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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찾아서

거칠마루 _ 김진성

by 오직~ 2010. 2. 16.

 

'무림지존'이란 사이트의 회원들이 오프라인으로 만나

무술실력으로 지존을 가린다는 단순한 스토리속에 감동도 살짝.

 

세속의 셈법에서 벗어나 마치 무술의 대련으로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보는

만화속 주인공 같은 의협심이 읽혀지니

순수한 열정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일다!

 

 

 

감독 : 김진성 2004作

배우 : 장태식(청바지), 유지훈(살인미소), 유양래(무사시), 권민기(모히칸), 김진성(마시마로), 성홍일(천장지구), 오미정(철사장)

곰플레이어 

 

 

 

 

태식 역의 장태식

 

 

스스로를 이소룡 2세대라 부르는 장태식은 이 작품의 출발점이자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씨앗이 된 게 바로 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무림일기>(KBS2 인간극장)였고, 영화 속 화자인 김c가 들려주는 ‘고수를 찾아가는 이야기’의 경험담도 태식의 것이니 말이다. 그의 인생은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추석 때 TV로 본 <용쟁호투>가 그를 사로잡은 이후 그는 ‘절권도의 길’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고등학교 때 고향인 남원에서 전주로 전학을 가서 자취를 하면서 길이 열렸다. 이소룡의 무술과 권투가 가장 가깝단 얘기를 주워듣고는 권투장으로 달려갔다(태껸을 함께하게 된 것은 한국적인 무술을 하고 싶어서였다). 대학도 이소룡을 따라 갔다. 워싱턴 주립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를 본받아 전북대 철학과로 갔다(그는 출연한 고수들 가운데 가장 깊은 눈매를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정상으로 보지 않아요.” 왜 아니겠는가. 이런 열렬한 이소룡 키드는 영화 속에나 가능한 것 아닐까. 심지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둔 것도 같고, 서른둘에 영화 데뷔를 한 것도 같다.

아내에게 서른둘까지 결과물이 없으면 ‘영화를 찍는 무술가’의 꿈을 접겠다는 약속을 천만다행으로 지켜냈다. 스스로 쓴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를 하겠다며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폐간된 무술잡지에서 그를 <인간극장>과 연결시켜주지 않았다면 그 꿈을 이루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맨발로 칼날같이 날카로운 눈밭을 뒹굴어야 했고, 속옷과 외투도 입지 않은 채 싸움장면을 찍어야 했다. 작품의 무술감독까지 겸하느라 부담이 2배였다. 합을 짜고 자기 장면도 찍느라 자신의 첫 연기를 모니터링할 짬도 얻지 못했다. 점심도 못 먹는 바쁜 일정을 버텨내느라, 그리고 산골짜기의 추위와 싸우느라 통 입에 대지도 않는 술을 자기 전에 두잔씩 마셔야 겨우 몸이 녹았다. “마시마로와 싸우는 장면이 가장 좋았어요. 내 액션이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였는데 몰랐나요?” 카메라 앞에 선 그에게 뒤늦게 이소룡의 포즈를 제안했다. 직전의 포즈보다 더 힘차고 진지한 자세가 나왔다. 앞으로 내뻗은 발이 힘차다.

 

 

살인미소 역의 유지훈

 

 

캐릭터 이름에 오해가 있다. 유지훈의 역할 이름인 살인미소는, 그가 살인미소를 가졌단 뜻이 아니라 “나? 살인미수야”라는 말을 할 수 없어 거짓말을 한다는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살인미소의 직업은 조직폭력배 중간보스다. 무림고수 거칠마루를 찾아가는 8명의 무술인 중 하나인 살인미소는 “늬들은 도장에서 허공에다 주먹질하고, 난 뒷골목에서 살려고 주먹질하고. 도장, 도장, 하지마. 신물이 난다. 써먹지도 못할 거 뭐하러 하냐고!”라는 뼈저린 말을 남긴다. 이 대사는 감독과 작가가 함께 쓴 것이긴 해도, 그는 그것이 “무술하는 사람들은 다 느끼는 딜레마일 것”이라고 한다.

