-644-8978).

◎ 여행정보 | 통영관광안내소 (055)650-4681, 통영시청 관광과 (055)650-4610, 통영종합버스터미널 (055)644-0017.

 

 통영=이병학 기자

20100325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