180cm가 넘는 키에 좋은 덩치를 가진 그는 몸이 허약해 무술을 시작했다. 주종목(이라는 말을 쓰면 그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하면 전 진짜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며 시종일관 지나치게 겸손해했지만)은 태권도, 합기도 그리고 유도다. 지금은 절권도에 한창 몰입해 있고, 무에타이와 복싱, 아마추어 레슬링과 브라질리언 유술도 배우는 중이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액션은 되게 멋있잖아요. 근데 실제는 처절해요. 비참하고, 바닥도 기어야 하고. 실제로 보면 사람들이 실망을 많이 해요. 제가 하는 무술은 그런 거예요. 비주얼한 게 아니죠.” 그러니까 이런 거 있잖아요, 라며 두팔을 조금 움직여 보이는데, 빠르다. 실망스럽기는커녕 절도있는 움직임이 멋있어 보인다.

경호학과를 나와 경호원으로 일하다가 주인공인 장태식과의 인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그는 첫 장편영화 작업에 대한 아쉬움을 크게 드러냈다. “저는 상대적으로 액션보다 연기에 치우친 캐릭터인데, 의욕이 너무 앞서서 처음부터 감정적으로 폭발하니까 나중엔 힘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많이 아쉬워요.” 기타 연주를 곧잘 해서 중·고등학교 때 밴드 활동을 했었다는 그는 “쟤는 섬세한 줄 알았는데 운동만 하네”라는 얘길 들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무술은 악기 연주나 그림 그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배우를 꿈꾸는 섬세한 무술인이 씩 웃으며 말한다. 웃는 얼굴을 보니, 역할 이름이 꽤 어울리는 듯도 하다.

 

모히칸 역의 권민기

 

 

“시나리오대로라면 대사도 더 많았는데 실없는 소릴 너무 많이 해서 다 잘렸어요. (웃음) 아쉬운 것보다 내가 연기가 부족하니까….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첫 숟갈이니까 연기를 더 배워서 다음엔 더 많은 대사를 따보도록 하겠습니다.” 모히칸 역의 권민기는 유난히 까만 자위가 큰 두눈을 잘 깜박이지도 않고 말했다. 그 눈 때문인지, 인터뷰를 마치고 다 같이 들른 밥집의 아주머니가 “무슨 총각이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 하며 공기밥 4개를 서비스로 갖다주신다. 그는 조용하다.

<거칠마루>의 모히칸은 자기 존재를 별로 드러내지 않는 숨은 고수다. 현 우슈 국가대표이자 한국우슈챔피언이기도 한 그에게 몇년이나 챔피언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묻자, “2진 생활을 오래 했어요”라는 대답부터 돌아온다. 고3 때 첫 대회에 출전해 4등을 했고 그뒤로도 늘 2등, 3등께에 머물러 있었다. 97년 전국대회에서 대학부 장권 1위를 한 것이 첫 챔피언 타이틀. 2년 전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던 날 처음 눈물을 흘렸다. 그 전해엔, 다 따논 금메달을 심판의 판정 번복으로 빼앗겼다. 집에도 못 가고 제주도 바닷가에서 엄청 울었더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마을금고에 저금해놓은 세뱃돈 1만원을 찾아 학원을 등록해 배우기 시작한 우슈다. 가난했고, 부모님은 엄해서 마음껏 할 수 없었다. 석달 배우고 한참을 쉬다 중학교에 입학해 방학 때 또다시 세뱃돈으로 학원을 다녔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고2 때. 대회 출전만 하고 그만두려던 운동이 그의 평생을 따라다니게 됐다.

최근 고향에 ‘권민기 우슈클럽’을 개장한 그는 동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 중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대표팀 마무리하고, 클럽은 천천히 후배들에게 물려주면서 내가 도전해볼 수 있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요.” 그건 배우의 길이다. 교수님 소개로 <거칠마루>에 출연하게 된 그는 영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소망을 조용히 밝히며, 미대를 가고 싶었더라는 어릴 적 꿈을 함께 털어놓았다. “체육관을 어떻게 만들지 구상도 할 겸 유럽에 시장조사를 갔었거든요. 프랑스에 코치로도 잠깐 있었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하루종일 이렇게 멍하니 앉아서 그림만 보고 왔어요.” 그는 음악의 템포와 회화의 선과 색감에서 우슈에 관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까맣고 큰 눈동자가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수 있을 것처럼 빛난다.

 

마시마로 역의 김진명

 

 

아마 영화 속 고수들 가운데 가장 귀여운 캐릭터는 마시마로일 것이다. 태식과 산길에서 강도 높고 박진감 있는 싸움장면을 보여주지만, 후반부에 깜찍하게 보여주는 재롱이 잊혀지지 않는 배우다. 촬영 뒤 2년 반이 지난 그의 몸은 무척 날렵하다. 공익 근무요원으로 들어가기 전 훈련소에서 자연스레 다이어트가 된 덕분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무려 156kg, 촬영 때는 130kg에 달했던 몸매는 190cm, 105kg로 줄어들었다. 주전공이 씨름이다보니 한창 때는 24시간 내내 먹기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장태식이 이소룡 키드라면 김진명은 성룡 키드라고 부를 만하다. 성룡의 영화는 몇번을 보고 또 봐도 즐겁다. 그러나 무술배우를 하겠다는 꿈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용인대학 격기학과를 다니던 중 원래 제안을 받았던 선배가 자신을 추천하는 바람에 ‘추억도 만들 겸’ 덜컥 배우가 되기로 했다. 유도선수 역할이지만 영화에서 사용한 주기술은 씨름이다. 배우들마다 눈밭에서 추위와 싸운 기억을 떠올리지만 그는 육체적으로 힘든 건 없었고 연기가 힘들었다고 말한다.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표정이다. “거울 보고 하면 안 이상한데 카메라만 보면 이상해져요. 영화 보면서 내 연기가 너무 어색해 계속 웃음만 나왔어요.”

눈도 제대로 깔리지 않은 얼어붙은 산길에서 싸움장면은 쉽지 않았지만, 당일 촬영이 끝나면 ‘형들과 술 한잔’ 마시는 즐거움이 한 자락 추억이 되었다. 영화에서 함께 붙어봤으면 했던 이가 누구냐고 하니 ‘모히칸’ 권민기를 꼽는다. “빠르잖아요. 한번 잡아보고 싶죠.”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영화 출연에 함께 기뻐해주었지만 아직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걱정을 끼쳐드릴까봐 강원도 촬영일정을 합숙훈련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학교 마치고 공익요원으로 일하는, 위로 누나만 셋인 막내아들이 무림고수로 영화에 나온다면 이보다 더한 깜짝쇼는 없을 터이다.

스타도 없는 영화가 과연 상영관에 걸릴지 불안했지만, 적어도 액션의 사실성만큼은 어떤 다른 액션영화보다 낫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의 작은 욕심은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고 그래서 여자친구를 한번 사귀어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여자 앞에서만 서면 숙맥이에요. 한번도 못 사귀어봤는데 영화가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철사장 역의 오미정

 

 

“작고 귀엽다고 만만하게 보다간 큰코다쳐요.” 사진촬영을 하다 말고 누군가 한마디 툭 던지는데, 대답은 없어도 다들 수긍하는 표정이다. 거칠마루에 오르기 위해 철사장을 내뿜는 오미정은 다른 배우들보다 무림입문이 늦은 편. 태어나자마자 걸린 폐렴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유년 시절 그녀는 언제나 콜록거렸고 열이 오르면 새빨간 코피까지 쏟았다. 아버지가 태권도 사범이었지만, 골골한 그녀는 도장 출입금지 신세였다고. “태권도를 배우던 언니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갈망은 지워도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1997년 제주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한 그녀는 친구따라 학내 우슈 동아리가 연습하는 것을 보게 된다. “첫눈에 반했어요. 시각적 쾌감이라고 해야 하나.” 2001년 8월 본격적으로 입권한 그녀는 “남자 수련생에게도 질 수 없다”는 승부욕을 밑천 삼아 남들보다 배로 연습했다.

늦게 타오른 불길은 거침없었다. “일어 전공하고서 왜 중국에 가냐”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그녀는 2003년 중국 산시무술학원으로 수련을 떠난다. 국내 우슈대회에서 수상할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처음엔 꽤 마음고생을 했다. “열살짜리 애들보다 스피드나 힘이 떨어지는 거예요. 잘 못하니까 매번 맨 뒤에 서서 따라했어요. 앞에 선 아이가 넘어야 할 목표였죠.” 지치지 않는 근성 탓일까. 3개월 만에 도장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그녀는 “1m 뛰는 벌레도 작은 상자 안에 가뒀다가 꺼내놓으면 그만큼 못 뛰어요. 반대로 보는 눈이 높아지니 실력도 늘던데요” 한다.

중국에서 돌아와 곧바로 <거칠마루> 오디션에 흔쾌히 응했던 건 사부의 권유도 있었지만, 8할은 <다모> 때문이다. “여자 스턴트라고 해봤자 뛰어내리고 구르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다모>를 보고서 제 무술을 응용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합(合)을 짜본 적이 없어서 촬영에 들어가선 “오빠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그녀는 “눈 녹기 전에 촬영을 끝내야 해서 사전에 손발을 충분히 맞추지 못한 게 아쉽다”고. “표현 무술인 우슈”를 통해 자신감과 도전의지를 캐냈다는 그녀, 캐물으니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중국 수련 기간 중 덤으로 얻은 중국어 실력으로 현재 해양경찰 특채 시험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만, 영화 일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고, 우슈 지도자 자격증도 따고 싶다고. 하긴, 그녀는 아직 젊고 건강하다.

 

천장지구 역의 성홍일

 

 

성홍일은 <거칠마루>에서 튀는 존재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 천장지구는 세상의 온갖 무술을 섭렵한 대단한 스턴트맨이다, 라고 허풍을 떤다. 8명 중 가장 하수에 속하기에 실전에서는 연전연패하지만, 상대방을 치고 빠지는 입놀림만큼은 단연 최고수라 할 만하다. 하지만 성홍일이 이들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진짜 이유는 그만이 무술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본업은 연극배우. 고등학생 시절 극단에 들어간 이래 연기생활 17년째를 맞는, 이 대학로의 잔뼈 굵은 연기자가 무예의 달인들과 어깨를 맞대게 된 사정에는 우연이 큰 작용을 했다. 애초 김진성 감독이 필요로 했던 캐릭터는 태권도의 달인이었다. 극단 후배의 남편이 그 역할을 제안받은 상황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고사했고, 이 영화에 의욕을 느꼈던 성홍일이 대신 오디션에 임했다. “예전에 <대권무림>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공연 전체가 무술 그 자체였다. 그때 태권도, 복싱, 태껸 등을 익혔다.” 자연스레 쌓여 있던 그의 능숙한 무술 실력과 연기력은 김진성 감독을 만족시켰다.

그는 <거칠마루>에서 참기름 같은 지위를 소화했다. 시종 깐죽거리고 나불거리는 그의 고소한 연기 덕에 자칫 딱딱하기만 할 뻔했던 영화는 여유를 갖게 됐다. 또 성홍일은 뭔가 부자연스런 아마추어 배우들의 연기 사이에 기름칠을 해줬다. 초반 트레일러 내부장면에서 그는 대사의 대부분을 소화하며 캐릭터 사이를 소통시킨다. “시나리오에서는 전체 대사 중 내 분량이 70%였다.” 여기에 다른 7명에게 연기의 기본을 일러주기까지 했으니, 결국 그는 연기에 관한 한 영화 전체를 떠받치는 들보 역할을 한 셈이다.

무술고수들과 몸을 부대꼈지만, “고수들이 다 알아서 공격을 받아주는 덕에” 별 탈이 없었다는 그는 내레이션에서 천장지구가 ‘사기꾼’으로 분류된 것에 “사기꾼이라기보다 자기 무예에 과대망상을 갖고 있는 놈”이라며 자신의 캐릭터를 옹호한다. “너무 급박하게 촬영해 대결장면에서 떨리는 호흡 같은 디테일이 살지 못했다”며 배우다운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곧 <관객모독>으로 다시 무대를 누빌 계획이다.